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Shadow in San Francisco

디제이 섀도(DJ Shadow)가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유서 깊은 공연장 필모어(The Fillmore)를 찾은 것은 지난 6월 11일이었다. 새 앨범 [The Private Press] 발매를 전후해 그는 유럽과 미 동부를 거쳐 서부에 이르는 투어를 진행 중이다. 절친한 친구인 래티릭스(Latyrx)의 리릭스 본(Lyrics Born)이 저녁 9시쯤 무대에 먼저 올라와 분위기를 띄웠고, 디제이 섀도가 평소 극찬해오던 뉴욕의 아방가르드 힙합 트리오 안티팝 컨소시엄(Anti-Pop Consortium)의 열띤 공연이 뒤를 이었지만,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은 오직 디제이 섀도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10시 반쯤 되자 이윽고 열광적 환호 속에 지직거리는 “(Letter From Home)”의 잡음과 함께 디제이 섀도가 무대에 등장했다. 잠시 디제이 섀도의 사진 작가인 비플러스(B+)가 훵크 명인들과 스타 턴테이블리스트들의 협연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준 뒤 드디어 디제이 섀도의 본격적인 믹스 쇼가 시작되었다. 그의 공연은 두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전반부는 우리가 익히 아는 ‘힙합 턴테이블리스트’ 디제이 섀도의 공연이었다. 이전 디제이 섀도의 작업과 어느 정도 연장선상에 있는 “Fixed Income”, “Walkie Talkie” 같은 신곡들과 예전 곡들이 자유롭게 믹스되어 쉴 틈 없이 연주되었다. 특히 “Lost And Found (S.F.L.)”, “Stem/Long”, “The Number Song”, “In/Flux” 등 익숙한 디제이 섀도 고전들을 다소의 변형을 가미해 연주할 때는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20020629051849-0413us_dj1DJ Shadow의 Fillmore 공연 포스터.

공연의 후반부는 다소 낯설 수도 있었다. 신보에서 보여준 새로운 사이키델리아의 세계를 무대에서 디제이 섀도가 재현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편애한다는 “Six Days”를 시작으로 “Mongrel Meets His Maker”, “Monosylabik”, “Right Thing/GDMFSOB”, “Mashin’ On The Motorway” 등이 지속적으로 연주되었다. 두터운 질감의 사운드는 때론 음반에서보다 훨씬 난해하게 들렸다. 전반부 내내 몸을 들썩이던 대부분의 관객들은 예상대로 갑작스레 숙연해졌는데, 그렇다고 결코 당황하거나 지루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4개의 턴테이블을 휘젓고 다니는 디제이 섀도와 그의 음악에 더욱 진지하게 몰입했다. 더욱이 무대 뒷면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음악에 맞춰 제작된 환각적인 비디오가 시종일관 상영되었기에, 간혹 사이키델릭 록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믹스의 마지막은 장엄한 서사시 “Blood On The Motorway”가 장식했는데, 디제이 섀도는 공연 포스터, 티셔츠, 시디들을 관객석에 뿌린 뒤 후끈한 열기 속에 무대 뒤로 들어갔다.

열띤 환호 속에 이어진 앙코르 무대는 더 큰 감동을 선사했다. 드러머와의 협연 하에 실험적이면서도 그루브한 비트 연주를 선사한 뒤, 다시 혼자가 된 디제이 섀도는 ‘빅히트 메들리’로 공연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신보의 첫 싱글인 “You Can’t Go Home Again”을 시작으로 “Midnight In A Perfect World”, “High Noon” 등으로 이어지는 연주를 들으며 옆에 서있던 백인 청년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공연은 2시간 여 만에 끝이 났는데, 대부분 관객들은 큰 만족 속에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듯했다. 심지어 주차장에서 본 한 친구는 여전히 흥분된 목소리로 “이 친구가 다시 새로운 힙합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며 방방 뛰고 있었다.

[The Private Press]

지난 6월 4일에 마침내 디제이 섀도의 두 번째 정규 앨범 [The Private Press]가 발매되었다. 1998년 이후 ‘엉클(U.N.K.L.E.)’, ‘쿼넘(Quannum)’, ‘브레인프리즈'(Brainfreeze)’, ‘프로덕트 플레이스먼트(Product Placement)’로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젝트는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 뮤지션인지를 짐작케 하지만, 정작 그의 솔로 음반은 무려 6년만에 발매된 셈이다.

