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1970년대 한국에서 발표되었던 음반들을 중고음반으로 구매해 보려고 한 사람들은 그 ‘가격’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서울의 황학동이나 회현동의 도깨비시장이든 인터넷의 경매사이트이든 이 음반들의 가격은 정상적인 공산품의 가격이 아니다. 최소한 1만원부터 최대한 100만원에 이른다. 이른바 ‘명반’이나 ‘희귀반’에 속하는 음반은 10만원 안팎의 수준이다. 일반 서민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가격이다. 일본의 호사가들이 한국을 찾아와서 값을 대폭 올려놓았다는 말도 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 정도의 값어치를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고, ‘희소성’이 경제학의 기본 원리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은 지울 길이 없다. 그렇지만 이사갈 때 시뻘건 포장끈으로 둘둘 말아서 버리면 고물장수 아저씨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리어카에 싣고 가던 물건들이 이제는 구할 길 없게 되어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급등하는 현상은 ‘시장의 왜곡’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진정으로 그 상품을 수요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조건으로 공급되지 않는 시장은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여기까지 이야기했다면 그 다음 말이 무엇일지는 다들 눈치챌 것이다. 한국은 개인의 사적 라이브러리 외에는 오래된 음반을 찾아들을 곳이 없다. 혹시나 그런 라이브러리를 가진 사람을 운좋게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국가도 하지 않은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 애지중지 보관해 온 음반을 ‘예, 들어보세요’라고 쉽게 허락할리는 없다. 그래서 ‘감상’은 고사하고 ‘연구’를 하려고 해도 음원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는 매우 힘들다. 마지막 남은 곳이 있다면 방송국일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이 거대 방송사를 찾아가서 자료를 ‘공적 목적으로’ 이용하겠다고 말하면 ‘우리 방송국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못박기 일쑤다. 평소에는 ‘공영’임을 내세우는 방송사들이 이럴 때는 ‘사리’를 중시하는 모습은 참 보기 싫다. 시장은 왜곡되어 있고, 공적 기관은 책임을 회피한다면 다른 길은 없을까? 간단한 길이 있다. 그 음반들의 판권을 가진 측에서 새로운 포맷으로 재발매하는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한다면 비닐 LP로 발매된 음반들의 매스터 테이프를 디지털 방식으로 리매스터링해서 컴팩트 디스크(CD)로 만들어내면 될 것이다. 실제로 영미권 등 외국의 많은 나라들은 과거의 레코딩들을 이런 식으로 발매해서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새로운 제작비도 거의 들지 않고, 특별히 홍보할 필요도 없으니 쏠쏠한 장사가 틀림없다. 1980년대 중반 미국 등지에서 CD 플레이어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무렵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LP 레코드를 팔고 그 돈으로 CD 플레이어를 구매했다”는 말은 당시 시장 상황에 대한 적확한 증언일 것이다. 그렇게 LP 레코드를 처분했다는 사람들 중에 ‘후회하고 있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그곳에서는 음반들을 공공 라이브러리(꼭 ‘도서관’은 아니다)에서 구매하여 보관한다니 그걸 다시 듣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면 그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한국은 재발매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보면 ‘발매해봤자 거의 팔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적극적인 전략이 없어 보인다는 인상도 지우기 힘들다. 이제까지 재발매된 CD를 보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인다. 부클렛은 달랑 한 장으로 라이너 노트(해설지)도 없고, 작사자·작곡자·편곡자·연주인 등에 대한 ‘크레딧’은 거의 없고, 스튜디오나 제작일자나 발매일자에 대한 정보도 허술하고, 폰트나 디자인은 요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수록곡들은 원본 그대로가 아니라 제멋대로 편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별로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오래된 음반의 판권을 보유한 음반사들이 현재 많이 쇠락해 있기 때문이다. 한때 양강체제를 구축했던 지구와 오아시스같은 음반사들도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하고, 신세기, 대도, 아시아, 킹/유니버어살 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음반사들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거나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이 발매하는 음반에 새롭게 투자해서 구매력을 돋구는 음반을 (재)제작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최근 지구 레코드에서 발매한 신중현의 [Not For Rock]이나 동아뮤직에서 발매한 [포에버] 시리즈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신중현의 네 장짜리 CD 인 [Not For Rock] 중에서 세 종의 CD 는 이미 재발매된 CD를 다시 모은 것이니 재(再)재발매인 셈이다. 네 번째 CD는 신중현의 곡을 그가 키웠던 가수들이 부른 것을 모은 것이라서 새로운 아이템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편집 음반’이라서 일관성 있는 앨범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한편 [포에버] 시리즈는 1980년대 후반을 주름잡았던 동아기획이 당시의 소속 음악인들이 발표한 음반들을 편집하여 재발매한 것이다. 그 중에서 들국화, 김현식, 시인과 촌장, 한영애라는 굵직한 음악인들을 묶은 [포에버 베스트 001: 사랑했어요/행진]은 ‘자의적 편집’이라는 혐의를 완전히 지울 수 없고, [포에버 베스트 005: 우리노래 전시회 I, II, III]의 경우는 편집은 없지만 네 번째 시리즈가 누락되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 점에서 오히려 휘닉스(Phoenix)라는 ‘1970년대의 전설적 그룹 사운드’의 음반이 재발매된 것이 보다 ‘현재적 의미’가 강하다. LP 커버를 축소한 모양의 커버를 만든 점, 오리지널 앨범의 수록곡에 더하여 몇 개의 보너스 트랙을 추가한 점, 상세하고 전문적인 해설지가 들어 있는 점 등 공을 들인 흔적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재발매된 음반의 ‘현재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음반매장에서 정상적 경로로 구매할 수 없다고 한다. 음반을 제작한 사람은 현재의 음반배급 경로를 통해 봤자 매장 한 구석에서 찾는 사람 없이 먼지만 폴폴 묻을 것이 뻔하므로 인터넷 상에서의 주문만 받겠다고 말한다. 이 말은 중고 LP 음반의 시장뿐만 아니라 신품 CD 시장도 왜곡되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언제쯤 이런 ‘투덜거림’이 줄어들 수 있을까. 이는 한국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메이저 음반사’가 없다는 역설적 아쉬움을 낳는다. ‘역설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메이저 음반사라는 것이 ‘아티스트를 착취하여 장사하는 다국적 자본’의 상징이라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처럼 적어도 입으로는 탈자본주의를 지향한다는 사람이 한다면 한 입으로 여러 말 하는 셈일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대중음악을 번듯한 현대적 비즈니스로 만든 주체가 이들 메이저 음반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중소기업’이 음반산업을 이끌어 왔고 이는 지금의 ‘기획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대기업이나 직배사가 음반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말일까. 대기업은 1980년대 말 음반사업에 진출했다가 IMF에 된서리를 맞은 시점에 모두 철수했다. 직배사는 ‘한국시장’에 대한 파악의 미비로 지금 철수하느니 마느니의 기로에 놓여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만간 나의 바램은 실현될 전망이 별로 없다. 혹시 현재 가장 잘 나간다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사장님이자 ‘벤처 기업가’인 이수만이 1970년대 청년문화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오래된 음반의 재발매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지 않을까. 이것도 허황된 잡념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음악적 과거는 ‘소중한 공적 자산’이 되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 온다… 20020614 | 신현준 homey@orgio.net 관련 글 신중현 [Not For Rock: 大韓民國樂音樂人] 리뷰 – vol.4/no.12 [20020616] 휘닉스(Phoenix) [밤길(Night Street)] 리뷰 – vol.4/no.12 [200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