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3031220-canadaBoards Of Canada – Geogaddi – Warp, 2002

 

 

그들만의 질서

앰비언트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의 실험을 거쳐, 오브와 에이팩스 트윈(Aphex Twin)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점층적으로 성장해왔다. 축적된 토대는 앰비언트를 사운드의 지층을 두텁게 하는 원론적인 방법에서 나아가 프로그레시브한 비트의 접목과 다양한 음원의 응용을 안정적으로 안착시켰다. 그렇지만 결국 앰비언트는 주된 ‘스타일’로 자리잡지는 못했고 자연스러운 ‘사운드의 질감’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졌다. 비록 앰비언트적 접근이 만연하는 세상이지만 ‘응용’만 살아남았을 뿐 근원을 두텁게 하는 사유의 발전은 실종 되 버린 것이다. 비교적 그렇지 않은 예로써 앰비언트와 재즈를 접목시킨 에즈 원(As One)이나 앰비언트적인 질감을 우선시하는 오테커(Autechre)를 들 수는 있겠지만 주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작금의 세태에 반하는 적절한 예로써 보즈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의 등장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이클 샌디슨(Michael Sandison)과 마커스 오웬(Marcus Eoin)의 듀오체제인 보즈 오브 캐나다는 비주얼과 음악의 결합에 몰두한 헥사곤 선(Hexagon Sun)이란 종합 예술 창작집단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보즈 오브 캐나다란 이름은 그들이 경외했던 캐나다 국립 영화 협회(National Film Board Of Canada)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로 더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포맷의 프로젝트명으로 시작되었다. 이 듀오가 프로젝트 중에서 보즈 오브 캐나다에 중점을 두게 된 계기는 스캠(Skam)레이블에서 발표된 [Hi Scores]란 EP가 호평을 받으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기반으로 그들은 워프(Warp)레이블과 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마침내 정규 앨범이 발표되자 보즈 오브 캐나다는 폐쇄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만한 IDM 계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선율에 반하지 않는 악곡적인 구성과 제목으로 비주얼을 상징하고 음악으로 표현하는 기법 그리고 앰비언트에 충실하면서도 갖가지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장점들이 부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새롭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혁신이었던 거다. 결국 주류의 흐름에서 착오 적이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비껴서 있던 이들의 데뷔작 [Music Has the Right to Children]은 앰비언트와 IDM 계열의 새로운 걸작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같은 성공이 가져온 후속 작에 대한 기대치는 에이팩스 트윈(Aphex Twin)의 [Selected Ambient Works, Vol. 2]이후 가장 기대되는 앰비언트 앨범이다는 어구로 설명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변증법적으로 기대치를 적용하자면 보즈 오브 캐나다의 후속 작은 전작의 토대 위에서 상충되는 것을 조화, 발전시킴으로써 사유를 창출해야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겠지만 더 이상 이런 논리로 해석되는 뮤지션이나 음악은 존재하기 힘들듯하니 접어두자.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전작에서 그들이 의도했던 점을 먼저 살펴보면 음악이 뇌에 작용하는 공상적인 창의력을 극대화시키는 이미지의 연상작용을 메뉴팩처링을 통해서 이뤄내는 것이 돋보인다. 마치 음악으로 시도하는 잘 계획된 퍼포먼스같이 보이는 보즈 오브 캐나다의 음악은, 그들이 멀티-컬처(Multi-Culture)적으로 다양한 간극에 걸쳐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런 반증은 그들이 갖는 지점이 평면적으로 ‘잘 만든’ 음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므로 보즈 오브 캐나다의 후속 작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Geogaddi]를 본격적으로 살펴보자면 (기대치를 감안한다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의 고유한 ‘가치’는 변색되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기존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채로 더욱 원숙해진 느낌이었다. 그 특징을 하나 꼽아보자면 갖가지 스타일을 적절히 혼용하며 그것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게 적절히 모난 부분을 다듬었다는 것인데, 샘플링을 활용하는 체계에 있어 이 점은 잘 드러난다. 부연하면 샘플링을 사용하면서 그것들 각각의 음의 파장이 상충되지 않게 한다는 것인데, 마치 ‘보즈 오브 캐나다 안의 질서’에 묶여서 조화를 이룬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특질은 청자에게 사운드의 구조와 샘플링의 조합에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에 탄복하게 만든다.

곡들의 인상을 순차적으로 풀어보면 나긋한 소리의 파장으로 “Ready Lets Go”가 시작을 알리고. “Music Is Math”는 서서히 앰비언트 특유의 공간감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1969”에 이르러 흥분과 긴장감은 고조에 다다르며, “Over the Horizon Radar”에서 무드의 잔향(殘響)에 젖어들게 된다. 서서히 종국으로 치닫는 앨범은 “Dawn Chorus”에 이르러 음원의 방향을 갈무리하고, 아쉽지만 조용하게 “Magic Window”로 끝을 맺는다.

전체적인 앨범의 분위기는 나른하지만 지루하지 않으며 열정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나직하다. 걸출했던 전작의 반향에 대답하자면 이들이 아직은 기대에 합당한 거장으로써의 시작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발전하지 못했다는 건 아니고 이들은 더 성숙되었지만 아직 ‘Next Big Thing’으로써의 면모는 아니단 거다. 그렇다면 지금 이 앨범을 듣고 있을 청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뭐냐고? 그건 앨범 내에 해답이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에서 그들이 읊조리듯. Just Relax. 20020623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8/10

수록곡
1. Ready Lets Go
2. Music Is Math
3. Beware the Friendly Stranger
4. Gyroscope
5. Dandelion
6. Sunshine Recorder
7. In the Annexe
8. Julie and Candy
9. The Smallest Weird Number
10. 1969
11. Energy Warning
12. The Beach at Redpoint
13. Opening the Mouth
14. Alpha and Omega
15. I Saw Drones
16. The Devil Is in the Details
17. A Is to B as B Is to C
18. Over the Horizon Radar
19. Dawn Chorus
20. Diving Station
21. You Could Feel the Sky
22. Corsair
23. Magic Window

관련 사이트
Boards Of Canada 공식 사이트
http://www.boardsofcana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