데뷔 앨범 [Endtroducing…..](1996)이 미친 그간의 전방위적 파급효과에 대해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대중음악 지형도를 뒤흔든 이 음반 이후 디제이 섀도는 일종의 컬트적 숭배 대상이 되었다. 그의 음악 활동과 결과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까지도 세계 도처의 열혈 팬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턴테이블 연주와 중고 음반 수집에 생활의 대부분을 할애해온 캘리포니아 교외의 백인 청년 조쉬 데이비스(Josh Davis)가 자신을 둘러싼 이 엄청난 변화를 감당하기는 물론 쉽지 않았을 것이다. MCA와 일찌감치 계약을 맺었던 디제이 섀도가 레이블의 양해 아래 장고 끝에 이제서야 정규 앨범을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20020629051849-0413us_dj2DJ Shadow ([The Private Press] 한정판 재킷 중에서.

[The Private Press]는 디제이 섀도의 새로운 음악적 실험들이 반영된 다소 낯선 음반이다. 그의 이전 음악들에 내재했던 고집도 여전하지만, 좀체 예상 못했던 새로운 음악적 욕심이 앨범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금 적잖은 평자들과 팬들이 당황해 하며 섣부른 평가를 애써 유보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물론 이 앨범이 또 다른 디제이 섀도의 마스터피스인지 아니면 과욕에 따른 정도를 넘어선 실패작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청자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훵크든 힙합이든 혹은 사이키델릭 록이든 거라지 록이든, 어떤 음악적 재료도 턴테이블과 믹서, 샘플러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키는 신기(神技)는 여전하다는 점이다.

매니아를 위한 7개의 키워드

서두가 너무 길어졌는데, 지금부터는 새 앨범 [The Private Press]의 발매에 맞춰 디제이 섀도에 관해 ‘궁금할 수도 있는’ 정보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그 동안 디제이 섀도에 관한 일반적인 바이오그라피는 국내외의 다양한 소스들을 통해 쉴새 없이 접해왔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 와중에도 빼먹게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제이 섀도와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비교적 최신 정보들을 7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간략히 소개한다. 디제이 섀도의 팬이라면 분명 흥미로운 얘기들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별 시시껄렁한 걸 갖고 정보랍시고 지껄인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래의 정보가 최소한 [The Private Press]를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팁(tip) 역할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말하자면 디제이 섀도의 변신이, 그 자신도 재차 강조하고 있지만, 결코 급작스러운 것이 아니며 또한 모든 것을 뒤바꾸는 일종의 혁명적 전복도 아님을 독자들이 어느 정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 Lisa Davis

디제이 섀도의 개인 생활에서 가장 큰 최근의 변화는 역시 ‘결혼’이다. 물론 ‘할리우드 연예 통신’도 아닌데 굳이 여기서 그의 사생활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의 부인 리사(Lisa)는 샌프란시스코에서 ’28th Parallel’이라는 회사를 경영한다. 근데 이 회사는 다름이 아니라 일렉트로니카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장 자크 페레이(Jean Jacques Perrey) 같은 노장 뮤지션을 관리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한다. 특히 뮤지션들의 음악 저작권을 ‘불법적으로나 비윤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는 게 가장 큰 일이다.

그렇다면 디제이 섀도는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부인이 노리는 주된 대상이 바로 디제이 섀도처럼 낡은 옛 음악들을 몰래 발굴해서 거리낌없이 샘플로 사용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음악 창작 원리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디제이 섀도는 음악을 ‘훔치는’ 죄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디제이 섀도는 이런 음원들을 훔친 뒤 잘라 붙여서 전혀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 기존의 라이브 악기를 중심으로 한 연주보다 훨씬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음악 작업을 통해 몸소 이를 증명해 왔다. 결국 디제이 섀도의 작업을 촉매로, ‘컷앤믹스(cut’n’mix)’와 ‘컷앤페이스트(cut’n’paste)’는 이제 가장 보편적인 음악 창조 방법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디제이 섀도의 신혼 생활은 결코 적과의 동침이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2. Village Music

6년 전 [Endtroducing…..]의 앨범 재킷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중고 소울과 훵크 비닐(vinyl) 음반으로 가득한 레코드 가게 실내에서 디제이 (지망생)들이 음반을 고르는 모습은 디제이 섀도 자신을 투영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십대 초반부터 수집된 그의 중고 음반들은 결국 [Endtroducing…..]의 사운드 혁명을 위한 거대한 자산이 되었다. 그는 아직도 음악 작업을 하지 않는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중고 음반 수집에 투자한다고 한다.

