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29062621-0411neilyoung_everybodyknowsNeil Young With Crazy Horse –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 Reprise, 1969

 

 

조금은 빛바랜 ‘빽판 시대’의 명반

‘빽판 시대’는 한국 음악의 비공식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시기를 형성한다. 요즘 MP3가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빚고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이미 LP시대에도 빽판이 MP3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MP3처럼 공짜는 아니었지만 라이선스 음반 한 장에 2000-3000원을 호가하던 시절에 단돈 400-500원이면 구할 수 있던 빽판은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에게 더 없이 훌륭한 정서적 자양분을 제공했다. 그러나 싼 값보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그것의 풍부한 레퍼토리였다. 지금보다도 훨씬 기반이 취약했던 한국의 음반사들은 정식 로열티를 지급하는 라이선스 음반에 모험을 걸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게다가 기껏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나도 검열 당국에서는 음반 수록곡의 절반 이상에 금지곡 판정을 내리기가 일쑤였다. 따라서 음반사에서는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전한 음반만을 라이선스로 발매했고, 젊은 음악 팬들의 피를 끓게 할만한 음반은 대개 빽판의 형태로 출반되었다.

값비싼 원판을 어렵지 않게 손에 쥘 수 있었던 소수의 부유층 자제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음악 팬 대다수는 빽판과 함께 젊은 날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제프 벡(Jeff Beck),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등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빽판 밖에 없었다. 1969년에 발표된 닐 영(Neil Young)의 두 번째 솔로 앨범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도 1980년대 중반에 최초로 라이선스되기 이전까지는 오직 빽판으로만 입수가 가능했던 작품이다. 사실 이 앨범은 빽판 시대 매니아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전설적 명반의 하나다. 비록 외국에서는 [After The Gold Rush]나 [Tonight’s The Night] 등의 앨범이 평단의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 대중적으로는 [Harvest]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당시 한국의 음악 팬들 사이에서 ‘닐 영의 앨범’ 하면 단연 이 음반이 첫 손가락에 꼽혔다.

이 앨범이 이처럼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데는 빽판과 더불어 비공식 부문(?)의 주역을 담당했던 음악감상실 DJ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해외에서 이 앨범의 지명도는 주로 “Cinnamon Girl”이나 “Down By The River” 같은 록 넘버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에서 이 앨범은 구슬픈 발라드 “Running Dry(Requiem For The Rockets)”를 수록한 작품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음악감상실 DJ들이 이 곡을 발굴해서 열심히 틀어댄 덕분이다. 이로 인해 이 곡은 이후 지상파에서도 심심치 않게 방송되는 인기 레퍼토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놓고 굳이 ‘서양의 록 취향 대 한국의 발라드 취향’이라는 틀에 박힌 결론에 도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국에서도 “Down By The River”나 “Cowgirl In The Sand” 등의 인기는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높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의 음악계 종사자들이 서양의 음악산업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곡들에 스스로를 한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음악을 발굴하고 전파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지글거리는 음질의 빽판과 느끼한 멘트를 날리던 음악감상실 DJ들이 풍미하던 한 시대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이 앨범 역시 그것들과 운명을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바뀐 지금도 이 앨범이 지닌 역사적 명반의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앨범의 내용물은 별로 고르지 못하다. 이 앨범이 그처럼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뛰어난 몇 개의 트랙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몇 곡을 뒷받침하는 여분의 앨범 트랙들이 그만한 우수성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컨트리 풍의 두 곡 “Round & Round(It Won’t Be Long)”와 “Losing End(When You’re On)”는 이 앨범의 맥락에 다소 걸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고, 문제의 트랙 “Running Dry(Requiem For The Rockets)”도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슬프다기보다 좀 청승맞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 앨범의 이러한 부조화와 불균형은 그것을 완성하는데 걸린 짧은 기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 앨범은 닐 영이 솔로 데뷔앨범을 출반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발표한 작품이며, 이를 위해 그가 스튜디오에서 보낸 시간은 단 2주에 지나지 않는다. 앨범 하나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 일반화된 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4개월이라는 기간은 어떤 기준에서 봐도 그리 넉넉한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때문에 그는 앨범을 철저히 준비하지도 못하고 결과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짧은 기간이 이 앨범에 반드시 불리하게만 작용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유익하게 작용한 측면도 크다. 주지하다시피 이 앨범은 닐 영과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최초로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쇠가 달궈진 동안 두드리라”는 서양 속담처럼 순식간에 만들어진 이 앨범은 닐 영과 크레이지 호스가 서로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흥분과 스파크를 하나도 잃지 않고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타이틀 트랙이나 “Down By The River” 또는 “Cowgirl In The Sand” 등의 곡에서 맛볼 수 있는 그 경이적인 ‘일필휘지’의 힘은 바로 이 앨범의 이러한 즉각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명반으로 칭송되는 음반들이 대개 그렇듯 이 앨범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조명될 수 있는 다채로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현재의 맥락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이 앨범의 사운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칠고 즉흥적이고 손질되지 않은 이 앨범의 사운드는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거라지 록의 사운드와 정확히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로 인해 이 앨범은 등장한지 30년이 넘은 오늘날에 와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와 함께 여기서 닐 영이 들려주는 특유의 기타 사운드도 새삼 재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연주하는 날카로운 톤의 멋 부리지 않는 기타 사운드는 윌코(Wilco)의 최신작 [Yankee Hotel Foxtrot]에서 제프 트위디(Jeff Tweedy)의 손을 빌어 다시금 등장하고 있다(“I’m The Man Who Loves You”를 들어보라). 비록 빽판 시대의 팬들을 열광케 했던 광휘는 이제 다소 빛이 바랜 감이 있지만, 이 앨범은 이처럼 아직도 후배 뮤지션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앨범의 이러한 기능이 계속되는 한 ‘역사적 명반’으로서의 이 앨범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고 유지될 것이며, 여기에 담긴 음악은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할 것이다. 혹시 아는가? “Running Dry(Requiem For The Rockets)”가 쿨해지는 시대가 다시 오게 될지… 20020525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수록곡
1. Cinnamon Girl
2.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3. Round & Round(It Won’t Be Long)
4. Down By The River
5. Losing End(When You’re On)
6. Running Dry(Requiem For The Rockets)
7. Cowgirl In The 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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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Neil Young 공식 사이트
http://www.neilyoung.com
Neil Young 비공식 사이트
http://www.hyperrust.org
Neil Young 팬 사이트
http://www.ogctheatre.com/oldgreycat/neil.htm
http://www.azlyrics.com/y/young.html
http://www.tapersalmanac.com/neilsongs.html
CD Now의 “The 10 Essential Neil Young Albums”
http://www.cdnow.com
영국의 음악 평론가 실비 사이먼즈(Sylvie Simmons)의 Neil Young 음반 가이드
http://www.q4music.comn_the_media.html/promoid=6264
영국의 음악 평론가 실비 사이먼즈(Sylvie Simmons)의 Neil Young 음반 가이드
http://www.q4music.com/buyersguides/DisplayList_ArtistByArtist.cfm?ObjectUUID=4D1B859C-9AC6-11D4-84430002553035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