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 스페인은 유럽이라는 ‘문명 대륙’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1975년까지 ‘독재 정권’ 치하에 있었습니다. ‘문명 대륙’이라는 단어는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이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러나 1937년의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Franco)라는 장군님께서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다가 돌아가실 때까지 ‘총통’으로 군림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후 민주화 과정을 밟았으니 한국보다 겨우 10년 남짓 앞섰을 뿐입니다. 1982년 월드컵을 통해 스페인이 독재국가의 오명을 벗고 안전한 나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은 월드컵 기간 중 TV를 열심히 보신 분은 한두 번쯤 들으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스페인은 중세에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고 그 결과 서유럽의 나라들로서는 이례적으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클래식 기타를 배우는 분들이라면 “알함브라의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이라는 곡에 도전해 보았을 텐데, 이 궁전이 바로 이슬람 사원이죠. 스페인 사람들이 다른 유럽인들과 달리 좀 시커먼 이유도 이런 역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스페인이 축구 강국이라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프리메라 리가는 이탈리아의 세리에 A나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와 더불어 세계에서 ‘한 몸값’하는 선수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어서 우승과 준우승은커녕 4강에 올라간 적도 한번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준준결승에서 동아시아의 한 나라한테 승부차기 끝에 석패하여 다시 한번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다음 번에는 기필코 한국과의 결전을 피하는 대진표를 선택하여 ‘매번 우승하는 나라만 우승하는’ 월드컵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라울(30세)과 모리엔떼스(26세)가 그때까지는 아직 쌩쌩할 테니 못하리라는 법은 없을 겁니다. 이상 잡소리였습니다. 스페인의 대중음악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플라멩꼬(flamenco)가 떠오르고, 이는 앞서 말한 아랍 문화의 영향을 고려해도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플라멩꼬하면 집시 킹스(Gipsy Kings)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프랑스 태생이므로 ‘스페인 음악’이라기보다는 ‘집시 음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일단 제외합니다. 게다가 이들은 ‘월드 뮤직계의 배리 매닐로우’라는 별명처럼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저 그렇다’는 평을 듣기 때문에 [weiv] 독자 같은 젊은 분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을 법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취향과 아예 정반대로 보이는 플라멩꼬 음반 하나를 골랐습니다. 까르멘 리나레스(Carmen Linares)라는 플랑멩꼬 디바의 음반을 골랐습니다. 이건 ‘월드 뮤직이 쿨한 청중의 관심을 유도하려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같이 아예 케케묵은 음악이 차라리 낫다’는 제 나름의 판단에 근거한 것인데 결과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파두의 사우다드(saudade)와 더불어 라틴 여인의 절절히 맺힌 한을 의미한다는 두엔데(duende)가 어떤 것인지 느껴보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집시 킹스, 팝 지향적 플라멩꼬의 ‘월드 뮤직 스타’ 플라멩꼬 역시 요즘은 나이트클럽에서도 잘 울려나오고 팝 가수들도 많이 부릅니다. 이걸 ‘누에보 플라멩꼬(Nuevo Flamenco)’라고 부르지 않을 리가 없죠. 그 가운데 께따마(Ketama)나 빠따 네그라(Pata Negra) 같은 그룹은 1980년대 이후 플라멩꼬를 록이나 블루스와 결합시켜서 ‘플라멩꼬 쿨(flemanco cool)’이라는 신종 장르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번 호에서 이들의 음악까지 듣기는 힘들지만 께따마의 연주는 하라베 드 빨로(Jarabe de Palo)의 한 트랙에서 맛만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누에보 플라멩꼬에 관한 이야기는 하라베 드 빨로에 관한 글을 쓰다가 알았습니다. 하라베 드 빨로는 빠우 도네스(Pau Dones)라는 인물이 이끄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인데, 음악 사이트가 아닌 한 사이트에서 “21세기를 위한 스페인인”으로 선정된 걸 보면 지명도나 영향력이 강한가 봅니다. 모두 30명의 인물이 선정되었고 그 가운데 대중음악계에서는 빠우 도네스와 알레한드로 산스(Alejandro Sanz) 두 명밖에 없고, 대중문화계 전반을 보더라도 영화 감독 뻬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Alejandro Amenabar) 그리고 영화배우 안또니오 반데라스(Antonio Banderas)와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 정도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한때는 아버지가, 최근에는 아들이 전세계 여성들을 가슴 설레게 한 이글레시아스 부자도 포함되지 않는데 말입니다. 하라베 드 빨로는 이른바 록 엔 에스빠뇰(Rock en Espanol)을 논할 때도 빠지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 용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지만 일단은 기성의 주류 록과는 다르면서 스페인어 가사로 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을 지칭한다고 느슨하게 정의해 둡시다. 