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2114014-eminem_eminemshowEminem – The Eminem Show – Aftermath/Interscope, 2002

 

 

양치기 소년의 외침

“미안해요 엄마 / 상처입힐 뜻은 없었어요”(“Cleaning Out My Closet”) 정말? 물론 뻥이다. 그렇게 질질 짜(는 듯 하)다가 “당신 장례식 때조차 내 딸은 안 나타날걸”하면서 바로 낯빛을 바꾸는데 누가 그 말을 믿을까. 여전한 악담인데, 이번엔 마냥 장난스럽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삼촌) 로니가 죽었을 때 당신은 (로니 대신) 내가 죽었으면 했다고 말했어, 기억나요?” 물론 이것마저 에둘러서 거는 장난일지 모른다. 미디어 서커스의 제왕이자 자칭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최악의 존재”(“Without Me”)인 에미넴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몇 년 동안 쭉 보아왔듯이.

(온갖 스캔들과 더불어) [The Marshall Mathers LP](2000)를 들고 나와 치약을 짜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멀티 플래티넘을 따낸 바 있는 에미넴의 세 번째 음반은 지금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 콘(Korn)과 파파 로치(Papa Roach)의 공세를 물리치면서 5주째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머물러 있고, 3백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그가 날려대는 육두문자를 들으며 거리를 걷거나 방안에서 고개를 까닥거리는 중이다. 판매고만이 아니라 평단의 반응도 좋다. [피치포크미디어]는 “Eminem is great!”란 외침과 함께 이번 음반에 9.1점을 줬고, [롤링 스톤]도 별 넷을 매겼으며, [HipHopSite.com] 역시 ‘Almost Flawless’와 ‘A Must Buy’라는 딱지를 붙여줬다. 차트 성적과 평론가들의 권위에 굴복하여 음반을 사라는 뜻이 아니라 에미넴이 행복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당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내가 없으면 허탈해할”(“Without Me”) 줄 알았다니까, 라면서 흐뭇해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를 둘러싼 이 상쾌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보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와 닿는 것은 ‘무거워졌다’는 느낌이다. 묵직한 다운비트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가운데 거칠게 몰아붙이는 “White America”나 싱코페이션을 활용함으로써 긴장감을 유도하는 “Soldier”, 네이트 독(Nate Dogg)과 함께한 “‘Til I Collapse”가 그러한 경향이 돋보이는 곡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닥터 드레(Dr. Dre)의 손길이 묻은 “Business”와 왈츠 리듬을 갖다 쓴 “Square Dance”는 그 무거운 질감에 그루비(groovy)한 비트를 깐 뒤 에미넴 특유의 탄력 있고 거침없는 라임을 덧붙여 튼실한 구성으로 마무리한, 리모콘 버튼을 자꾸 누르게 되는 음반의 베스트 트랙이며,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Dream On”을 샘플로 쓴 “Sing For The Moment”는 “Dream On”의 점층적(이고 감동적)인 구성을 그대로 따르면서 70년대 풍의 ‘거장적’인 록 기타 솔로로 끝을 장식한 ‘진지한’ 느낌의 트랙이다. 쓸쓸한 느낌의 키보드 연주와 함께 록 적인 분위기를 짙게 내비치는 “Cleaning Out My Closet”에서 그는 음반 커버의 심각한 표정 그대로 랩을 하는 것 같다. 이쯤 되면 (키치적인 랩 디스코라 할 수 있을) 첫 싱글 “Without Me”는 판매촉진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묵직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운드만이 아니다. 하도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조목조목 나열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자아성찰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Cleaning Out My Closet”이나 스타의 자리에서 겪는 괴로움을 토로한 “Say Goodbye Hollywood”도 그렇지만 9·11 이후의 부시 행정부에 대한 격렬한 공격을 담고 있는 “White America”와 “Square Dance”도 의외이긴 마찬가지다(이 곡들에서 그가 파악하고 있는 현재의 미국은 “Crazy insane or insane crazy”(“Square Dance”)중 하나인 나라이다). 이 정도면 에미넴 스타일의 PC(Politically Correct)라고 해도 될지 모를 일이다. 뮤지션의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면서 장엄하게 시작하는 “When The Music Stops”는 한술 더 뜨며,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딸에게 쏟는 극진한 애정을 표현한 “Hailie’s Song”은 닭살이 돋을 정도로 자상하고, 대미를 장식하는 ‘귀여운’ 곡 “My Dad’s Gone Crazy”는 물구나무를 선 “Kim”이다(시작이 정말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Without Me”의 뮤직 비디오는 에미넴의 음반을 몰래 구입한 ‘미성년자’를 로빈([배트맨과 로빈]의 바로 그 로빈)이 된 에미넴이 ‘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그러나 아무리 진지하고 착하게 굴어도 에미넴은 에미넴이다. 그의 특기인 여성혐오(misogyny)와 동료 뮤지션 씹기(diss)는 앞에서 언급한 ‘변화’들 때문에 이전보다 더 혐오스러운데, 악의로 똘똘 뭉친 “Drips”나 느끼할 만큼 끈적끈적한 R&B “Superman”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기분으로 고개를 가로젓기에 충분하며, “Without Me”와 “Say What You Say” 등에서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모비(Moby),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등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인간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슈퍼 마초 에미넴이다. 여자는 엄마(에미넴의 엄마 빼고) 아니면 창녀이며 ‘싸나이’의 의리는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바로 그 에미넴 말이다. 물론 유머도 빠지지 않았다. 저번 음반에서 에미넴을 갈구던 매니저 스티브 버만(Steve Berman)은 이번 음반에서 결국 에미넴에게 살해당하고 마는 것이다(“Steve Berman”). 그러게 말은 조심해서 해야 하는 법이다. 에미넴 자신은 자기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지만.

