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ka – Little Ship Head – Blue Marble Records, 1997 아시안, 컨트리 웨스턴, 그리고 인디언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게 되는 이 밴드명은 리더격인 일본계 여성 보컬리스트의 이름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일본어의 영어식 표기법대로라면 ‘치카’가 맞는 듯해서 처음엔 그렇게 불렀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이름은 그녀가 태어난 곳을 가리키는 포타와토미(Potawatomi) 족 원주민의 지명(地名)을 따라 ‘시카’라고 부르는 게 옳다고 한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을 테지만 그 이름이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지금의 시카고다. 백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 자행한 대대적인 인종청소의 결과, 인도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 ‘인디언’들은 한줌도 안 되는 보호구역에 처박혀서 도박장 수입으로 생계를 연명하는 우리 안 원숭이 같은 꼴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었을 때 붙였던 산과 강, 마을이며 도시 이름들은 지금껏 그대로, 혹은 약간의 변형을 거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시카고는 물론이고 미시시피, 마이애미, 미네소타 등, 한국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많은 지명들이 그렇다. 지금은 ‘아시아계’가 하나의 인종적 범주로 정착되어 ‘아메리카 원주민’과는 명백히 구분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들은 ‘황인종’ 혹은 ‘홍인종’이란 이름 아래 한데 묶였고, 또 유사한 기원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이처럼 대놓고 ‘색깔’을 드러내는 용어들은 공식석상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아시아계 이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잇는 이런 해괴한 연관이 여전히 대중의 의식/무의식에 남아있는 것은 피부색과 생김새에 바탕을 둔 인종 개념의 근본적인 아이러니다. 이런 아이러니를 역이용이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인디언’이 반대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 서부 개척 신화에 그저 매료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1970년대 일본에서 컨트리 웨스턴 가수로 활동했다는 요시 세키구치(Yoshi Sekiguchi)는 미국으로 건너와 낳은 딸의 이름을 원주민 말로 ‘시카’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 딸이 자라 음악을 하기 시작했을 때, 거기서 컨트리의 영향을 발견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카의 음악은 이디쓰 프로스트(Edith Frost)나 니코 케이스(Neko Case) 류의 ‘얼터너티브 컨트리 여가수 인디 록을 만나다’ 스타일보다는 차라리 셰릴 크로우(Sheryl Crow) 식의 이른바 ‘성인용 얼터너티브’에 가깝고, 컨트리의 영향도 그런 식으로 굴절되어 나타난다. 세이구치 외의 다른 멤버들, 특히 앨범 제작과 드럼 및 키보드 연주를 맡은 매트 페라로(Matt Ferraro)는 바버라 스트라이샌드(Barbara Streisand),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와 함께 일한 주류 음악계의 베테랑이고, 베이스의 레이프 브래드포드(Rafe Bradford)과 기타의 커트 모리슨(Curt Morrison) 또한 세션으로 잔뼈가 굵은 전문 음악인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시카의 사운드는 지역 인디 록 밴드의 데뷔 앨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과는 반대로 너무나 세련되고 매끈하게 연주, 제작, 녹음되어 있다. 이 유일무이한 앨범에서 돋보이는 곡들을 꼽자면, 우선 가수-작곡가로서 세키구치의 양면적 재능이 잘 드러난 귀여운 사랑 노래, “A Wedding Song”이 있다. 지역 ‘디바’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수록된 “C-Street Angel”은 층지워진 세키구치의 보컬 코러스가 절제된 피아노 및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Big Love”에서는 풀 아메리카나 모드(full Americana mode)에 돌입한 시카를 감상할 수 있는데, 원곡은 싱어 송라이터 존 하이아트(John Hiatt)와 라이 쿠더(Rye Cooder), 닉 로우(Nick Lowe) 등 쟁쟁한 인물들의 공동작업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첼로 연주가 인상적인 차분한 발라드 “From the Silence”가 끝나고 나면,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다 이윽고 약 30초간 남자가 부르는 옛날 컨트리 웨스턴 노랫가락이 난데없이 튀어나오는데, 이는 시카의 아버지 요시 세키구치가 가졌던 1977년 일본 NHK 실황공연의 일부이다. 1997년 앨범이 나온 후 두 해 동안 이들은 시카고 씬에서 꽤나 분주한 활동을 보였는데, 그 중에는 이미 제니 초이와 킴을 다룬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한국계 여성 핫라인(KAN-WIN) 후원 합동공연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그들의 행적을 더 이상 찾기란 쉽지 않고, 공식 웹사이트 또한 문을 닫은 상태다. 아마도 밴드 활동은 중지되었고, 세키구치는 솔로 싱어 송라이터로 돌아가 이따금씩 여기 저기 행사들에 얼굴을 비치는 정도인 듯하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시카의 별로 ‘인디적’이지 않은 사운드는 시카고 인디 씬이라는 그들의 활동 무대와 별로 어울리지 않았을는지도. 이들의 음악이 대학 라디오보다는 차라리 ‘성인 얼터너티브’를 표방한 상업 라디오 채널을 타곤 했다는 것도 그런 심증을 굳히게 한다. 어쨌든 더 이상 이들의 활동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은 불운한 일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컨트리 웨스턴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와 아이러니컬한 접속을 이루는 것, 그건 단지 시카라는 이름으로부터만 얻은 인상은 아니다. 호피(Hoppi)족 춤꾼들의 사진이나, 말달리는 원주민 사냥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작가 롤랜드 리드(Roland Reed)의 작품 등으로 CD 부클릿을 채워놓은 걸 보면. 그렇다고 이들이 무슨 인디언 부족 음악 비슷한 걸 하리라고 예상했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다름 아닌 원주민들 자신이 깃털 달린 관을 쓰고 눈 밑에 검댕을 칠한 인디언 추장의 고정관념적 이미지를 걷어내려 투쟁하는 오늘날의 미국에서, ‘인디언이 되기'(becoming-Indian)란 특정한 ‘인종’이 미 대륙을 지배하는 데 맞서 싸울 태세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마치 오래 전 용감한 원주민 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20020529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8/10 수록곡 1. Couldn’t Ask For More 2. Something To Amaze Me 3. A Wedding Song 4. Scars and Silhouettes 5. Becky Bell 6. Between You And Me 7. C-Street Angel 8. Floating 9. Big Love 10. From The Silence 관련 글 Blonde Redhead [Melodie Citronique] 리뷰 – vol.4/no.12 [20020616] 이이(eE)와의 인터뷰: ‘모범 소수인종’의 로큰롤 – vol.4/no.11 [20020601]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록의 활로 찾기: ‘Directions in Sound’ 공연 후기 – vol.4/no.9 [20020501] Various Artists [Ear Of The Dragon] 리뷰 – vol.4/no.9 [20020501] aMiniature [Murk Time Cruiser] 리뷰 – vol.4/no.9 [20020501] Versus [Two Cents Plus Tax] 리뷰 – vol.4/no.9 [20020501] Aerial M [Aerial M] 리뷰 – vol.4/no.9 [20020501] Mia Doi Todd [Zeroone] 리뷰 – vol.4/no.9 [20020501] Venus Cures All, [Paradise By The Highway] 리뷰 – vol.4/no.9 [20020501] eE, [Ramadan] 리뷰 – vol.4/no.9 [20020501] Korea Girl, [Korea Girl] 리뷰 – vol.4/no.9 [20020501] 관련 사이트 시카 밴드 소개 http://centerstage.net/music/whoswho/Chika.html [Little Ship Head] 리뷰 http://www.legendsmagazine.net/85/chika.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