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월드 뮤직의 공통점?

월드컵 축구에 대한 이야기는 ‘귀가 따가운’ 수준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국가적 대행사가 그렇듯 월드컵 축구 대회 역시 ‘관(官)이 까라면 까는’ 것 이상은 아닌 듯합니다. ‘월드컵을 국제적 문화교류의 장으로 삼자’고 제안하기에는 이 글을 쓰는 사람조차도 ‘준비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의 음악 팬으로서 세계 각국의 음악들이 한반도와 일본 열도 여기저기서 울려퍼진다는 점은 그리 기분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그들의 음악이 나의 귀까지 들려올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고 TV로만 시청할 때보다는 확률이 높아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월드컵과 월드 뮤직이라는 주제를 작위적으로 꺼내보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월드컵과 월드뮤직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면에서는 세계 스포츠계와 대중문화계를 주름잡는 미국이 월드컵에서도, 월드 뮤직에서도 주변적 존재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구기(구기(球技)의 경우 미국 국내에 각종 프로 스포츠가 발달해 있어서 ‘국가간 대항 경기대회’에는 미국인들이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음악계의 경우에도 직업적 대중음악이 워낙 발달한 나라이다보니 ‘월드 뮤직’ 같은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음악을 추구하는 음악인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물론 블루스나 컨트리 같은 미국의 ‘민속 음악’들은 미국 대중음악, 이른바 팝 음악의 뿌리니까 월드 뮤직이라는 범주에서 제외된다는 점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서)유럽과 (중)남미의 강세?

두 번째 공통점은 월드컵과 월드 뮤직은 유럽과 남미가 강세라는 점입니다. 물론 유럽은 대부분 선진국들이니 ‘월드 뮤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이야 미국과 더불어 팝과 록의 강국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이렇게 이 나라가 대중음악이 강성한 데에는 민속음악의 전통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민속음악이야 앞에서 언급한 바입니다만, 브리튼섬이나 아일랜드섬,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백파이프(bagpipe)나 휘슬(whistle)이 빽빽 불어제끼고 피들(fiddle)이 낑낑거리면서 영묘한 분위기의 멜로디를 가진 음악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은 역시 아일랜드의 민속음악인 듯합니다. 최근 음반을 발표한 치프턴스(The Chieftains)가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가진 ‘아이리시 포크’ 음악인들이지요.

한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서유럽의 나라들은 샹송, 깐초네, 깐씨오니, 파두 등의 이름을 가진 자국의 음악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이런 음악적 전통이 영미 팝의 어법과 많이 섞여서 예전처럼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기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대체로 ‘라틴 유럽’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월드 뮤직의 ‘생산지’일 뿐만 아니라 ‘소비지’ 혹은 ‘유통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빠리는 세계 각지에서 온 월드 뮤직이 자웅을 겨루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한편 독일을 거쳐 중부 유럽이나 동유럽쪽으로 갈수록 ‘에쓰닉’한, 즉 민속적 느낌이 강한 음악들이 많아집니다. 특히 유럽 남동부인 발칸 반도 인근의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은 에밀 쿠스트리챠(Emir Kustrica)의 영화 [언더그라운드]나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에서 들을 수 있는 폴짝폴짝거리는 리듬과 아코디온 소리를 동반한 음악이 융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두박자의 리듬을 들으면 대충 ‘폴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더군요. 그리스와 터키처럼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에 위치한 나라들의 음악은 또 다릅니다.

중남미에서 한국이나 일본에 오는 사람들의 경우는 최근에 한국에까지도 유행이 불어닥친 살사(salsa)와 비스무레한 리듬에 맞춰 광란의 댄스 파티를 벌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유심히 관찰하면 멕시코같이 중앙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나라나 남미 대륙 남쪽에 위치한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의 음악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 시점에서 ‘지리부도’를 뒤져보지 않는다면 이 글은 실패작입니다…). 멕시코 음악은 삿갓 같은 모자(‘솜브레로’라고 부른다)를 쓰고 선인장 앞에서 기타 치고 노래부르는 낭만적 노래일 확률이 크고, 아르헨티나 음악은 두 다리를 능숙하게 움직이다가 고개를 홱홱 돌리면서 반도네온(아코디온과 비슷한 악기)과 현악기 선율이 야한 음악일 확률이 큽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멕시코의 민속음악은 ‘마리아치(mariachi)’라고 불리고, 아르헨티나의 민속음악은 ‘땅고(tango)’, 영어식 발음으로는 탱고라고 불립니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가 축구 스타일이 비슷한 현실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하세요.

