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9050537-0414fractal프랙탈(Fractal) – Un Hombre Solo – Tubeamp, 2002

 

 

TV스타가 되고싶은 청년의 뒷걸음질

다시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비가 오고 태풍이 밀려온다. 그리운가? 그리울 리가. 그리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번 오는 것이지만, 비록 그 기간이 멀찍이 있다고는 하지만, 늘 처음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감상적으로 되기도 한다. 그것은 스스로 나약하기 때문이라 탓할지라도 어느 땐 참으로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한 다시금 내년의 장마를 기다릴 것이다. 이런, 아직 올해 장마가 끝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후회를 먼저 해야할까.

그러니 억지스레 이번 앨범과 연결시켜보자면, 후회할지도 모를 감상에 젖은 한 젊은이가 스스로의 유혹에 못 이겨 얼굴을 들이미는 꼴이다. 앨범 커버에는 두 팔을 쫘악 벌린 채 정면을 응시하는 청년이 있다. 제목은 ‘Un Hombre Solo’로서 ‘A Lonely Man’이란다. 외형적으로 살펴보자면 직접 작사, 작곡, 연주, 프로듀서에 보컬까지 맡았으니 ‘오, 훌륭한 뮤지션이 탄생했구나’ 탄성을 질러도 좋겠거니와 나름대로 ‘아래에서’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왔으니 명목도 밀릴 것은 별로 없다. 여기에 인텔리전스 댄스 뮤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댄스 뮤직’이라 하니(본인의 말에 따르면 인이 박히는 것은 싫단다) 판에 박히지 않은, 권위주의라든가 선민의식에 빠지지 않은 당차고 건전한 의식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하며 부담 없이 몸을 흔들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후회할 것이 무엇이랴. 아마도 괜한 심술이 발동했나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댄스 뮤직이 뭐가 어때서. 음악을 들으면서 인상쓸 필요는 없는데. 저 멀리 노동요가 우리의 심상에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면 본연에 충실한, 허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흥겨움도 필요하다. 하지만 구태여 본인이 공공연하게 ‘댄스 뮤직’이라고 말할 건 못된다. 지나친 자만심일까. 테크노 디제이가 힙합을 하든, 프로그레시브를 연주하든 간에 구구절절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설명하고 재단한다는 것은 과시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그리하여 문제는 어느덧 야망으로 넘어간다. 욕심이 많군. 부족한 것은 상부상조해야 할 터인데 무리하면서 본인이 모든 것을 채워가려고 하니. 영화 <벨벳 골드마인>의 첫 부분, 오스카 와일드에게 장래희망을 묻자 ‘스타’라고 하던데 프랙탈(Fractal) 또한 ‘탈’을 쓰고서 스타가 되고 싶은 건 아닌지. 그러니 음악은 음악대로, 앨범에 스며든 장치는 장치대로 눈에 드러나니, 앨범 속지에 프랙탈과 김제형이라는 본명을 혼용하고 있다는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이것을 빌미로 두 번째 사건으로 넘어간다면, 프랙탈은 본인의 솔로 앨범으로서 거의 모든 곡을 직접 부르고 있다. 이중 “Adios”는 게스트 보컬 김일진의 음성으로 한번 더 실려있는데 비교해서 들으면 ‘재미’있다. 아니, 보다 냉혹해지자면 프랙탈은 결코 보컬로서는 장점이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의하면 “아무래도 우리나라 특성상 보컬리스트에게 더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라는데, 가사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단어를 분절시키며 끊어 부르는 것이 듣기에 영 불편하다. 그리고 대부분 사랑타령. 진부하고 불필요한 가사는 “처음부터 널 원했어 깊은 두 눈에 빠져 버린 거야”, “더 이상 너의 말에 속지 않아”, “믿지 않을 꺼야 오늘이 지나면 잊을 수 있단 말” 등으로 패기 어린 청년이 썼다기보다는 노회한 작사가의 상투와 닮았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연주곡이 두드러질 수밖에. 하지만 2000년에 발매되었던 테크노 컴필레이션 앨범 [PLUR]에 실렸던 “Warning Shot”이 유일한 연주곡으로 수록되어있을 뿐이다. 이로서 그가 트렌드에 어느 정도로 민감해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자드럼의 루핑이 두드러지고 멜로디가 강조되는 유로 댄스 분위기의 복고성은 시대에 대한 오마주라기보다는 또 다른 트렌드에 대한 집착으로 비추어진다.

이를테면 회귀이거나 퇴행이다. 음반의 분위기는 솔리드(Solid)나 듀스(Deux)의 그림자로 어려있고(아니면 2Step Garage라 하겠지만) “Gigolo feat. No.9″의 유로 댄스 풍 음악은 기존 국내 댄스 음악과의 차별이 엷어진다. 다만 잘게 끊어 치는 기타가 불독맨션(Bulldog Mansion)의 서창석으로 반짝하기는 하지만, “Let Me Take You There”의 전주가 유려한 댄스 리듬으로 문을 열어도 이내 ‘가요 풍’의 구구 절절한 멜로디 집착에 중독되면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화려한 것에 집중하려 음악에 소비된 악기는 선명하되 낭비되듯 불필요한 부분까지 공간을 채워 쉴 틈을 주지 않은 채 공식에 따라 진행된다. 약간의 그루브, 약간의 애시드, 여기에 친숙한 요소들의 조합. 그나마 이한철이 보컬을 맡은 “Forget-me-not”이 중간적인 위치에 놓여 TV방송과 다른 발견의 느낌을 주지만 이것뿐이다. 물론 쇼 프로그램에는 더없이 어울릴 음악이 가득하니 조만간 방송에서 만나볼 수도 있겠다.

결국 잡다한 것들은 버리고 하나에 집중했어야 했다. 화려한 외양은 버리고 건조하게. 첫 번째 솔로앨범이라는 부담과 과욕의 탓이런가. 그런데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그리 많았던가. 그리하여 올해도 변함없이 다시 장마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벌써 내년 장마를 기다려야할 것 같다. 아쉬운가? 아쉬울 리가. 아쉬울지도 모른다. 20020707 | 이주신 weiv@dreamwiz.com

4/10

수록곡
1. Muy Bien
2. Let Me Take You There
3. Adios (Original Edit)
4. 2726
5. 기억
6. Shine
7. 美小女
8. Gigolo feat. No.9
9. 여유
10. Un Hombre Solo
11. Adios
12. Forget-me-not
13. Insulin
14. Warning Shot
15. Let Me Take You There (east4A deep NY mix)

관련 사이트
프랙탈 공식 사이트
http://www.iamfractal.com
프랙탈 팬 클럽
http://www.freechal.com/iamfractal
레이블 튜브앰프 공식 사이트
http://www.tubeamp.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