[Endtroducing…..]의 재킷 배경이 된 레코드 가게는 캘리포니아의 주도(主都)이기도한 새크라멘토의 ‘케이 레코드(K Records)’라는 음반 가게다. 케이 스트리트 쇼핑몰(K Street Mall)에 위치한 이 가게는 오래된 훵크와 소울 희귀 음반 전문으로 북캘리포니아에서 이름난 곳이다. 케이 레코드는 디제이 섀도가 20대 초중반에, 특히 데이비스(Davis)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유독 사랑했던 가게였다. (물론 그는 열렬한 새크라멘토 킹즈(Sacramento Kings)의 팬이기도 하다.) 두텁고 훵키한 비트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추상 힙합은 아마 이 가게에서 음반들을 고르며 처음 착안한 것일지도 모른다.

DJ Shadow – Disavowed ([You Can’t Go Home Again] 싱글 중에서)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케이 레코드는 더 이상 디제이 섀도의 단골 음반 가게가 아니다. 그가 근년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은 그의 집에서 가까운 샌프란시스코 북부의 ‘빌리지 뮤직(Village Music)’이라는 중고 음반 가게다. 아쉽지만 이 곳은 흑인 음악만 전문으로 다루는 음반 가게는 아니다. 빌리지 뮤직은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흘러 들어온 ‘모던 록’ 중고 음반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물론 이 모던 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틀을 갖춘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얼터터니브 록이나 펑크, 스카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1980년대 초 무렵 영국이나 미국의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소규모 레이블들을 통해 나온 무명 뮤지션들의 실험적인 거라지/사이키델릭 취향 록/팝 음반이 대부분이다. 완벽주의자 디제이 섀도는 새 음반을 내놓으며 과거에 썼던 샘플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The Private Press]에서 사용된 새로운 샘플의 상당수는 빌리지 뮤직에서 구입한 음반들이었다. 그렇다면 [The Private Press]의 사운드 변화, 심지어 왜 앨범 타이틀이 ‘Private Press’로 정해졌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궁금증은 풀릴 것이다.

3. Garage/Psychedelic Rock

최근 미국 잡지 [URB]에 실린 올리버 왕(Oliver Wang)과의 인터뷰에서, 디제이 섀도는 오래된 거라지 록 혹은 사이키델릭 록에 대한 뒤늦은 관심과 애정을 ‘고백’한 바 있다. 사실 훵크/소울 매니아들에게 거라지 록의 정신 산란한 사운드는 제임스 브라운 류의 훵키 리듬과 상극에 다름 아니다. 디제이 섀도의 새로운 음악적 관심이 이들에게 충격과 혼란을 야기한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작년에 나온 컷 케미스트(Cut Chemist)와의 믹스 앨범 [Product Placement]를 열심히 들었다면, 아마 디제이 섀도의 달라진 모습을 미리 예상했을 지도 모른다. 특히 [Product Placement]의 두 번째 트랙이 1960년대 후반 사이키델릭 록 샘플들을 주재료로 화려하게 마감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참고로, 아래는 디제이 섀도가 [URB]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최근 수집한 거라지/사이키델릭 45회전 7인치 음반 중에 유달리 선호한다는 다섯 곡이다.
The Outcasts, “Loving You Sometimes”
The Braintrain, “Me”
Jefferson Lee, “Sorcerella”
The Swinigin’, Aploos “Chained And Bound”
The Shaynes, “From My Window”

