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ves – The Last Broadcast – Heavenly/EMI, 2002 두려움은 저 멀리 ‘서포모어 징크스’에 대한 불안은 점쟁이의 유리구슬 속에 넣어두고 온 채 (U.K. 차트 1위 핫샷 데뷔라는 후광을 두르고) 당당하게 자태를 드러낸 도브스(Doves)의 새 음반은 밴드라는 유기체의 성장과 발전에 관한 최근 몇 년간의 가장 좋은 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데뷔작인 [Lost Souls](2000)가 다양한 스타일과 ‘중고 신인’다운 뛰어난 사운드 감각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산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고, 서브 서브(Sub Sub)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 내놓은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 싱글인 “Ain’t No Love”를 이번 기회에 들어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젖은 모래처럼 축축하고 까끌까끌한 질감의 사운드와 풍부한 울림의 프로듀싱(음반 해설지에서 사용한 ‘시네마틱’이란 표현은 아마 이를 두고 한 말인 듯)은 이번 음반에서도 여전하지만 전작의 농도 짙은 멜랑콜리는 상당 부분 기화하여 밝은 느낌의 곡들이 제법 포진하게 되었다. “Words”나 “There Goes The Fear”, “The Sulphur Man” 같은 트랙은 낙천적인 분위기와 도브스 특유의 묘한 멜랑콜리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은 곡들에 속할 것이다. 이런 곡들은 항우울제를 다량 복용한 엘보우(Elbow)가 연주하는 것 같다. 이 음반은 ‘누구누구를 연상시킨다’는 말을 하고 싶어 입을 근질거리게 하는 음반이다. 만약 그럴 의욕이 있다면 스톤 로지스(Stone Roses), 오아시스(Oasis), 모과이(Mogwai), 닉 드레이크(Nick Drake),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 등등의 ‘빛나는 전통의 선배들과 동기들’을 밤새도록 비교 대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There Goes The Fear”는 [NME]의 평가대로 ‘비치 보이스가 연주한 스톤 로지스의 “I Am The Resurrection”처럼 들리고, “Satellite”는 블러(Blur)의 “Tender”와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Cop Shoot Cop”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이키델릭 가스펠이다. 절정부에 다다른 모과이처럼 때려부수듯 시작해서 오아시스처럼 전개되다가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현란한 사이키델리아를 거쳐 나긋나긋한 아르페지오로 마무리를 짓는”N.Y.”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며, U2 스타일의 오밀조밀한 리듬기타가 분위기를 돋구는 “Pounding”(실제로 제목처럼 망치로 두드리는 듯 쨍쨍거리는 기타 소리가 들린다)에서 오션 컬러 씬(Ocean Colour Scene)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M62 Song”이 킹 크림슨(King Crimson)에 대한 오마주라는 사실은 아는 척 말하기 민망할 정도이다. 다만 이럴 경우 ‘이러한 음악적 자양분을 그들만의 사운드에 창조적으로 적용시켰다’는 무난한 결론 이상을 바라기가 어렵지만, 사실 좋은 음악이란 언제나 말을 벗어나는 수수께끼를 갖고 있지 않던가. 이러한 ‘창조적 적용’은 자칫하면 재차 산만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난점은 프로그레시브와 사이키델릭이라는 복고적 어법을 통일적으로 활용하면서 극복된다. 또렷하고 인상깊지만 상대적으로 단순한 멜로디와 전형적인 버스-코러스 진행을 보이는 “Words”가 들을 만한 곡이 된 것은 내내 울려퍼지는 영롱한 철금(glockenspiel) 소리와 보컬 하모니, 노이즈를 듬뿍 친 기타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샘플링 등의 시도들 때문일 것이다. 자타공인 그들 최고의 싱글이 될 공산이 큰 “There Goes The Fear”는 이들의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곡이다. 퍼커션과 기타가 번갈아가며 루프(loop)처럼 돌리는 경쾌한 모티브와 정박으로 일관하는 드럼이 주도하는 가운데 기타가 메아리처럼 엷게 울려 퍼지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코러스를 한 번 거칠 때마다 사운드가 점층적으로 두터워지는 고전적인 (하지만 언제 들어도 감동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리듬기타와 드럼은 점점 더 촘촘해지면서 쉴새없이 돌아가는 재봉틀처럼 째깍거리고, 여기에 단아한 플루트 소리와 사이키델릭 노이즈, 각종 효과음 등이 공백을 메워간다. 최후에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해결된 뒤 월드 뮤직처럼 끝나는 이 곡을 들으며 생뚱맞게도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이 떠올랐던 것은 아마 도브스의 홈페이지에 떠 있는 집의 그림이 [Physical Graffiti](1975)의 커버와 닮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이들의 음반 전체에 휘감겨 있는 복고적인 방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장엄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문을 여는 “The Sulphur Man”이나 70년대 아트 록 음반 수록곡이라 해도 믿을 “Friday’s Dust” 등에서도 이번 음반이 담고 있는 프로그레시브-사이키델릭적 성격은 확인된다. 만약 이 말을 다 듣고도 납득이 안 간다면, 음반 속지의 ‘휘황찬란한’ 삽화들을 보아주기 바란다. 이전보다 더 원숙해지고 밀도 있는 음반을 들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전보다 더 젊어 보이고 가벼워 보인다. 그것은 성공을 맛본 자의 여유로움일까 아니면 그들의 ‘쿨’함이 본격적으로 발현된 징표인 것일까. 어느 쪽이건 간에 ‘할 수 있는 동안은 가보자 / 손가락을 지도 위에 얹어 보라구 / 어디에 닿을지 알게 뭐야'(“N.Y.”)같은 자신만만한 선언은 슈퍼그래스(Supergrass) 이후 누가 했었는지 솔직히 좀 가물거린다(또 있다고 해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이 음반은 정말 간만에 만나는 괜찮은 브릿팝 음반이다. 음반 포장을 뜯고 플레이어에 걸어놓는 순간, 오케이, (본전에 대한) 두려움은 저리로 가버린다(there goes the fear). 20020620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수록곡 1. Intro 2. Words 3. There Goes The Fear 4. M62 Song 5. Where We’re Calling From 6. N.Y. 7. Satellites 8. Friday’s Dust 9. Pounding 10. Last Broadcast 11. The Sulphur Man 12. Caught By The River 관련 글 Doves [Lost Souls] 리뷰 – vol.2/no.21 [20001101] [us line] Doves in New York – vol.3/no.7 [20010401] 관련 사이트 도브스 공식 사이트 http://www.dov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