이렇다보니, 다 듣고 나면 (조금 얼얼한 상태에서) 이 음반 전체가 그냥 말 그대로 휘황찬란한 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과대망상증 양치기 소년이 입담 좋게 진행하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주면서 생각할 꺼리까지 던져주는’ 쇼, 모든 쇼의 유토피아 말이다. 물론 이번 음반에서 에미넴이 보여준 능력은 대단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악명 높은 이미지(여성혐오, 동성애혐오, 키치, 마초, 좌충우돌 무뇌아)를 과감히 벗어버리고자 시도하는 동시에 – 사실 그것 때문에 먹고 살아왔는데도 – 자신을 자신답게 하는 것들을 버리지 않으려는 두 가지 목표에 도전해서 그 둘 사이를 아슬아슬하고 절묘하게 조율해냈다. 그 대가로 지금 현재 그에게 주어진 것은 문자 그대로 ‘부와 명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은 도박이었고, 도박은 두 번 연속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과연 그가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여기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쇼 타임이다. 즐기러 가자. 20020629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수록곡

1. Curtains Up
2. White America
3. Business
4. Cleaning Out My Closet
5. Square Dance
6. The Kiss
7. Soldier
8. Say Goodbye Hollywood
9. Drips (featuring Obie Trice)
10. Without Me
11. Paul Rosenberg
12. Sing For The Moment
13. Superman (featuring Dina Rae)
14. Hailie’s Song
15. Steve Berman
16. When The Music Stops (featuring D-12)
17. Say What You Say (featuring Dr. Dre)
18. ‘Till I Collapse (featuring Nate Dogg)
19. My Dad’s Gone Crazy (featuring Hailie Jade)
20. Curtains Close

관련 글
Eminem [The Marshall Mathers LP] 리뷰 – vol.2/no.13 [20000701]
Eminem [The Slim Shady LP] 리뷰 – vol.1/no.2 [19990901]

관련 사이트
Eminem 공식 사이트
http://www.emine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