4. Jeff Chang

그렇다면 디제이 섀도는 이제 힙합이 지겨워진 것일까? 물론 대답은 ‘no’다. 그는 여전히 힙합을 자신의 음악적 원류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은 언제나 힙합 뮤지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디제이 섀도는 팬들이 힙합에 대해 보다 융통성 있게 사고하기를 원한다. 사실 지금의 힙합 음악은 마치 미리 정해진 듯한 사운드 공식을 바탕으로 주조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틀에 박힌 랩과 비트들을 기준으로 힙합을 다른 음악과 변별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힙합이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던 1980년을 전후한 시기를 기억해 보라. 당시에는 온갖 잡동사니 음원들을 컷앤믹스와 컷앤페이스트 방식으로 재조합하여 새롭게 재창조해낸 음악은 모두 힙합이 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부터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에 이르는 모든 음원을 포용해 훵크와 재융합했던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를 디제이 섀도가 가장 영향받았던 뮤지션 일순위로 꼽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올드 스쿨의 전설 아프리카 밤바타의 방법론과 태도를 디제이 섀도가 고스란히 이어받은 이상, 그가 훵크와 소울 고전에만 집착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그릇된 것일지도 모른다.

힙합에 대한 DJ Shadow의 생각 (2002년 4월 28일, 버클리대학교 라디오방송 인터뷰 중에서)

사실 디제이 섀도를 비롯한 솔사이즈(Solesides) 패거리는 애초부터 아프리카 밤바타를 비롯한 1980년대 초반 뉴욕 힙합의 실험적 태도를 흠모해왔다. 혹시 디제이 섀도, 래티릭스, 블랙칼리셔스(Blackalicious)를 솔사이즈 패거리의 전부로 알고 있다면 아마 제프 창(Jeff Chang)이라는 이름은 생소할 지도 모르겠다. 이 중국계 미국인 청년은 비록 뮤지션은 아니지만 디제이 섀도와 함께 애초에 인디 레이블 솔사이즈를 설립하고 운영해온 핵심 인물이었다. 제프 창은 솔사이즈가 쿼넘으로 진화한 후 직접적인 레이블 일은 손을 뗀 상태고, 각종 잡지에 힙합 음악과 문화, 정치에 관한 글들을 기고하며 비평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지금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고 있는 제프 창은 [Can’t Stop, Won’t Stop]이란 제목의 책을 준비중이다. 미국 힙합 문화와 정치를 주제로 한 이 책에서 그는 1982년을 힙합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로 꼽는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아프리카 밤바타가 우뚝 서 있다. 제프 창은, 비록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디제이 섀도와 마찬가지로 올드 스쿨 힙합의 태도와 방법, 문화에 대한 또 다른 헌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5. Film

디제이 섀도의 음악은 직접 귀를 때리거나 신체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가 육감적이고 흥겨운 훵크 샘플들을 주재료로 사운드를 만들 때조차, 디제이 섀도의 음악은 먼저 뇌로 스며들어 세상에 대한 시각적 상상력을 부추긴다. [Endtroducing…..]과 [The Private Press]를 잇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의 하나는 이러한 시각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그의 비범한 재능이다. 사실 “Blood On The Motorway”나 “You Can’t Go Home Again”에서 떠오르는, 어두운 거리와 질주하는 자동차로 요약되는 고독한 도시의 야경은 이미 이전 그의 음악에서 감지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시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디제이 섀도의 음악은 그 스스로가 영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하다. 실제로 디제이 섀도는 영화와 영화음악 광이다. 물론 그는 예상대로 지독한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ion) 팬이다. 바비 워맥(Bobby Womack)의 [Across 110th Street](1972) 주제가와 [Black Caesar](1973)에 실린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The Boss”, 그리고 [Juice](1992)에 실린 에릭 비 앤 라킴 (Eric B. & Rakim)의 “Juice (Know The Ledge)” 등은 그가 늘 영화음악 베스트로 꼽는 곡들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적 상상력은 보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영화음악을 섭렵하면서 쌓아온 내공에 기인한다. 최근 영국 잡지 [Mojo]에 실린 특집 기사에서 그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The Empire Strikes Back)](1980), [더티 해리(Dirty Harry)](1981)부터 최근의 [Memento](2000)와 [High Fidelity](2000)에 이르는 다양한 영화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바 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앉는 그의 영화 사랑이 “Dark Days”에 이어 [The Private Press]의 시각적 상상력, 나아가 장르 파괴적인 태도에까지 투사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6. One To Grow On

이제 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정보 두 가지를 더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비록 [The Private Press]가 디제이 섀도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지만, [Endtroducing…..] 이후 6년여 사이에 디제이 섀도의 이름으로 무수한 앨범들이 발매되었다. 물론 [Psyence Fiction](1998), [Brainfreeze](2000), [Dark Days](2000), [Solesides Greatest Bumps](2000), [Product Placement](2001), 같은 음반들은 당연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디제이 섀도에 집착해온 이들이라면 무수한 라이브 부틀렉 앨범들도 생각날 것이고, 심지어 오토메이터(The Automator)와 함께 비트를 제공했던 [Bombay The Hardway](1998) 사운드트랙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One To Grow On’이란 제목의 앨범은 아직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20020629051850-0413us_dj3One To Grow One] 앨범 표지.

