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2031437-Lucio20Battisti20-20Battisti(1999)Lucio Batisti – Battisti – BMG Italy, 1999/2000

 

 

‘국민적 깐따우또레’의 실험과 견습

1980년대 한국에서 음악을 깊이 들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치고 이탈리아의 깐따우또레(cantautore)인 루치오 바띠스띠(Lucio Battisti)의 [I Giardini di Marzo](1972)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Il Mio Canto Libero](1973), [Il Nostro Caro Angelo](1973), [Anima Latina](1974) 등 그의 전성기의 작품 전부를 감상할 기회는 거의 없었을지라도, 무수한 편집 음반들을 통해 그 중 몇 곡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루치오 바띠스띠는 1998년에 세상을 하직한 고인(故人)이다. 게다가 1978년 이후 그는 콘서트도, 인터뷰도, 방송 출연도 일체 거절하고 은둔 생활을 했으므로 그가 말년에 무엇을 했는지를 상세히 아는 사람은 이탈리아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신보’가 아니라 편집음반이다. 그렇다면 무수한 ‘베스트’나 ‘그레이티스 히츠’ 앨범? 다행히도 이 앨범은 그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경력을 시작한 [Lucio Battisti](1969)와 [Emozioni](1970)에서 대부분의 곡이 선곡되었고 따라서 1971년 작곡가로 성공을 거두고 안정적으로 음악활동을 전개하기 이전의 음원들을 들을 수 있다. 이 점이 이 음반을 지금 리뷰하는 이유다. 이는 단지 개별 아티스트의 ‘초기의 궤적’의 의미를 넘어 1960년대 말 전 세계적 차원에서 ‘팝’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실제로 음반에 수록된 트랙들, 특히 1969년에 제작된 트랙들에서 1960년대 말의 사운드 프로듀싱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코드 진행이나 가창 스타일 면에서 기타(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기초로 작곡한 것이 틀림없지만, 편곡의 대부분은 건반악기나 관현악기의 오케스트레이션 중심으로 이루어진 트랙들이 많다. 이걸 시장의 요구에 따라 깐쪼네 전통과 타협한 산물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설사 이런 타협을 통해서도 자기 고유의 색깔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해먼드 오르간이 추가된 “Balla Linda”와 “Non e Francesca”같은 곡들은 1960년대식 연가의 전형이자 오케스트라 편곡 속에서도 싸이키델리아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로 1960년대 이전의 ‘사랑 노래’에서는 사람(주로 여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지명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게다가 린다(Linda)는 이탈리아 여자의 이름이 아니다).

물론 몇몇 트랙에서는 이런 전통, 관습과 단절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Insieme a Te Sto Bene”는 거칠고 날카로운 기타와 드럼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는 일렉트릭 사운드가 번뜩이고, “Le Tre Verita'”는 여기에 더하여 몽환적으로 반복되는 기타 연주가 더해진다. “Il Tempo di Morire”처럼 밥 딜런 스타일의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유머러스한 노래는 중반부터는 블루스풍의 기타 솔로와 어우러져 그의 음악적 기초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또 하나의 힌트를 제공해 준다.

간혹은 “Mi Ritorni in Mente”나 “Emozioni”같이 고음의 열창부가 확실한 ‘깐쪼네 풍의 대곡’도 있지만 이런 곡들도 바띠스띠가 부르면 무언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이탈리아적(?)’인 곡들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1969년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인 “Un’Avventura”이나 “29 Setembre”같은 짧지만 쌈빡한 곡이나 “Fiori Rosa, Fiori di Pesco”나 “Pensieri e Parole”처럼 당시로는 파격적인 형식과 진행을 가진 대곡풍의 곡들도 이 앨범을 언급하면서 빼놓기 힘든 곡들이다. 누군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란 세대 갈등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대간 간격을 메우는 존재’라는 아리송한 표현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런 곡들을 듣다 보면 그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20020704100119-luciobattisti3이런 음악이 ‘그때 그 시절’ 것으로 들리는가 아니면 ‘고전적 아우라’로 들리는가는 청자의 취향에 의존할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레코딩 테크놀로지가 도입되기 시작할 무렵 이런저런 음향의 실험을 전개하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조금만 겸허해지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1960년대 말 팝은 마치 첫사랑의 순수한 열정으로 다가온다. 영미의 ‘글로벌 팝’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로컬 록’도… 20020624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P.S. 본래는 곧 발매될 예정이라는 [Pensieri e Parole]라는 두 장 짜리 음반을 리뷰하려고 했지만 아직 발매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1999년에 발매된 이 음반을 골랐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수록곡
1. Emozioni
2. Pensieri E Parole
3. Fiori Rosa Fiori Di Pesco
4. Insieme A Te Sto Bene
5. Le Tre Verita’
6. Mi Ritorni In Mente
7. 7 E 40
8. Balla Linda
9. Non E’ Francesca
10. 10 Vivro’ (Senza Te)
11. Il Tempo Di Morire
12. Anna
13. Un’avventura
14. Acqua Azzurra Acqua Chiar
15. 29 Settembre
16. Nel Coure Nell’an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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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호미 언니가 쓴) 루치오 바띠스띠에 관한 간추린 바이오그래피(언해본)
http://homey.compuz.com/zboard/view.php?id=popicons&no=57
루치오 바띠스띠 공식 사이트
http://www.luciobattisti.net/
루치오 바띠스띠 영어 사이트
http://welcome.to/luciobattisti
루치오 바띠스띠 비공식 사이트
http://digilander.iol.it/andrealatino/
루치오 바띠스띠 디스코그래피
http://www.hitparadeitalia.it/disco/battistil_a.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