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 La Tengo – Painful – Matador/Ales(국내수입), 1993 노이즈의 공감각 나는 지금 버스를 타고 사람들이 모여 놀기로 한 산장으로 가는 중이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고 비가 그친 뒤의 밤공기는 알맞게 젖어 있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는 법이다). 도시를 벗어나자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진다. 가끔씩 샛노란 가로등 불빛 아니면 맞은편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자동차의 하얀 불빛만 보일 뿐이다. 멍한 눈으로 창 밖을 보고 있자니, 밤하늘은 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짙은 나머지 검게 보이는 푸른색이었던 것이다. 요 라 텡고가 없었다면, 당신의 CD 플레이어는 과연 누구의 음반을 돌리고 있을 것인가? 요 라 텡고가 마타도어 레이블로 이적한 뒤 처음 발표한 음반인 [Painful]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그것이 그려내는 사운드의 풍경(soundscape)이다. 그 안에 일단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 음반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굉음의 노이즈와 달콤한 멜로디를 황금비율로 직조해 놓은, 초기의 실험적 시도들이 한데 모여 안정감 있게 구현된 음반이라는)는 어쩐지 초라하게 변해버리고 만다. 슈게이징(shoegazing)과 드림 팝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평가도, 소닉 유쓰(Sonic Youth) 스타일의 노이즈 실험이 이 음반에서 한 정점을 이룬다는 평가도, “Sunday Morning”을 연상시키는 나지막한 발라드 “Nowhere Near”같은 곡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영향이 드러난다는 평가도, 정작 음반이 그려내는 사운드의 풍경 앞에서는 사막 한가운데에 놓인 돈가방만큼이나 쓸모없게 보일 뿐이다. 그 풍경이 과연 무엇인지 여기서 말하기란 어렵다. 그것은 느끼기도 쉽고 공유하기도 쉽지만 설명하기란 어려운, 말 그대로 개인적인 체험을 요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그려내는 대략적인 방식을 이야기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음반의 처음과 열 번째 트랙에서 모습을 바꿔 나타나는 “Big Day Coming”은 이 음반의 사운드 스펙트럼이 가 닿는 범위에 대한 일종의 프레임이다. 전자가 사이키델릭한 기타 노이즈와 안개처럼 스멀거리는 해먼드 오르간의 나긋나긋한 연주가 맞물리는 가운데 평온과 불안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곡이라면 후자는 격렬한 노이즈를 내뿜으며 내달리는 곡이지만 거기에서도 정체모를 불안감은 계속 쫓아온다(그래서 그런지 이 곡에서 아이러 카플란(Ira Kaplan)은 노래하는 내내 뒤를 힐끔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사이의 곡들은 노이즈라는 붓으로 평온함과 불안함이라는 두 개의 물감 농도를 조절하면서 그려내는 풍경화들일 것이다. 피드백 노이즈를 질펀하게 풀어헤치는 가운데 느긋한 질주감을 안겨주는 “From A Motel 6″와 “Double Dare”는 상큼한 평온과 엷은 불안(즉 두근거림)으로 채색한 풍경이고, 도입부의 묵직한 베이스 소리가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는 “Nowhere Near”는 노곤함이 돌만큼 따스하게 흘러가다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불길한 느낌의 질척거리는 사이키델릭 노이즈가 끼어든다. 땅을 보며 노래하는 듯한 포크인 “A Worrying Thing”에도 기화(氣化)한 불안함은 오르간 소리를 빌어 곡 위를 떠돌고, 제목을 계속 반복하는 “I Was The Fool Beside You For Too Long”은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법한 노이즈의 벽을 쌓아가면서 청자를 압박한다. 그래서 짙다 못해 섬뜩한 불안함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연주곡인 “I Heard You Looking”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CMJ]의 평자가 지적한 대로 “분명히 지각되지만 뚫리지는 않는”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청자를 음반 속의 풍경으로 끌어들인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Solaris)]에서처럼, 사람들은 요 라 텡고가 끄집어낸 소리 속에서 자신의 추억과 꿈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듣는 것은 페이브먼트(Pavement)와 더불어 90년대 미국 인디 록을 풍요롭게 장식한 대가의 중기 걸작을 듣는다는 ‘대외적’인 경험만이 아니라 ‘사적이고 내밀한’ 음악 감상이라는 드문 경험 또한 안겨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반 커버의 쓸쓸한 폴라로이드 사진과 기타 노이즈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 20020626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9/10 * “The Whole Of The Law”는 70년대의 파워 팝 밴드인 온리 원스(The Only Ones)의 1978년 데뷔 음반인 [The Only Ones]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미국 발매용 편집음반인 [Special View](1979)에도 실려 있다. 수록곡 1. Big Day Coming 2. From A Motel 6 3. Double Dare 4. Superstar-Watcher 5. Nowhere Near 6. Sudden Organ 7. A Worrying Thing 8. I Was The Fool Beside You For Too Long 9. The Whole Of The Law 10. Big Day Coming 11. I Heard You Looking 관련 글 [Ride the Tiger] 리뷰 – vol.4/no.13 [20020701] [Fakebook] 리뷰 – vol.4/no.13 [20020701] [May I Sing With Me] 리뷰 – vol.4/no.13 [20020701] [Electr-O-Pura] 리뷰 – vol.4/no.13 [20020701]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 리뷰 – vol.4/no.13 [20020701]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리뷰 – vol.2/no.7 [20000401] 관련 사이트 Yo La Tengo 공식 사이트 http://www.yolatengo.net Yo La Tengo 비공식 사이트 http://www.yolatengo.net 마타도어 레이블 Yo La Tengo 사이트 http://www.matador.recs.com/yo_la_te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