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취향이 만나는 21세기 비단뱀 클럽이라는 이름은 언뜻 모호하고 상징적으로 보인다. 영어로 별을 ‘byul’이라고 표기하는 것도, 월간 뱀파이어라는 잡지 (비슷한) 책자 사이에 마치 별책부록처럼 끼워져 있는 음반도, 말하자면 낯설게 보이고 뭔가 의미심장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와 “2”가 좋은 반응을 얻은 별은 ‘알만한 사람들’에게 괜찮은 전자음악을 하는 아티스트, 혹은 집단으로 알려졌다. 별의 첫인상은 이렇게 세련되고 쿨한 감수성을 가진 소심한 소년 같았다. 별(작사, 작곡, 건축/그래픽 디자이너)과 조월(작곡, 기타, 프로듀스, 별의 동생), 가네샤(시타, 완구 디자이너)와 허유(사진, 아트 디렉터), 그리고 김상길(사진, 테크노 디제잉)로 구성된 창작 집단 ‘별'(의 결과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여러 지점들을 함께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이들의 음반을 구입해서 면면이 훑어본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짐작할 지도 모르겠다. 2001년 10월 즈음에 나온 첫 번째(월간 뱀파이어 ‘2호’라고 되어있지만) 미니앨범 [2]이후 2002년 4월에 발매된 공식적인 두 번째 앨범에는 [너와 나의 20세기]라는 ‘낭만적’인 타이틀이 붙어있다. 이 음반에는 전 앨범과 마찬가지로 겹겹이 쌓이며 기묘한 공감각을 만들어 내는 샘플링이 가득하다. 일렉트로니카 혹은 앰비언트 계열이라 불러도 무방할 이러한 사운드는 딜레이와 리버브되는 음표들 사이를 부유하는 몽환적인 멜로디와 건조한 단어들, 희미하게 처리된 ‘시적(詩的)’인(혹은 모호한) 의미의 가사로 정의된다. 게다가 음반을 들으며 월간 뱀파이어와 홈페이지, 인터뷰 등에 실린 별의 글들을 읽다보면 문득문득, 어쩌면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집단의 리더격인 별은 선문답 같은 대답과 모호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 즈음에서 별의 ‘포맷’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수록곡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일련번호들 뒤에 1에서 9까지의 숫자로 곡을 표기하고, 몇몇 곡에만 부제를 붙인 형식이다. 그래서 이 앨범을 다 듣고 난 뒤에는 개별 곡에 대한 인상이 부분적으로 남지 않고 하나로 뭉뚱그려진 전체적인 ‘이미지’가 남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난해하거나 졸릴 정도로 지겹지는 않다. 그 이유는 어쩌면 몇 개의 ‘대표곡’에서 느낄 수 있는 말랑말랑한 멜로디와 (다른 곡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분명한 발음의 가사 때문이 아닐까. 지난 앨범에서 “2”,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가 그랬다면 이번에는 “부루마블”과 “너와 나의 20세기”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높은 음 자리에서 맑게 울리는 건반 소리, 신서사이저의 영롱한 울림, 느리지만 매혹적인 훅(hook)이 충만한 “부루마블”과 적당한 빠르기의 비트와 소년의 목소리로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가 얽혀들어 흥겨운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너와 나의 20세기”, 이국적인 시타(sitar)소리가 매력적인 “푸른 전구빛” 등이 새 앨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작지만 인상적인 울림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언어화되지 못하는 사운드는 처음 왔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진다. 월간지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이름이라는 ‘월간 뱀파이어’를 자세히 살펴보아도 음악과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는다. 마치 무라카미 류의 가상소설 [5분 후의 세계]의 한 부분이나 염세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설정집 한 페이지를 옮겨놓은 것 같은 표현들과 상황들은 3차 세계대전, 초록 맥주병, V2라는 가상의 약물, 남아프리카, 스톤헨지 등과 같은 ‘이국적’인 단어들로 처리된다. 이러한 감수성은 차라리 ‘무국적’인 것으로도 느껴지는데, 솔직히 이것은 현대적 취향의 첨단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음에도 이미 한차례 지나간 스타일의 재현이라는 느낌을 준다. 혹자는 어쩌면 ‘중학교 1학년 때 미디를 사서 처음 음악을 만들었다’라거나, ‘인도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인도 전문 여행사에서 현지 가이드 일을 했다’라는 멤버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이국적이고 쿨한 스타일의 ‘경제적 근거’를 유추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한발 더 나아가 별의 정체성이 (당연하게도) 한국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 ‘마이너리티에서도 마이너리티’라고 말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사운드에서 성찰 없이 반복되는 식상한 스타일을 발견하게되는 점이나 멤버들의 취향이 여피들(혹은 청담동 청년)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 보이는 점 때문에 순수하게 음악으로’만’ 이들을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궁금한 것은 별의 ‘이국적’인 스타일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스타일과 한국의 현재적 상황이 맺고 있는 관계다. (음악을 포함하여) 별이라는 집단의 존재는 한국에서 고급 취향이 소비되는 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것은 물질에 대한 강박증과 집착이 과도하게 강조되는 21세기의 한국사회에서 소년의 예민한 감수성과 고급한 취향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얘기다. 더불어 관계 맺음에 있어서 취향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요즘의 경향이 무엇을 근거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국, 글쓴이 자신과도 밀접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별의 존재는 기존의 ‘소수 음악 취향’을 가진 아티스트들과 동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른바 취향이란, 때로는 그가 누구인지 읽어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20508 | 차우진 djcat@orgio.net 6/10 수록곡 1. 80845-1 2. 80845-2 부루마블 3. 80845-3 4. 80845-4 소년 5. 80845-5 너와 나의 20세기 6. 80845-6 티하티-6의 노래 7. 80845-7 8. 80845-8 9. 80845-9 10. 80846-0 푸른 전구 빛 관련 글 OST [고양이를 부탁해] 리뷰 – vol.4/no.1 [20020101] 관련 사이트 별 공식 사이트 http://www.byul.org 튜브뮤직에 실린 별 인터뷰(1) 튜브뮤직에 실린 별 인터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