Dj Shadow – “The Number Song (Cut Chemist Party Mix)” ([One To Grow On] 중에서)

[One To Grow On](2001)은 작년 하반기에 ‘극비리에’ MCA에서 발매한 일종의 디제이 섀도 ‘히트곡 모음집’이다. 미국에서만 발매된 이 음반은 사실 정식 판매용으로 나온 것은 아니고, [The Private Press] 발매에 앞서 홍보용 비매품으로 레코드 가게에 뿌려진 샘플러 앨범이다. 하지만 내용은 참으로 알차다. “In/Flux”, “Lost And Found” 같은 초기 명곡부터 “Stem/Long Stem”, “High Noon”, “Lonely Soul”, “Dark Days”까지 엄선된 8개의 대표 곡을 실었다. 특히 “Midnight In A Perfect World”와 “The Number Song”은 기존 앨범의 것과 다른 버전이 실려있어 듣는 재미를 한층 더한다. 예상대로 소리소문 없이 이베이(eBay) 등의 경매 사이트와 해외 중고 음반 사이트에서 이 비매품 앨범이 몇 달째 활발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팬들 입장에서 20불 안팎의 가격은 [Brainfreeze]나 [Product Placement]에 비해 큰 부담은 아닌 모양이다.

7. Private Press

앨범 발매가 몇 달째 지연되면서 [The Private Press]의 트랙들은 이미 지난 4월초부터 인터넷을 떠돌기 시작했다. 혹시 인터넷의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전곡을 MP3 파일로 미리 다운 받았다면 막상 정식 앨범을 접한 뒤 약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애초에 다운 받았던 18개의 트랙에서 4개가 줄어든 14개의 트랙만이 정규 앨범에 실렸기 때문이다.

나머지 트랙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단 “Disavowed”와 “Treach Battle Beat” 같은 트랙은 싱글로 발매된 [You Can’t Go Home Again]에 함께 수록되어 5월 중순에 먼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컷 케미스트, 디제이 누마크(DJ Nu-Mark)와 함께 한 10여분 짜리 라이브 트랙은, 더블 시디로 발매된 [The Private Press] 한정판의 보너스 시디로 탈바꿈했다(이 한정판에는 몇 년째 인터넷을 떠돌던 “Giving Up The Ghost”의 오리지널 버전도 실렸다). 반면 일본에서 발매된 [The Private Press]에는 14곡 외에 보너스 트랙으로 “Flash Back”과 “Dark Days (Main Theme)”이 실렸다고 하는데, 국내반은 어떤 조합으로 발매가 되는지 궁금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The Private Press]는 이제 세상에 나와 본격적인 대중과 평자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메이저 레이블에서 발매된 이 앨범은 이미 첫 주에 미국 내에서만 25,000장이 팔렸고 빌보드 앨범 차트에도 무려(?) 44위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아마 [Endtroducing…..]이 처음 발매되었던 시절을 상기하며, 자신의 위치도 많이 변했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도 많이 변했다고 디제이 섀도 스스로 놀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자신의 음악에 대한 태도나 방법 어느 하나 그 동안 변한 게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리라 더욱 굳게 다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모든 게 궁금하고 의문투성이라면 일단 [The Private Press]를 직접 들어보길 바란다. 물론 이후의 판단은 각자 몫으로 남겨둔다. 20020614 | 양재영 coct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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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K.L.E. [Psyence Fiction] 리뷰 – vol.3/no.4 [200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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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DJ Shadow의 공식 사이트
http://www.djshadow.com
DJ Shadow를 비롯한 Quannum 패거리의 공식 사이트
http://www.quannum.com
MCA의 DJ Shadow 페이지
http://www.mcarecords.com/ArtistMain.html?ArtistId=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