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닉스(Phoenix) – 밤길(Night Street) – 지구레코드, 1974(LP), 2002(CD) / 리듬온, 2010 (CD) 1970년대 ‘그룹 사운드’의 정수 심형섭이 이끌던 그룹 사운드 휘닉스(Phoenix)의 유일한 음반 [밤길(Night Street)]은 지구레코드 스튜디오에서 이틀에 걸쳐 총 4시간 동안 녹음되었으며 1974년 3월에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되었다. 수록곡 중 “Day After Day(오리지널 LP에는 “내일이 오면”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는 배드핑거(Badfinger)의 대표곡을 우리말 가사로 바꿔 부른 것이며, “즐깁시다”는 산타나(Santana)의 “Hope You’re Feeling Better”의 ‘번안곡’이라고 한다. 이 음반은 발매 당시 거의 빛을 못 보고 사장되었다가 2002년 CD로 복각되어 500장 한정 재발매되었다. 이 재발매는 일반 소비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 사이트 ebay에 내놓아 희귀음반 콜렉터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수록곡 중 “즐깁시다”는 이번에 새로 첨가된 보너스 트랙이며, 당시 고고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의 라이브를 그대로 녹음한 곡이다. “밤길(remake version)”, “IMF 블루스”, “Going Home” 등은 현재 토미 심(Tommy Shim)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심형섭이 따로 녹음한 트랙들이다. 음반 제목도 재발매 때에는 [밤길]로 붙여졌지만, 1974년 당시에는 관례에 따라 LP 기준 A,B면의 타이틀 곡(“산속에서 / 비오는 날이면”)을 제목으로 따왔다. 음반은 전체적으로 평이한 ‘가요’ 스타일이다. 1970년대의 색채가 물씬한 전형적인 노래들인데, 음반 중반부부터 전개되는, 김혁이 리드 보컬을 맡은 노래들은 유난히 이러한 뉘앙스가 노골적이리만치 강하다. 심형섭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레코드사의 ‘상업적’인 의도가 다분히 섞인 결과였다고 한다. 당시 휘닉스의 리드 보컬은 훗날 도시의 아이들에서 활약하게 되는 박일서였는데, 군입대를 하는 바람에 음반 녹음엔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보컬의 공백을 베이시스트 원명이 메꾸기는 했지만, 그는 전문적인 싱어가 아니었던 만큼 조금 어설픈 면이 있었다(하지만 오늘날 들어보면 원명의 보컬이 들어간 곡들이 풋풋한 맛도 강하고 ‘그룹 사운드’로서의 컬러가 더욱 돋보인다). 이러한 불협 때문에 음반 전체는 뽕짝 스타일이 두드러진 가요와 평범한 그룹 사운드 레퍼토리의 불편한 동거를 이루고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수록곡들만으로는 1970년대 초반 ‘헤비 싸이키델릭 록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피닉스의 명성을 쉽사리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8분에 달하는 복합적인 구성의 대곡 “밤길”과 보너스 트랙 “즐깁시다”를 통해 거칠게나마 그들의 실체를 더듬어볼 수는 있다. 특히 “즐깁시다”에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물론 오리지널은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이지만) 심형섭의 비브라토 심한 와와 기타 연주와, 전웅진의 힘이 넘치면서도 박자를 예민하게 쪼개는 드럼 연주는 충격적이다. 이 음반의 가치는 날카로운 하드 록 넘버 “즐깁시다” 한 곡만으로도 충분하다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밖에 [밤길]에서 두드러진 음악적 포인트는 플룻 연주다. “산속에서”, “은하수”, “목소리” 등에서 돌출되는 플룻은 평이한 노래 전체에 잊기 힘든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플룻은 휘닉스의 독창적인 요소라기보다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인기를 끌고 그룹 사운드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브라스 록 밴드 시카고(Chicago)의 영향인 듯 보인다. 즉, 시카고의 대표곡 중 하나인 “Color My World” 후반에 나오는 플룻 솔로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밤길]은 휘닉스의 제대로 구현된 음악 세계를 아쉬움 없이 맛보기에는 많은 헛점을 보이는 게 사실이나, 이 음반이 불과 네 시간 만에 ‘졸속’으로 제작되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도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비록 ‘록’이라기보다는 ‘가요’의 문법에 더 충실하지만) 연주를 이루었다는 점에 있어서 분명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들의 충만한 저력이 엿보인다. 시대가 부여한 제약을 과감히 돌파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은 너무나 과분한 바람이고, 1970년대 초반 전설로만 묻혀있던 ‘그룹 사운드’의 본류를 제대로 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의의라 하겠다. 20020610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7/10 * 여담: 이틀만에 제작 완료된 음반답지 않게, 이 음반에 참여한 멤버들의 변동은 꽤 잦은 편이다. 모든 트랙에 공통적으로 참여하는 멤버는 기타리스트이자 작곡/편곡자인 심형섭과 베이스 겸 보컬 원명 단 두 사람뿐이다. “산속에서”, “보슬비 오면”, “은하수”, “Day After Day”는 전웅진이 드럼을, 김민랑이 키보드를 연주했으며, 나머지 곡들은 이들 대신 문영배 (드럼), 김성철(키보드, 심형섭의 고등학교 후배라는 인연으로 참여했으며, 훗날 김기표라는 이름으로 작곡가로 활동함)이 참여했다. * 이 음반은 2010년 11월 리듬온에 의해 LP 미니어처 형태의 CD로 200장 한정으로 다시 재발매되었다. 수록곡 1. 산속에서 2. 보슬비 오면 3. 은하수 4. Day After Day 5. 목소리 6. 비오는 날이면 7. 그녀의 행복 8. 너를 보내고 9. 밤길 10. 즐깁시다 11. 밤길(remake version) 12. IMF 블루스 13. Going Home 관련 글 옛 음반의 재발매 – vol.4/no.12 [200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