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Consorzio Suonatori Indipendenti) – Linea Gotica – Polygram, 1996 이딸리아노들의 세기말의 우울(1)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어둡고 내향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공산당’의 경우도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한국인의 머리 속에 있는 공산당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탈리아 공산당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제도권 정치인의 이미지와 그리 다르지 않다. 대중음악, 그 중에서 록 음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라서 장엄하고 화려한 경우는 있어도 어둡고 무거운 경우는 드물다. 록 음악이 전파된 곳이라면 어디나 번성하게 마련인 헤비 메탈조차 이탈리아에서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그렇지만 1990년대 중반 이탈리안 록의 재발명(reinvention)을 주도했다고 평가되는 얼터너티브 밴드들은 한결같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다. 지오바니 린도 페레띠(Giovanni Lindo Ferreti)가 이끄는 6인조 밴드인 CSI는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이탈리안 록의 부활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밴드다. 이들의 음악은 ‘고딕의 노선’이라는 뜻의 앨범 타이틀 [Linea Gotica]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타이틀 곡인 6번 트랙을 들어 보면, 낮고 무거운 베이스, 저음의 코드를 직직 긁어대는 기타, 단조의 음계를 오가는 또 한대의 기타와 키보드의 효과음이 등장하고 귀에 띄는 드러밍은 들리지 않는다. 보컬은 이런 음들에 묻혀서 웅얼거린다. 노래라고 하기에는 낭송에 가까워서 기분이 착 가라앉는 효과를 주기에는 별 지장(?)이 없다. 말하자면 듣기 거북한(uneasy listening) 음악에 속하고 들을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음악이다. 그 다음 트랙인 “Milleni”는 ‘새천년’을 테마로 한 노래지만 20세기에 21세기를 표현한 음악 가운데 가장 암울하다고 할 만하다. 베이스와 기타가 한 옥타브 차이로 리프를 지루하게 반복하고 보컬 역시 무뚝뚝하게 비슷한 문구를 내뱉는다. 수록곡 중 가장 긴 길이를 가진 “L’ora delle Tentazioni”는 록 밴드의 기악편성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피아노의 단순한 선율이 이끄는 가운데 여전한 남자의 노래에 이어 여자의 가사 없는 보컬이 나온다. 마치 황무지에 혼자 남겨진 여자의 절망 같다. 앞에 배치된 트랙들이 비교적 길이도 짧고 노래 형식에 가까워서 그래도 들을 만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언 커티스(Ian Curtis)나 닉 케이브(Nick Cave)를 들을 때의 암울함과 절망감과 비슷한 느낌을 떨쳐버리기는 힘들다. 마지막 트랙 “Irata”은 다소 이색적이다. 넓게 퍼지는 오르간과 블루스풍의 기타로 시작되고 중반부부터는 어쿠스틱 기타의 힘찬 스트러밍도 나오면서 점층적으로 기분을 고양시킨다. ‘절망 속의 희망’을 강요(?)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제 와서?”라는 반문이 더 강할 뿐이다. 스페인의 미갈라(Migala)의 음악을 들을 때도 그랬지만 지중해의 아름다운 정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지울 수 없는 침울함이 깃드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가사라도 들여다보아야 할텐데 그건 나의 능력을 조금 웃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더듬더듬 이해해 보았더니 페레띠는 보스니아 내전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걸 ‘세기말의 우울’로 표현하는 것은 촌스러운 일일까. 20020628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수록곡 1. Cupe Vampe 2. Sogni e Sintomi 3. E Ti Vengo a Cercare 4. Esco 5. Blu 6. Linea Gotica 7. Millenni 8. L’ora delle Tentazioni 9. Io e Tancredi 10. Irata 관련 글 월드컵 스페셜 : 동아시아에서 눈물 지은 나라들 편(2) – 이탈리아 – vol.4/no.13 [20020701] Lucio Battisti [Battisti] 리뷰 – vol.4/no.13 [20020701] C.S.I.(Consorzio Suonatori Indipendenti) [Linea Gotica] 리뷰 – vol.4/no.13 [20020701] Ustmano [Ust] 리뷰 – vol.4/no.13 [20020701] Uzeda [Different Section Wires] 리뷰 – vol.4/no.13 [20020701] La Crus [Dietro La Curva del Cuore] 리뷰 – vol.4/no.13 [20020701] Massimo Volume [Club Prive] 리뷰 – vol.4/no.13 [20020701] A Short Apnea [A Short Apnea] 리뷰 – vol.4/no.13 [20020701] Yuppie Flu [Yuppie Flu at the Zoo] 리뷰 – vol.4/no.13 [20020701] Giardini di Miro [Rise And Fall Of Academic Drifting] 리뷰 – vol.4/no.13 [20020701] 관련 사이트 C.S.I. 사이트들 http://http://www.caronte.co.uk/archivio/csi/cpcsi.htm http://space.tin.it/musica/mircori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