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과 휴가철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여름에 듣기 좋은 음악’으로 추천해달라는 전화가 가끔 걸려 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난감합니다. 여름에는 제가 음악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죠. 게다가 여름에 더운 나라의 음악을 듣는 게 좋은지 추운 나라의 음악을 듣는 게 좋은지는 조금 헷갈립니다. 더운 나라의 음악을 들었다가는 더 더워지는 수가 많고 추운 나라의 음악을 들으면 계절감각과 동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듬은 열정적이지만 멜로디는 서늘한’ 음악이 더위에는 제격인 듯합니다. 아마도 그런 음악으로는 브라질산(産) 음악이 제격인 듯합니다. 제가 ‘브라질 음악’이라고 그러지 않고 굳이 ‘브라질산 음악’이라고 부른 것은 ‘브라질 음악’이라는 말이 ‘미국 음악’이나 ‘한국 음악’이라는 말처럼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이렇게 나라별로 분류해 버리는 것이야말로 맥빠지는 일이죠. 브라질 축구하면 ‘삼바 축구’라고 부르는 게 매스 미디어의 관행이지만 브라질의 젊은 축구 선수들이 삼바를 좋아할지는 조금 의문도 듭니다. 각설하고 브라질 음악들 중에서 제 취향의 것들로 골랐습니다. 안또니우 까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주앙 질베르뚜(Joao Gilberto), 조르헤 벤(Gorge Ben), 갈 꼬스따(Gal Costa), 마리아 베타니아(Maria Bethania), 시꾸 부아르끼(Chico Buarque), 이반 린스(Ivan Lins), 밀튼 나씨멘투(Milton Nascimento) 같은 ‘빅 네임’들이 빠진 게 아쉽지만 CD가 이미 꽉 차 버렸군요. 나중에 앨범 리뷰하면서 다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1. Martinho da Villa – Sosou Para Ramades 마르띠뉴 다 빌라는 삼바의 거장으로 카니발용 삼바인 삼바 엔레도(samba enredo)의 대가입니다. 하지만 이런 진짜배기 삼바는 좀 더워서 관악기와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재즈 풍의 우아한 곡을 골라 봅니다. 2. Clara Nunes – A Deusa Dos 삼바 엔레도가 남성적이라면, 여성 취향의(?) 삼바 깐싸우(Samba cancao)도 있습니다. ‘삼바 가요’라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삼바의 디바 끌라라 누네스, 퍼커션과 어우러지는 그녀의 시원한 노래를 감상해 보시죠. 3. Luiz Gonzaga – Danado de Bom 아코디언이 이끄는 포루(forro) 음악은 리우 데자이네이루 중심으로 융성한 삼바나 보싸 노바와 달리 브라질 북동부의 음악입니다. 루이스 곤사가는 포루의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죠. 조금 토속적인 느낌을 원하시면 이 곡을 추천합니다. 4. Caetano Veloso – Irene ‘브라질의 밥 딜런’이라고 불리는 까에따누 벨로주의 1960년대 말의 곡입니다. 기타 연주 예쁘고, 멜로디 좋고, 노래 잘하고, 마지막의 퍼즈 기타 솔로도 압권이네요. 워낙 다양한 음악성을 자랑하는 분입니다만 오늘은 이 정도로… 5. Gilberto Gil – Quilombo 질베르뚜 질은 많은 악기를 다루고 작곡과 노래에 모두 능한 ‘흑인 뮤지션’입니다. 이 곡은 브라질 흑인의 해방구였던 낄롱부를 다룬 까를로스 디에그스(Carlos Diegues)의 영화에 주제곡으로 삽입되었습니다(아, 주앙 질베르뚜와는 다른 사람이니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6. Os Mutantes – Ando Meio Desligado (I Feel a Little Spaced Out) 싸이키델릭 밴드 무딴치스(‘Os’는 복수형 정관사입니다)의 기념비적 트랙입니다. 그때 그 시절의 둥둥거리는 베이스와 알딸딸한 사운드는 세월이 흘러도 ‘모던’하군요. 7. Tom Ze – Jimmy Renda Se 뜨로삐깔리아 무브먼트의 주역 중에서도 가장 아방가르드한 음악인으로 평가받는 똠 제의 음악입니다. 조금 난해하지만 비범함을 느끼는데 지장은 없습니다. 8. Arto Lindsay – Noon Chill 뉴욕에서 활동하는 브라질계 음악인 아르뚜 린지의 아방가르드 음악인으로 까에따누 벨로주와 데이빗 번 사이에서 가교를 놓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오의 냉기’라… 서늘하군요. 9. Sagrado Coracao Da Terra – Sagrado 국내의 프로그레시브 록/아트 록 매니아들에게도 인기 있었던 사그라두 꼬라사웅 다 떼라의 곡입니다. 키보드, 바이올린이 첨가된 화려하고 심포닉한 대곡이군요. 