같은 남미에 속하지만 스페인어권이 아니라 포르투갈어권인 브라질은 그들 특유의 삼바(samba)라는 음악을 가지고 있고, 이건 브라질 축구선수들이 골을 넣고 하는 ‘뒤풀이’를 보면 됩니다. 삼바보다 나긋나긋하면 보싸 노바(bossa nova), 아코디온 소리가 주도하면 포루(forro)라고 생각하면 그리 틀리지 않습니다. 차제에 포르투갈어 단어는 마지막에 ‘o’로 끝나면 ‘오’가 아니라 ‘우’로 읽고, 처음에 ‘r’이 나오면 ‘ㄹ’이 아니라 ‘ㅎ’으로 읽는다는 점도 알아 두죠. 예를 들어 ‘Ronaldo’는 ‘로날도’가 아니라 ‘호나우두’로 발음됩니다. ‘브라질’이 아니라 ‘브라지우’에 가깝죠. 갑자기 최지우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_- 어쨌든 브라질은 축구의 최강국이자 미국이나 영국 다음 가는 대중음악의 강국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야구 최강국인 쿠바가 축구는 신통치 않아서 월드컵에서 볼 수 없는 게 아쉽군요. 레게의 고향 자메이카도 그렇고… 아, 여기서 월드컵과 월드 뮤직의 공통점이라는 게 사실은 저의 ‘구라’라는 사실이 탄로나는군요. .

아프리카는 신흥강호? 아시아는?

월드컵과 월드 뮤직의 세 번째 공통점은 아프리카가 ‘신흥 강호’이며,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는 아직까지 그리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주민이 살고 있고 문화권도 상이한 아시아를 하나의 대륙으로 묶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어쨌든 아시아 중에서도 유럽과 아프리카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랍권이 남아시아권이나 동아시아권보다 강세라는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구의 경우 아프리카권의 카메룬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고, 아랍권의 사우디 아라비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습니다. 월드 뮤직에서도 아프리카 음악과 아랍 음악은 중요한 레퍼토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랍의 음악에 대해서는 [weiv]에서 드문드문 다뤘으니까 장황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단지 이 지역의 유명 음악인들은 파리, 런던, 뉴욕을 거점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해 두어야 겠습니다. 유럽 프로축구 리그에서도 이 지역 출신의 선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면입니다. 반면 동아시아권은 음악도 스포츠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교류가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어쨌든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월드컵을 단지 ‘관이 주최하고 선수들이나 경기하는’ 행사가 아니라 우리 민(民)도 한국을 찾는 사람들과 문화적으로 교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 이런다고 뭐가 갑자기 변할 리는 없겠지만 이 기회로 한국 사회가 보다 문화적으로 개방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토록 재미없는 나라에 조금 재미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의 특집으로 월드 뮤직에 관한 몇 가지 음반 리뷰를 실어 보았습니다. 예전에 발매된 음반들을 갑자기 소개하는 일은 사실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래서 ‘본선 출전국’의 음악인들이 제작한 음반들 가운데 최근 신보로 발매되었거나 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정식으로 수입된 음반들 중심으로 훑어보겠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월드 뮤직이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호에 이어지는 기획에서는 아직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지만 [weiv] 독자들의 취향에 비교적 가까운 음반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그럼 수박 겉핥기식 엉터리 세계 음악여행이라도 나름껏 즐겁게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20020530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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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월드 뮤직 포털 사이트
http://worldmusicportal.com/
월드 뮤직의 악기에 관한 사이트
http://www.si.umich.edu/chico/instrument/
국제 음악 아카이브
http://www.eyeneer.com/World/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