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06020823-indie2002배리어스 아티스트 – 인디 파워 2002 – 록 레코드, 2002

 

 

인디(Indie)의 힘(Power)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디 음악이 모습을 드러내고, 저널리즘의 예민한 더듬이에 포착된 것도 벌써 한 세기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사이에 꽤나 많은 일이 있었다. 인디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체불명’에서 ‘대안 가능성의 모색’으로 바뀌었고, 기대는 ‘또 하나의 트렌드’라는 냉소에서부터 ‘그들만의 리그’라는 푸념을 아우르는 미완형의 소망(혹은 성급한 실망)으로 바뀌었다. 인디 음악의 태도와 부합하는 ‘독립예술제’는 ‘프린지 페스티벌(Fringe Festival)’로 이름이 바뀌었다. 바뀐 것이 어디 이름뿐이겠는가.

서두부터 군말이 많은 이유는 뭐 아주 간단하다. [Indie Power 2002]라는 앨범을 앞에 놓고, 이 파워의 정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 지 꽤 오래 난감해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이 현 단계 인디 씬을 정직하게 반영한다고 하면 물론 서운해 할 이가 여럿이겠지만, ‘인디’ 게다가 ‘파워’라는 말을 전면에 떠억 내세우고 있는 앨범의 무게를 외면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인디’라는 말은 아직까지 일종의 전제를 형성한다. ‘프린지 페스티발((Fringe Festival)’ 집행부에 보란 듯 올라있는 관의 높으신 이름을 보아도,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에 꾸역꾸역 모여드는 인파를 보아도, ‘연예가 중계’에 등장하는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을 보아도 한번 든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것을 인디 음악에 대한 과도한 신비화, 그 주변을 얼쩡거리는 이들의 바닥 심리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왔다고 해도 별 수 없다. 태도나 방향으로서의 ‘인디’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면, 이것은 그렇고 그런 주류 가요의 해독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Indie Power]는 잘 알고있다시피 인디 밴드들이 부른 주류 가요를 모은, 일종의 편집 음반이다. 1999년에 이 이름으로 첫 앨범이 나왔고, [Indie Power 2002]는 세 번째 모음집이다. 1999년 첫 음반이 나왔을 때의 반응은 ‘신선하다’는 것이 주류였다. 가증스러운 천사표 노래 “루비”가 전율스런 보컬과 연주로 바뀌는 대목은 거창하게 말해 ‘정서의 전복’이라 부를 만한 힘이 있었다. ‘인디 파워’라는 기획은 주류 가요계에 팽배한 리메이크라는 이름의 울궈먹기, 앨범의 존재 의의를 무색하게 하는 편집 음반 제작 관행에 대한 명백한 패러디였다. 물론 이를 두고 인디 음악에까지 불어닥친 리메이크 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전복과 패러디는 그러나 끊임없이 ‘다름’과 ‘일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진부해진다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보니 세 번째라는 연륜은 동시에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 관념 혹은 굴레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앨범은 그런 사정을 충분히 감안하고, 반영한 듯 보인다. DJ DOC의 문제작(?) “삐걱삐걱”을 하드코어로 재해석한 크로우는 원곡의 속사포 같은 랩, 그 위에 얹힌 ‘후까시’를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위악적인 보컬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지만 원래의 곡이 충분히 일탈적이었던지라 다름에서 오는 충격은 상당 부분 완화된 듯하다. 물론 전복, 충격적 변신이라는 말에 어울릴만한 트랙도 있다. 마이너 발라드와 댄스와 뽕짝 사이를 오가는 스페이스A의 원곡을 재료로 쓰래쉬 메탈로의 환골탈태를 이룩한 사일런트 아이의 “배신의 계절”은 “루비”를 잇는 에너지를 탑재하고 있다. 그렇지만 헤비한 사운드가 더 이상 쿨하게 들리지 않는 인디 음악계에서 헤비한 사운드를 고집하는 이들처럼, 이들의 곡 역시 이 앨범의 기조와는 떨어진 듯 보인다. 오히려 이번 앨범의 기조는 원곡의 지배적인 아우라를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 얻는 변주의 다양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세 번째라는 부담감에 걸맞는 시도일 수도 있고, 편곡과 연주에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인디 음악 내부의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1990년대 초반 당시에도 충분히 테크노적이었던 “꿈”의 프랙탈이나, “달팽이”를 기타의 잔향을 살린 몽환적 모던 록으로 연주한 프러시안 블루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캠퍼스 록 밴드의 속류화된(?) 형태를 보여주었던 다섯 손가락의 “풍선”을 그린데이(Green Day) 풍의 귀여운(?) 펑크로 연주한 껌의 경쾌함, 이어지는 ‘찰랑찰랑한’ 곡들의 퍼레이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두에 달라진 것은 이름만이 아니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인디는 태도(attitude) 그리고 이를 담보해줄 수 있는 방식의 문제에서 점차 영토와 점유의 문제, 적나라하게 말해 땅 따먹기의 문제로 서서히 옮아가는 듯하다. 물론 대안, 독립, 다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그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대안이며 태도가 될 수 있다. “인디는 결코 힘이 세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판도는 그렇다. 그러나 ‘선언’하지 않아도 보여줄 수는 있고, 때로는 의도하지 않음이 더 큰 소리를 불러일으키는 역설이 존재하는 한 인디는 힘이 세다. [Indie Power 2002]는 이런 가능성에 대한 탐색의 하나로 보인다. 20020602 | 박애경 ara21@nownuri.net

5/10

수록곡
1. 삐걱삐걱 – Crow
2. 우리는 – Slapdash
3. 배신의 계절 – Silent Eye
4. 또 다른 진심 – Rock Sinn
5. 꿈 – Fractal
6. 달팽이 – Prussian Blue
7. 기쁨이 될 것을 – BBF
8. 일상으로의 초대 – YNOT
9. 꿍따리 샤바라 – Punch
10. 영원한 친구 – Discotruck
11. 풍선 – GUM
12. 잘 됐어 – NOT
13. 일곱 색깔 무지개 – Cuba
14. 한번만 더 – Maya
15. 삐걱삐걱(Clean) – C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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