20020804060629-Mother20MilkRed Hot Chili Peppers – Mother’s Milk – EMI America, 1989

 

 

위기 속의 성공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에는 흑인멤버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훵크나 레게, 리듬 앤 블루스와 같은 ‘흑인음악’이라 부를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은 두말할 필요 없는 것이다. [Blood Sugar Sex Magic](1991)을 즐겨 들어본 사람이라면 ‘Bob Marley poet and a prophet….’ ‘Marvin Gaye my love, Where did we go wrong?’ 같은 가사를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1989년작인 [Mother’s Milk]의 수록곡들에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곡, 혹은 농구스타 매직 존슨(Magic Johnson)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Mother’s Milk]의 첫인상은 ‘흑인음악’ 보다는 ‘백인’들의 하드록 쪽이 더 강하다(물론 이들의 앨범 가운데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기타리스트 힐렐 슬로박(Hillel Slovak)의 약물과용으로 인한 사망과 뒤이은 드러머 잭 아이언스(Jack Irons)의 탈퇴로 위기를 맞은 가운데에서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와 채드 스미쓰(Chad Smith)가 급하게 빈 자리를 채운(결국은 그들이 오늘날까지 남았지만) 이 음반의 결과물은 그러나 전임자들이 추구하던 방향성에서의 이탈이라고만 부르기에는 힘들었고, “Higher Ground”의 MTV에서의 대성공으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는 등, 오히려 이들을 주류매체에 소개하는 계기가 된다.

사실 본작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록은 힐렐 슬로박의 유작이 되어버린 [The Uplift Mofo Party Plan](1987)에서부터 강하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첫곡 “Good Time Boys”에서부터 등장하는 헤비한 기타리프는 전임자의 그것과 외면적으로는 많이 달라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위에 언급한 “Higher Ground” 또한 스티비 원더보다는 그의 곡을 커버한 벡 보거트 앤 어피스(Beck, Bogert & Appice)의 “Superstition”(1973)이 연상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훵크는 사라진 것인가? 그건 아니다. 오히려 전작부터 추구한 하드록(혹은 헤비메탈)의 적극적인 도입이 본격화된 맥락 속에서 “Knock Me Down”이나 “Taste The Pain”같은 곡에 절묘하게 녹아들어간 리듬 앤 블루스풍의 멜로디가 플리(Flea)의 베이스라인과 멋지게 융합하면서 펼치는 그루브는 이들 특유의 흥겨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엄청난 속도감일 것이다. 육중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프루시안테의 기타리프가 플리와 채드 스미쓰의 리듬파트와 함께 무지막지하게 몰아치는 “Nobody Weird Like Me”라든가, 지미 헨드릭스의 원곡을 45회전으로 돌린 것처럼 스피디한 “Fire”, 주류 록에 대한 유쾌한 패러디 “Punk Rock Classic” 같은 곡을 듣다 보면 정말 이들은 ‘당신들의 아드레날린을 최대로 분출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노래를 한다’는 신조를 가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 극단은 힙합으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은 “Magic Johnson”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음반을 계속 듣다 보면 흥겨움보다는 지리함이 앞선다. 마치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끊임없이 달리다가 지쳐버리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변칙적인 리듬파트마저도 몇몇 곡들을 듣다 보면 익숙해지는 점도 그렇다. 그러한 측면에서 [Blood Sugar Sex Magic]의 뛰어남이 다시 한번 일깨워지기도 하는데, 이는 존 프루시안테의 연주가 후속작에서는 ‘합주’에 어울릴 만큼 잘 융화되었다는 점과도 연관짓고 싶다. 밴드의 방향성이 점차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록 음악에 맞추어진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사운드 전반을 뒤덮은 프루시안테의 연주 덕분에 음악적 매력이 반감된 부분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Blood Sugar Sex Magic]의 포문을 여는 곡의 제목이 “Power Of Equality”인 것처럼 이들은 ‘균형’을 잘 맞추었을 때 가장 매력적인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20020731 | 김성균 niuuy@unitel.co.kr

7/10

사족 1 : “Knock Me Down”의 외면적인 흥겨움 뒤에는 보컬리스트 앤소니 키디스(Anthony Kiedis)의 깊은 고뇌가 포함되어 있다. 힐렐 슬로박의 죽음 당시 키디스 자신도 마약에 빠져 있었던 경험에서 바로 “If you see me getting high, Knock me down.”과 같은 가사가 나온 것이다.

사족 2 : 존 프루시안테가 변명조로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를 좋아해서 벌어진 결과라고 밝힌 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Punk Rock Classic”의 마지막 기타리프는 ‘조롱’에 가까운 듯하다. 물론 펫 숍 보이스(Pet Shop Boys)의 ” How Can You Expect to Be Taken Seriously?’의 섬뜩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만.

수록곡
1. Good Time Boys
2. Higher Ground
3. Subway To Venus
4. Magic Johnson
5. Nobody Weird Like Me
6. Knock Me Down
7. Taste The Pain
8. Stone Cold Brush
9. Fire
10. Pretty Little Ditty
11. Punk Rock Classic
12. Sexy Mexican Maid
13. Johnny, Kick A Hole In Th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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