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24100222-0413erikarnaudErik Arnaud – Comment Je Vis – Virgin, 2002

 

 

프랑스에서 인디 록커가 살아가는 방법

현재 27세의 프랑스 총각(?) 에릭 아르노(Erik Arnaud)의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씨임(Seam)의 영향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도 연상했지만 그렇게 훅이 확실하고 ‘상업적’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날카로운 기타 노이즈가 강하지만 그저 ‘극단적’이지만은 않고 견고하게 짷여진 노래 형식과 조화를 이루는 형식과 스타일은 이제까지 프랑스에서 생산된 록 음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커팅 에지’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트랙 “Mecanique”는 노이즈 속에 보컬이 파묻혀서 가사가 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저런 심증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한 프랑스어 웹진에서 에릭 아르노를 소개하면서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를 언급한 것은 ‘쟤네들, 미국의 인디 록에 대해 잘 모르는군…’이라면서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생각도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착각일 것이다. 에릭 아르노가 씨임의 음악을 전혀 듣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또한 듣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유사한 스타일을 창조하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게다가 몇 번 들으면 ‘씨임의 아류’라는 식의 생각을 부끄럽게 할 정도로 그의 음악은 독창적이다. 무엇보다도 키보드의 사용이 상대적으로 많고, 때로는 프로그래밍된 무거운 전자 비트도 많이 들어간다. 또한 영미의 음악 어법을 채용했다고 하더라도 유럽인 특유의 데카당스는 지울 수 없다.

이 앨범은 그의 두 번째 작품이자 메이저 데뷔작이다. 데뷔 앨범은 자신이 소유한 레이블 알리에노르(Alienor)를 통해 발매했는데 이에 대한 정보는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 일단, 귀에 잘 들어오는 트랙은 단조의 어둡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짧게 끊어치는 기타와 랩을 하듯 읊조리는 “Comment Je Vis”, 비슷한 분위기지만 중반부 이후의 기타 라인이 보다 유장해지는 “Je Vis a 50%(pourcent)”, 그리고 ‘노이즈의 세척(wash)’이 지배하는 “Mecanique” 등이다. 이와는 반대로 “French Musique”, “Le Cirque”처럼 나른한 무드를 들려주는 트랙도 존재한다. 점증하는 곡의 전개에 이어 기타의 정성스러운 백킹과 굵은 기타 라인이 두터운 층을 이루는 “Comme Au Cinema”는 가장 공을 많이 들인 트랙같다. 아무렴 프랑스인이 ‘영화에서처럼’이라는 제목의 곡을 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1980년대의 인디 록이 ‘로컬’의 음악 어법이었다면, 1990년대 이후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볼 때 경제적 시스템까지 구축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의 문화적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디 록이 글로벌 음악 어법으로 자리잡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영미 문화와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돌연변이가 나오고 있는 것은 인디 록이 아직 흥미롭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리고 ‘미저러블 드리머스’는 현실의 국적 외에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망상’도 든다. 이 앨범은 이들 중 프랑스 출신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comment je vis)’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어설픈 비유지만 그건 [베티 블루]처럼 절망적이고 우울한 것도, [아멜리에]처럼 유머러스하고 쾌활한 것도 아닌 것 같다. 무얼까? 20020624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P.S.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뒤져본 결과 프랑스에는 도미니끄 아(Domninique A)와 디아블로굼(Diablogum) 등의 유사한 인디록 밴드가 존재한다고 한다.

수록곡
1. Comment Je Vis
2. Devenir Folle
3. HLM
4. Je Vis a 50 pour cent
5. French Musique
6. Best Of
7. Comme Au Cinema
8. Fais Comme On T’A Dit
9. Le Cirque
10. Jalousies
11. Village
12. Mecan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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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abels.tm.fr/fr/artiste.html?artiste=AR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