즉, 한국에도 팬층이 조금 있는 메까노(Mecano), 끼꼬 베네노(Kiko Veneno), 루즈(Luz) 등 ‘내수용’ 팝/록과는 정서나 태도가 조금 다릅니다. 하라베 드 빨로를 비롯하여 에로에스 델 실렌씨오(Heroes del Silencio), 마노 네그라(Mano Negra), 로스 로드리게스(Los Rodriguez) 같은 베테랑부터 라 오레하 드 반 고호(La Oreja de Van Gogh), 끄리스띠나 이 로스 수브떼라네오스(Cristina y Los Subterraneos) 등의 신예 등이 록 엔 에스빠뇰에 포함되는 스페인의 밴드입니다. 물론 이런 정보는 계속 업데이트되어야 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 이 중 마노 네그라와 로스 로드리게스의 이력은 특이합니다. 마노 네그라의 경우 밴드를 이끈 마누 차오(Manu Chao)의 아버지가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마노 네그라는 ‘록 프랑세(rock francaise)’에도 속하고, ‘록 에스빠냐(rock espana)’에도 속합니다. 음악 장르는 ‘펑크’인데, 프랑스 펑크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또 길어지니 생략하겠습니다. 한편 로스 로드리게스는 아르헨티나로부터 ‘경제 위기를 피해서’ 스페인으로 이민 온 안드레스 까라말로(Andres Caramalo)가 이끌었던 밴드입니다. 국제적 음악적·문화적 교류가 발생하는 흥미로운 사례에 속합니다. 이번에는 일단 로스 로드리게스가 해산된 뒤 안드레스 깔라마로가 발표한 솔로 음반 하나를 골랐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냉대 속에 중단된(ㅠ.ㅠ) 아르헨티나 록 시리즈를 어떤 식으로든 재개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팝/록 사이트 [Rock y Pop]의 대문 이상의 ‘록 엔 에스빠뇰’ 밴드들은 ‘라틴 얼터너티브’라고 마케팅되고 있지만, 골수 ‘인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199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한때 얼터너티브했던’ 밴드들을 메이저 레이블에서 대량 마케팅했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페인의 인디 레이블들을 뒤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국내의 모던 록 매니아들이 이들을 이미 개척해 놓았고, 수입 전문 레이블에서 몇 종을 정식 수입해 놓은 상태입니다. 시에스따 레이블과 엘리펀트 레이블이 대표적인 인디 레이블들입니다. 슬프고 우울하고 느린 정서를 좋아하시는 분은 시에스따 레이블을,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 정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엘리펀트 레이블이 취향에 맞으실 겁니다. 라 부에나 비다(La Buena Vida)와 미갈라(Migala)는 이미 1개씩의 리뷰가 올라와 있으니 차제에 다시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아 참 하나 빼먹을 뻔했습니다. 스페인 북동부 지역은 까딸루니아라고 부르는데 이 곳은 잘했으면 포르투갈처럼 독립국이 될 뻔한 지역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스페인의 주류 사회와는 좀 다르죠. 이곳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마리나 로쎌(Marina Rossell)은 마치 큰 언니처럼, 마치 늘푸른 소나무처럼 까딸루니아인들의 집단 무의식이라는 ‘하나의 지중해 세계’를 노래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정식 수입된 그녀의 2000년 앨범을 첫 번째 리뷰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월드컵이 끝난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월드컵 타령이냐?”고 물으신다면 본래 이 시리즈가 월드컵을 빙자하여 세계 각국·각지의 음악들 중에서 [weiv] 독자들의 취향에 어울릴 만한 것들을 추려서 소개하는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본래는 브라질의 우승에 맞추어 브라질 특집을 쌈빡하게 하고 이름을 바꾸려고 했으나 월드컵 기간 중에 이래저래 바빠서 일정을 맞추지 못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번에 스페인, 다음 번에 아르헨티나를 훑어보고 브라질은 그 다음에 찾아가겠습니다. 본래 꼭 그럴 예정은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유럽 대륙이든 아메리카 대륙이든 ‘라틴권’ 음악에 초점이 맞추어지네요. 날도 더우니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듯합니다. 더 덥나요? 20020709 | 신현준 homey@orgio.net 관련 글 월드컵과 월드 뮤직? – vol.4/no.11 [20020601] 월드컵 스페셜 : 동아시아에서 눈물 지은 나라들 편(1) – 프랑스(및 벨기에) – vol.4/no.13 [20020701] 월드컵 스페셜 : 동아시아에서 눈물 지은 나라들 편(2) – 이탈리아 – vol.4/no.13 [20020701] Carmen Linares [Desde Alma: Cante Flamenco en vivo] 리뷰 – vol.4/no.14 [20020716] Marina Rossell [Y Rodara El Mundo] 리뷰 – vol.4/no.14 [20020716] Jarabe de Palo [Depende] 리뷰 – vol.4/no.14 [20020716] Andres Calamaro [Honestidad Brutal] 리뷰 – vol.4/no.14 [20020716] Cooper [Fonorama] 리뷰 – vol.4/no.14 [20020716] La Casa Azul [El Sonido Efervescente] 리뷰 – vol.4/no.14 [20020716] La Buena Vida [Hallelujah!] 리뷰 – vol.4/no.14 [20020716] La Buena Vida [Gran Panorama] 리뷰 – vol.3/no.13 [20010701] Migala [Arde] 리뷰 – vol.3/no.4 [20010216] 관련 사이트 스페인 음악 사이트들 http://www.todomusica.org http://www.cse.psu.edu/~molinero/rock.html http://www.rockeros.com/ http://kal-el.ugr.es/pop/po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