10. Os Paralamas Do Sucesso – Vierne 3 A.M. 브라질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록 밴드인 빠랄라마스 두 수쎄수입니다. 단, 이 곡은 아르헨티나의 찰리 가르씨아(Charly Garcia)가 작곡하고 그가 이끌었던 밴드 세루 히란(Seru Giran)이 연주했던 곡을 커버한 것입니다. 축구는 라이벌이라도 음악은 선린(善隣)입니다. 11. Banda Reflexu – Nego Laranja 브라질에 아프리카 문화의 뿌리가 얼마나 살아있는지를 보여주는 곡입니다. 브라질 북동부의 지명을 따서 ‘살바도르 사운드’ 혹은 ‘삼바레게(Sambareggae)’라고 부르는 음악의 모태를 알 수 있죠. 12. Lenine – Ared 브라질 북동부의 리듬과 멜로디를 팝 음악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레니니의 비교적 최근 곡입니다. 어쿠스틱하면서도 훵키한 리듬감이 넘치는 곡으로 골랐습니다. 13. Marisa Monte – Volte Para O Seu Lar 마리자 몽치는 1990년대 이후 브라질이 낳은 최고의 디바입니다. 모든 스타일의 노래에 능하고, 국제적 트렌드에 민감하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도 잊지 않습니다. 이런 곡이 대표적이죠. 14. Moreno Veloso – Deusa Do Amor 까에따누 벨로주의 아들입니다. ‘국화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모던’한 음악입니다. 신경질적인 듯하면서도 낭만적인 묘한 곡이네요. 그의 앨범에서는 훵키하고 춤추기 좋은 곡도 들을 수 있습니다. 15. Pizzicato 5 – The Girl From Ipanema 보싸 노바의 명곡인 이 곡 모르면 간첩이겠죠. 안또니우 까를루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 만들고 주앙 질베르뚜(Joao Gilberto)가 당시 그의 부인인 아스뜨루드 질베르뚜와 함께 노래한 그 곡입니다. 단, 오늘은 일본의 인디 밴드 피치카토 파이브의 독특한 해석으로 들어 보시죠. 16. Pato Fu – Perdendo Os Dentes 빠또 푸는 일본계 여자인 페르난다 사카이(Fernanda Sakai)가 이끄는 모던 록 밴드입니다. 일본과 브라질의 돈독한 관계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고 실제로 피치카토 파이브랑 친합니다. 그래서 브라질의 느낌은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음악이 브라질 밖에서는 잘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17. Karnak – Abertura Russa 이건 또 뭡니까. 스카 리듬 위에서 러시아 민요가 울려 퍼지네요. 잡탕 음악도 정도가 있지. 그렇지만 그냥 장난이 아니라 탄탄한 음악성에 기초한 밴드입니다. 18. Titas feat. Sepultura – Policia 브라질 음악 소개하면서 세풀투라를 빼면 서운할 분이 많으실 듯합니다. 세풀투라 음악이야 들어보신 분이 많을 터이므로 띠따스(이들도 꽤 유명한 밴드입니다)와 세풀투라가 함께 한 라이브 트랙을 골랐습니다. 시원하게 후려봅시다. 19. Cambio Negro – Cambio Negro 힙합 혹은 ‘훙끄 브라질(funk Brasil)’ 그룹입니다. 와와 이펙트가 걸린 기타와 스크래치 음에 이어 속사포 같은 포르투갈어 랩핑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그룹의 이름과 똑같은 제목의 곡이라서 이들을 잘 대변할 듯합니다. 20. Caetano Veloso & Racionais MC – O Enredo de Orfeu (Historia Do Carnaval Carioca) [흑인 올훼]를 개작한 까를로스 디에그스(Carlos Diegues) 감독의 [올훼(Orfeu)](1999)의 사운드트랙의 첫 트랙입니다. 카니발 분위기에서 까에따누 벨로주의 여린 목소리가 나오다가 힙합 그룹인 라씨오나이스 MC의 랩퍼 가브리엘 오 뻰사도르(Gabriel O Pensador)의 랩핑이 나옵니다. 이걸로 여름을 마무리하죠. 더 남았는데 있는데 지면이 모자라네요. 아쉽지만 이 정도로 하고 나중에 정식으로 소개하죠. 아, 어디서 듣냐구요? 소리바다도 정지 먹었다고 하는데 요청이 많으면 제 홈페이지에라도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헉, 그거 불법인가요. 역시 음악 듣기란 건 그리 행복하지는 않군요. 20020720 | 신현준 homey@orgio.net 관련 글 나의 여름 카세트테이프 만들기 – vol.4/no.14 [20020716] 어느 개 같은 여름날의 기록 – vol.4/no.14 [20020716] 무난한 음악팬의 안전한 하룻밤 – vol.4/no.15 [20020801] 납량특집: 나를 섬칫하게 한 다섯 개의 노래들 – vol.4/no.15 [200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