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17015948-czarsCzars – The Ugly People vs. The Beautiful People – Bella Union, 2001

 

 

아름다운 사람들, 나직한 열망

혹시 부록으로 같이 나왔던 샘플러 CD가 ‘대박’이었던 탓에(사실 지나칠 정도로 잘 만든 CD였다) 정작 본판에는 관심을 덜 가졌던 사람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CD 장식장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을 짜르스(The Czars)의 전작 [Before… But Longer](2000)를 다시 한 번 들어보길 권한다. 아마 드림 팝(Dream Pop)에게 우산을 빌려 쓴 록과 컨트리 커플이 보슬비 내리는 어두운 밤 포크(Folk)로(路)를 터벅거리며 걷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이다. 물론 여전히 비도 내린다.

사실 여기서 끝내도 그만이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일정 수준 이상의 깊이와 품격을 갖추고 있는 음반 앞에서 무슨 할 말이 그리 많겠는가. 데뷔 음반인 [The La Brea Tar Pits Of Routine](1997)을 미처 들어보지 못한 입장에서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그들은 [Before… But Longer]를 통해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확신을 가진 듯 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발길을 돌리기는 어쩐지 아쉽다. ‘크게 변한 것이 없는, 좋은 음반이다’라는 식으로 몇 마디 던진 뒤 지나치기에는 그 내용물이 갖고 있는 매력이 치명적인 탓이다.

드림 팝이라는 말을 꺼낸 김에 조금만 더 나아가 보면, 짜르스의 이 음반은 히즈 네임 이즈 얼라이브(His Name Is Alive)보다는 차갑고 러브 스파이럴스 다운워즈(Love Spirals Downwards)보다는 따뜻하게 들리며,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보다는 디스 모틀 코일(This Mortal Coil)의 그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순간적으로 “Lacemaker”를 연상시키는 환각적이고 격렬한 신서사이저 효과음이 인상적인 “Side Effect”와 “You And Your Sister”에 버금가는 환상적인 대위법적 화음을 들려주는 “Lullaby 6000” 등을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단촐하지만 풍부한 울림을 갖고 있는 블루스 “Black And Blue”와 “Anger”, 전작의 “Gangrene”을 계승하는 뒤틀린 하드 록 “This”, 보코더의 사용이 특징적인 “What Used To Be A Human”, 꿈속에서 듣는 컨트리 같은 “Catherine”에는 현실과 몽상이 만족스럽게 동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곡들은 ‘머리는 구름 위에, 발은 땅에 붙박힌’ 듯한 분위기로 청자의 머릿속을 울려댄다.

그러나 음반을 주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작도 그러했듯이) 보컬 존 그랜트(John Grant)의 음성이다. 이 음반에 새긴 별 넷 중 적어도 하나는 온전히 그의 목소리에 바쳐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당신은 나의 마약’이고 그것이 ‘엑스타시는 아니지만 코카인보다는 좋은 것'(“Drug”)이라 읊조리며 기실 음울한 집착에 불과한 사랑을 진실한 무언가로 바꿔버리는 그의 깊고 어두운 목소리, 원체는 비치 보이스(Beach Boys) 풍의 느슨한 서프 뮤직(surf music)이었어야 할 “Killjoy”를 자폐증에 가까우리 만치 폐쇄적으로 몰고 가는 그 목소리 말이다. 거기에는 비교 자체를 부질없게 만드는 독특한 질감이 새겨져 있다. “Lullaby 6000″을 비롯한 두세 곡에서 배킹 보컬을 맡고 있는 폴라 프레이저(Paula Frazer)의 목소리 또한 (다시 한 번, 전작도 그러했듯) 언급해야 할 텐데, 그녀의 목소리는 프로듀싱이 비워둔 널따란 공간 구석구석에 여유롭게 스며들면서 음반의 깊이를 더한다. 둘이 함께 노래할 때, 그들은 ‘천상’을 떠도는 대신 땅 위를 스쳐가며 갈대를 눕히는 바람이 된다. 드림 팝이니 뭐니 하는 말도 그 바람에 쓸려 날아가 버린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음반 커버를 쳐다보게 된다. 온몸에 문신을 한 ‘추한 사람(ugly people)’이 침대 위에 걸터앉아 매끈한 다리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beautiful people)’을 쓰다듬고 있다. 그런데 꼭 문신을 한 이가 추해야 할 이유도, 매끈한 다리를 가진 사람이 아름다울 이유도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결국 이건 추한 사람과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는 것만을 가리킬 뿐 어느 쪽이 추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는 모른다는 말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결국 어느 쪽이 이겼는지도, 그 승리가 추한 것인지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게 된다. 단지 그 둘 사이에 있는 조용하고 강렬한 욕망, 승리를 향한 갈망인지 음습한 성욕인지 안식에 대한 갈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시간 남짓 흐르는 단정한 혼돈 속에서 나직하게 들끓고 있는 그 욕망만이 어렴풋이 잡힐 뿐이다. 20020712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수록곡
1. Drug
2. Side Effect
3. Killjoy
4. Caterpillar
5. Lullaby 6000
6. This
7. Autumn
8. Black and Blue
9. Anger
10. Roger’s Song
11. What Used To Be A Human
12. Cath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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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zars [Before… But Longer] 리뷰 – vol.3/no.11 [20010601]

관련 사이트
The Czars 공식 사이트
http://www.theczars.net
레이블 Bella Union 공식 사이트 내의 The Czars 페이지
http://www.bellaunion.com/czar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