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Otro Yo – Abrecaminos – UNI/Universal Music Latino, 1999 열어젖힌 문 너머의 또다른, 더 진짜같은 나 스페인어 사용권 록 밴드들의 롤라팔루자라고 할 수 있는 ‘워차 투어(Watcha Tour)’의 사이트에 실린 이 밴드의 소개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 음반은 그들에게 국제적인 수준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문을 열어 젖혔으며, 유니버설 레이블을 통해 미국에서 음반을 발매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글이 설명하고 있는 뮤지션은 ‘또다른 자신(the other self)’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오뜨로 요(El Otro Yo)라는 록 밴드이다. 과연 이들의 음반이 그 수많은 록 스타 지망생들을 물리치고 ‘국제적인 수준’에 오를 만큼의 무언가를 과연 갖고 있는가? 다 듣고 난 뒤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자신할 수 없다. 멤버들의 사진을 보면 무척 젊어 보이지만, 그들은 ‘변방’에서 미국 시장으로 진출한 밴드들이 대개 그렇듯 결성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베테랑 밴드이며, 이 음반은 그들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다. 최근(2000) 발매한 음반 [Contagiandose la Energ a de Otro]에서는 키보디스트를 영입하면서 표현의 폭을 좀 더 넓혔지만 이들의 음악이 데뷔 이후 큰 폭으로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 픽시스(Pixies)와 너바나(Nirvana)를 연상시키는 날카롭고 노이지한 기타,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구성, 보컬의 절반 정도와 베이스를 맡는 여성 멤버 마리아 페르난다 알다나(Maria Fernanda Aldana)의 천사표 창법까지,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간단히 말해, 이들이 문을 열어젖히는 데 사용한 열쇠의 상표는 ‘얼터너티브-그런지–모던 록 corp.’이다. 애매모호한 만큼이나 전형적인 분류법이자, 최근 10여 년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너나없이 추구했던 스타일 말이다. 가사의 발음을 주의해서 듣기 전까지는 이들이 미국 밴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이다. 당연한 소리일지 몰라도, 음반 자체가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Arriba”나 “No Me Importa Morir”가 갖고 있는 매끄러운 훅과 거침없는 전개는 밴드의 관록을 느끼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고, “Melodias Vibradoras”의 멜로디는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매끄러운 하강 나선을 그린다(이런 멜로디가 ‘댄스 음악’에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은 음반 말미의 리믹스를 들으면 알 수 있다). 그 외의 곡들도 특별히 퀄리티가 떨어지는 곡은 없으며, 오래 연습한 팀만이 낼 수 있는 유기적인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아쉽다. 최근 록의 동향에 민감하지는 않더라도 빌보드 모던 록 트랙 차트에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곡들이 ‘좋기는 하지만 특별히 인상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독창성이 없다’는 말로 단칼에 정리한다면 ‘변방에 산다’는 같은 처지의 사람으로서는 너무 냉혹해 보여서 사용한 외교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그들이 1996년에 발매한 [Los Hijos de Alien]에 커트 코베인에게 바치는 곡 “Lo De Adento”가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음악을 듣고 나서는 그리 놀라울 게 못 된다. 하긴, 듣기 전에도 놀라울 일은 아니다. 그런 모습은 수없이 보아 왔으니까. 어디나 다 똑같았군, 하면서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다. 하지만 계속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그건 그들이 열어젖힌 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이 사실 ‘진짜 나’보다 더 ‘진실된’ 존재라는 것을 그들이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라는(혹은 알고도 모른 척 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에서 오는 왠지 모를 비애감 때문이다. 그건 롤러코스터의 음악을 들었을 때도, 크라잉 넛,델리 스파이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을 들으며 감탄했을 때도 어슴푸레하게 느꼈던 것이었다. 여기서는 여전히 낯선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런 음악 앞에서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강해진다. 그건 종종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때로는 제대로 꺼내기조차 어려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애감으로 인해 이런 변방의 사운드가 더 절절하게 들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수용자보다는 창작자일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200200719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수록곡 1. Arriba 2. 10,000,000 3. La Musica 4. Filadelfia 5. Aun 6. No Me Importa Morir 7. La Ola 8. Melodias Vibradoras 9. Arruncha 10. Microcosmos 11. El Destino 12. Manana de Otono 13. Violet 14. Ella Se Fue 15. Melodies Vibradoras [Remix] 관련 글 월드컵 스페셜 : 동아시아에서 눈물 지은 나라들 편(4) – 아르헨티나 – vol.4/no.14 [20020716] Sui Generis [Vida] 리뷰 [20020716] Seru Giran [Completo] 리뷰 – vol.4/no.14 [20020716] Fito Paez [El Amor Despues del Amor] 리뷰 – vol.4/no.14 [20020716] Andres Calamaro [Honestidad Brutal] 리뷰 – vol.4/no.14 [20020716] Los Enanotos Verdes [Nectar] 리뷰 – vol.4/no.14 [20020716] Los Fabulosos Cadillacs [Fabulosos Cavalera] 리뷰 – vol.4/no.14 [20020716] Bersuit Vergarabat [Don Leopardo] 리뷰 – vol.4/no.14 [20020716] Illya Kuryaki & the Valderramas [Los Clasicos del Rock en Espanol] 리뷰 – vol.4/no.14 [20020716] 관련 사이트 El Otro Yo 공식 홈페이지 http://www.besotico.com/elotroyo El Otro Yo 홈페이지 http://trakatraka.co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