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Hot Chili Peppers – Blood Sugar Sex Magik – Warner Bros., 1991 매콤 달콤 쌉싸름한 정돈된 무정형 사운드 1990년대 대표적인 명반 중 하나임에도 불구,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Blood Sugar Sex Magik](1991)에 대한 본격적인 리뷰를 찾아보기는 그다지 쉽지 않은 편이다. 국내에서는 특히나 더욱 그렇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음반을 끼고 산 지 10년이 넘은 지금 다시 들어보아도, 이 음반은 ‘분석’의 틀을 들이대기가 대단히 어렵다. 말하자면, ‘비평을 거부하는 음반’이라 할 수 있다. ‘희대의 명반들’ 중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이제 와서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1991)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이런 경우는 너무나 많이 듣고 이 음반에 대한 ‘담론’이 신물이 나도록 오고갔기 때문에, 즉 식상해졌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Blood Sugar Sex Magik]은 이와는 다르다. 제대로 분석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이 음반이 걸작임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왜 이것이 걸작인지 명료하게 말하지 못한다. 본질을 드러내기에는 이 음반 내부에 너무나도 많은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리라. AMG에 따르면, [Blood Sugar Sex Magik]의 주된 ‘성분(그러니까 스타일)’은 얼터너티브 팝/록(alternative pop/rock) & 훵크 메탈(funk metal)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같은 종류의 음악을 구사하는 ‘동료’로 한데 묶였던 페이쓰 노 모어(Faith No More)의 [Angel Dust](1992)와 더불어 ‘랩 메탈(rap metal)’을 개척한 선구적인 음반으로 평가받기도 한다(랩 메탈이 시대를 풍미한 주류 장르로 자리매김된 지금, 이들은 더욱 높은 평판을 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Blood Sugar Sex Magik]은 단순한 메탈 음반이 아니다. 메탈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수록곡은 “Suck My Kiss”, “The Righteous & The Wicked”, “Blood Sugar Sex Magik”, “The Greeting Song” 정도다. 그런데 보컬리스트 앤써니 키디스(Anthony Kiedis)의 음색이 원래 메탈을 소화해 내기엔 너무나도 멜랑콜리하다. 그러므로 수록곡 중 메탈적인 노래들은 거의 빠짐없이 ‘랩’으로 처리됨에 유의해야 한다. 앤써니 키디스의 달콤한 보이스는 부드럽고 조용한 곡에서 단연 빛을 발한다. 즉 “Breaking The Girl”, “I Could Have Lied”, “Under The Bridge” 등의 ‘발라드’ 곡들에서는 사려 깊으면서도 우수에 차있는 듯한 그의 보컬이 뛰어난 솜씨를 발휘한다. 이 음반을 가만히 들어보면, 멤버 각자가 ‘장르’를 대표함을 알 수 있다. 즉 베이시스트 플리(Flea)는 ‘휭크’를, 앤써니 키디스는 ‘랩’과 ‘발라드’를,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는 ‘메탈'(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하는 경우, “Funky Monks”의 인트로처럼 어쿠스틱 기타로 훵크 리프를 연주하는 ‘예외’도 있다)을 상징한다. 드러머 채드 스미쓰(Chad Smith)는 노래의 성격에 따라 연주의 톤을 조절하는 ‘절충’적인 어프로치를 보이고 있다. 이런 까닭에, 노래 각각의 연주 스타일과 톤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훵크 스타일의 노래는 베이스가 리드 악기에 육박하리만큼 두드러진 대신, 기타의 음량은 대폭 줄어들고 연주 또한 미니멀해진다. 또한 메탈 넘버는 기타 리프가 거칠고 육중해지는 반면 베이스는 철저히 ‘보조’에 머무른다. 발라드 곡에서는 기타와 베이스 모두 신중하고 섬세한 ‘반주’의 기능을 담당한다(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타악기가 부각되기도 한다). “The Power Of Equality”나 “Give It Away”, “My Lovely Man”, “Sir Psycho Sexy” 등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노래들에는 각 악기가 서로 ‘경합’을 벌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훵크 넘버라고 해도 메탈적인 기타 리프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고(“Mellowship Slinky In B Major”가 대표적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The Greeting Song”). [Blood Sugar Sex Magik]을 ‘얼터너티브’한 음반이라 한다면, 위에서 보듯 한 가지만으로 규정될 수 없는, 당대의 주류 록과는 너무나도 구분되는 ‘무정형’의 사운드 때문이 아닐까? 얼터너티브 록의 광풍이 불현듯 불어닥친 게 1991년이니까, [Blood Sugar Sex Magik]은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한 [Nevermind]와 함께 얼터너티브 시대의 서막을 연 음반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다같이 ‘얼터너티브’로 분류된다고 해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그런지 5인방’들과 같은 부류로 보아서는 상당히 곤란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그만큼 얼터너티브 록의 범위의 광활함을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상황은 좀더 복잡하다. 이러한 차이점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음악 특색을 규정짓는 말 중 하나인 ‘훵크 메탈’에서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본래 LA 지역 하드코어 펑크의 정기를 받은 상태에서 훵크의 정수를 체화한 밴드다. 첫 번째 음반 [Red Hot Chili Peppers](1984)의 제작을 앤디 길(Andy Gill)이 맡았고, 두 번째 음반 [Freaky Styley](1985)는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 프로듀스 했음에 주목하자. 