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28071440-rhcp(by20the20way)Red Hot Chili Peppers – By The Way – Warner Bros., 2002

 

 

말랑말랑 나긋나긋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By The Way] (2002)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li Peppers)가 [Californication] (1999)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만만치 않은 공백임에도, 아무도 이들이 ‘와해’나 각자의 길을 걸었다고 의심하지는 않았다. 왜냐? 그들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약간 썰렁한 대답이 되어버렸지만, [Blood Sugar Sex Magik] (1991) 이후 보여준 이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그렇다는 결론이 나온다. [Blood Sugar Sex Magik]의 다음 앨범 [One Hot Minute] (1995)가 나오기까지는 무려 4년이 걸렸다. [Californication] 또한 그로부터 4년 뒤 발매되었다. 원래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다작 경향의 밴드라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신중한 행보임엔 틀림없다(비슷한 예로 메탈리카(Metallica)의 경우를 보라). 추측해보건대, 이게 다 [Blood Sugar Sex Magik]으로 인한 ‘업보’다. 이 음반이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상업적/비평적 성취를 이룬 탓에, 밴드에게 있어 과중한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더구나 [One Hot Minute]의 실패와 [Californication]의 극적인 성공은 이들이 음반을 내는데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3년 만이면, 예전보다 다소 자신감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섣부른 추측도 해본다.

[By The Way]는 과연 음반 전체 분위기가 몹시 치밀하며 조심스러운 자세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꼭 성공을 거두고 말겠다”는 마음가짐이 전면에 표출되는 음반인 것이다. [Blood Sugar Sex Magik]의 전설적인 성취에 이어 [Californication]의 대박은, 그만큼 이들에게 ‘이중고’를 안겨 주었을 것이다. 또다시 [One Hot Minute]의 쓰라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투철하다. 하긴, [One Hot Minute]의 실패와 [Californication]의 성공이 ‘기타리스트’라는 변수 때문이었다면(밴드와 조화를 이루는 데 실패한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와 역시 ‘없어서는 안될 멤버’로 자리를 굳힌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 이번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By The Way]는 예의 4인방에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까지 고스란히 다시 뭉쳐 만든 음반이다. 때문에, 훵크와 메탈릭 사운드가 적절히 융합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특유의 흥겨운 사운드가 변함없이 펼쳐진다.

[By The Way]는 상당한 정성과 공을 들인, 완성도 높은 음반임이 분명하다. 1990년대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음반들이 그랬듯 60분을 훌쩍 넘기는 대작 구성에 거의 ‘메들리’에 가까운 거침 없이 무작위로 이어지는 구성 또한 굳건하다. 그런데 이번 음반의 두드러진 특성은, 노래 전체가 상당히 나긋나긋 하다는 점이다. 물론 첫 곡 “By The Way”는 이들 특유의 활력있는 훵키 사운드와 래핑이 여전하여 마음을 즐겁게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일련의 ‘록 발라드’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Universally Speaking”이나 “The Zephyr Song” 같이 빼어난 멜로디를 갖춘 노래들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들 특유의 ‘훵키 송’에 연달아 몸을 맡기려던 이들이라면 상당히 당혹스럽기도 하다. 이 노래들에 훵키 스타일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다분히 ‘암시적’이다. 물론 앨범 중반부터 훵키한 분위기가 되살아나고(“Can’t Stop”, “Throw Away Your Television” 등), 월드 뮤직 스타일의 어프로치(“Cabron”)와, 스카를 구사하는 곡(“On Mercury”)도 있어 흥미롭지만, 전반적으로 [By The Way]는 말랑말랑한 음반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예전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만들어낸 주옥같은 히트곡들인 “Under The Bridge”나 “My Friends”, “Scar Tissue” 등에서 보여준 감각이 음반 전체로 확산된 상황이라 할 수 있겠는데, 왜 굳이 이런 접근법을 취해야 했는지 궁금하다. 위에서도 누누이 추측한대로 ‘성공’을 보장받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는가? 아니면 본격적인 ‘록 발라드 전문 밴드’로의 방향 전환일까? 혹시 이게 시대의 흐름에 절묘히 편승하기 위한 트릭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지만, 슬립낫(Slipknot)이나 콘(Korn) 같이 ‘센’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들이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한다는 현실을 볼 때, 반드시 이들의 연성화가 ‘시류 영합’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고 보기도 힘든게, 사실 [By The Way]의 모든 음악적 요소는 참신하고 기발한 면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활동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고참 밴드답게 음반 전체에 여유있는 노련함이 물씬 배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Blood Sugar Sex Magik] 때처럼 단번에 확 들어오는 매력적인 기상천외함은 솔직히 없다.

물론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음악적 성취와 영향력을 남긴 ‘노장’ 밴드에게 그 이상의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무리라는 건 안다. 오히려 ‘절정’을 지나버린 것으로 추측되는 뮤지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무랄데 없는 음반을 내놓는 것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선 그러한 ‘아량’을 베풀기엔 너무 속이 좁고 변덕이 심한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By The Way]를 들으며, 자꾸만 [Blood Sugar Sex Magik]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벅찬 놀라움과 감격을 자꾸만 떠올리는 것은 어쩐 일일까? 스스로 못된 심보라 여기면서도 이러한 ‘가학 행위’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록 음악 애호가로서 태생적으로 품게되는 지긋지긋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새롭지 않으면, ‘진정한’ 대중 음악이 아니다”라는 강박관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20020726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7/10

수록곡
1.By The Way
2.Universally Speaking
3.This Is The Place
4.Dosed
5.Don’t Forget Me
6.The Zephyr Song
7.Can’t Stop
8.I Could Die For You
9.Midnight
10.Throw Away Your Television
11.Cabron
12.Tear
13.On Mercury
14.Minor Thing
15.Warm Tape
16.Venic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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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hotchilipepp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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