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29053000-sugar슈가 도넛(Sugar Donut) – Spinner Jump – Ssamzie, 2002

 

 

명랑 쾌활 달콤한 도너츠

전기기타, 베이스, 드럼 순으로 연타하는 인트로를 지나 보컬의 명랑한 음성이 등장하는 첫 트랙이 시작된다. 헤드폰을 귀에 걸고 만난 슈가 도넛(Sugar Donut)의 첫 인상은 밴드 이름만큼이나 재미있는 사운드로 시작되는 느낌이다. 사실, 이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 2001] 라이브 음반을 통해서였다. 이 앨범을 광고하는 문구 중에 ‘귀엽고 달콤한 이름만큼이나 상큼하고 흥겨운 에너지로 가득’하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해도 첫 곡을 들으면 이들의 음악이 왠지 그린 데이(Green Day)류의 ‘펑크’같다는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를 질타(?)하는 듯한 재미있는 가사의 “Pre Face”를 시작으로 이들은 발랄한 ‘펑크 팝’ 사운드를 들려준다. 펑크 록처럼 시끄럽지만, 반면에 팝처럼 부드러운 멜로디가 두드러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음악을 얘기하는 데 있어 장르무용론(無用論)을 펴는 사람이라면 이런 표현이 껄끄러울 것 같다. 그러면 결국 스타일인가? 란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이들을 펑크 팝 밴드로 부르기 조금 애매한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관적인 느낌을 더하자면, 앞서 얘기한 “Pre Face”와 친숙한 멜로디의 “몇 해 지나”는 델리 스파이스의 스타일과도 (어느 정도) 닮았고,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에 적당한 훅도 첨가된 “Call Me Plz”나 명랑 판타지 만화(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어울릴 듯한 “책받침 아가씨” 등은 어떤 면에서는 크라잉 넛과도 닮은 느낌을 준다. 어쩌면 “오예”나 “그림 그리기”를 듣고는 겟 업 키즈(The Get Up Kids)나 세이브스 더 데이(Saves The Day)와 같은 이모코어(emo-core)밴드들의 음반을 찾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소 무책임하지만, 어쩌나, 결론은 각자들이 듣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슈가 도넛의 음악이 단순히 ‘누구와 닮았다더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의 음악은 누구와 닮은 것 같은데, 라고 느끼는 순간에 또 다른 곳으로 튀어버리는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아, 델리스파이스 같네’라고 생각한 순간 ‘어, 아닌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들의 앨범에는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몰라”나 “I Don’t Have”와 같은 멜랑꼴리한 멜로디와 합창 코러스가 매력적인 슬로 템포의 노래도 있으니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이들을 어떤 장르/스타일로 묶으려는 시도는 이들의 음악보다 재미없는 일인 게 분명하다.

그보다는 가뜩이나 홍대 앞 펑크라고 하면 노 브레인 류(流)와 크라잉 넛 류(流)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조선’ 펑크 씬에서 슈가 도넛의 재기발랄한 펑크가 유발할지도 모를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를테면 상대적으로 ‘평범한’ 외모의 청년들이 연주하는 귀에 쏙 들어오는 펑크 팝이 (소년)남성 취향의 펑크 씬에 소녀들을 끌어들이고(실재로 슈가 도넛의 공연장에는 소녀 팬들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도 있다), 나아가 ‘조선 펑크 스타일’의 음악 자체가 그녀들의 문화와 충돌하게 되(어 새로운 어떤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란 (얼토당토않은?)상상 같은 것 말이다. 이게 말이 안되면, 그저 방에서 듣기 부담 없을 정도로 적당히 시끄러운 음악을 한국어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도 그만일 테고. 물론 이런 종류의 음악은 헤드폰이 아니라 공연장에서 즐겨야 제 맛이긴 하다. 아으. 20020626 | 차우진 djcat@orgio.net

6/10

수록곡
1. Pre Face
2. Call Me Plz
3. 몇 해 지나
4. 책받침 아가씨
5. 몰라
6. 그림 그리기
7. 오 예
8. Love Song
9. 집
10. I Don’t Have
11. Spinner J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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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슈가 도넛 공식 사이트
http://www.sugardonu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