펑크와 훵크의 혼합은 외관상 무척이나 이질적인 요소들의 껄끄러운 결합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영국의 스카(Ska)의 경우를 보듯, ‘이종간 결합’이 안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즉, 펑크나 훵크나 기본적으로는 ‘리듬’을 우선시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춘 적격자를 만나면 그럴 듯한 퓨전을 이루지 말라는 법 또한 없는 것이다. 물론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이런 노선을 걷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남들과의 차별성’을 이루기 위해 독보적으로 선택한 것이겠지만, 시대의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진화’와 ‘변형’은 1980년대 대중 음악의 또다른 화두였다. 일찍이 ‘퓨전’ 사운드를 지향했지만, 이들이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유는 명백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개성과 재능은 처음부터 출중했지만, 이러한 요소를 ‘중화’ 내지는 ‘조화’를 시켜 대중들이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던 것이다. 초창기 이들의 음악이 대부분 ‘중구난방’에 무척이나 산만하였음을 기억하자. 이들의 독창성이 제대로 된 때깔을 갖추고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라는 또다른 10년의 시작과 더불어 밴드 내부의 상황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각자 지닌 고유한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밴드 전체의 조화 또한 중시하는 존 프루시안테와 채드 스미스의 가입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기는 했지만, 결정타는 단연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의 손길이었다. 누구보다도 동시대의 아메리칸 록 뮤직을 다듬어내는 데 있어 최상의 솜씨를 보이는 릭 루빈의 재능은, [Blood Sugar Sex Magik]에 와서 최고조를 이룬다. 1980년대 슬레이어(Slayer), 런-D.M.C.(Run-D.M.C.),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 등의 음반을 프로듀스하며 다진 독특한 개성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최상의 궁합을 이룬 것이다. 이 음반에서의 릭 루빈의 으뜸된 업적은 예전까지 산만했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음악을 ‘정돈’시켰다는 점이다. [Blood Sugar Sex Magik]이 무어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수많은 음악 요소로 미묘하고 오묘하게 뒤엉켜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빈틈을 보이지 않고 일관된 흐름을 이루며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더군다나 이 모른 곡들이 빼어난 대중성까지 갖춘 ‘팝 앨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릭 루빈의 천재적인 역량 때문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으리라. 엔지니어 브랜든 오브라이언(Brendan O’Brien)의 공도 이에 못지 않다. 이 음반에서 펼쳐지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선명하게 포괄하는 투명하고 맑은 음색은, 그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 할 수 있다. 이는 이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음반들이 다시는 이 정도 수준의 음향 퀄리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음질에만 국한되는 문제일 뿐인가? 솔직히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릭 루빈도 [Blood Sugar Sex Magik]을 뛰어넘는 음악 세계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새 앨범 낼 때마다 몇 년씩 애를 먹고 말이다. 만들기도 어렵고 논하기도 어려운 [Blood Sugar Sex Magik] 같은 음반은, 그냥 “입 닥치고 즐겨봐”의 자세로 다가가는 게 최상의 선택일 것이다. 즐겁게 몸을 흔들고 귀신 같은 연주 솜씨에 경탄하면 제격인 이런 음반을, 분석의 입장에서 이리 저리 뜯어보는 건 확실히 불행한 작태다. 어쩌다 이런 괴물 같은 음반을 덜컥 내놓고 밴드 활동 내내 [Blood Sugar Sex Magik]을 자신들이 ‘넘어야 할 산’으로 떠안고 가야 하는 숙명을 지니게 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또한 불행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리라. 20020723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10/10 수록곡 1. The Power Of Equality 2. If You Have To Ask 3. Breaking The Girl 4. Funky Monks 5. Suck My Kiss 6. I Could Have Lied 7. Mellowship Slinky In B Major 8. The Righteous & The Wicked 9. Give It Away 10. Blood Sugar Sex Magik 11. Under The Bridge 12. Naked In The Rain 13. Apache Rose Peacock 14. The Greeting Song 15. My Lovely Man 16. Sir Psycho Sexy 17. They’re Red Hot 관련 글 Red Hot Chili Peppers [Californication] 리뷰 – vol.4/no.15 [20020801] Red Hot Chili Peppers [By The Way] 리뷰 – vol.4/no.15 [20020801] Red Hot Chili Peppers [Freaky Styley] 리뷰 – vol.4/no.15 [20020801] Red Hot Chili Peppers [Mother’s Milk] 리뷰 – vol.4/no.15 [20020801] Jane’s Addiction [Nothing’s Shocking] 리뷰 – vol.4/no.15 [20020801] Jane’s Addiction [Ritual de lo Habitual] 리뷰 – vol.4/no.15 [20020801] 관련 사이트 Red Hot Chili Peppers 공식 사이트 http://www.redhotchilipeppers.com/ Red Hot Chili Peppers 팬 사이트 http://www.thefunkymon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