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27010630-0411blackaBlackalicious – Blazing Arrow – MCA, 2002

 

 

베이 에리어 힙합 터주대감, 메이저에 진입하다

디제이 섀도(DJ Shadow), 래티릭스(Latyrx)와 함께 블랙칼리셔스(Blackalicious)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분교(UC California, Davis)에서 솔사이즈(Solesides) 패거리를 결성한지도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부침(浮沈)을 거듭하던 이들 패거리는 쿼넘(Quannum)이라는 새 이름으로 1990년대 후반에 재결합했고 이후 이들의 집단 혹은 개별 음악 작업들은 베이 에리어를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새로운 메카로 변모시키는데 절대적 역할을 해왔다.

[Blazing Arrow]는 쿼넘 패거리 내에서도 베이 에리어 힙합 씬의 터줏대감으로 꼽히는 블랙칼리셔스의 메이저 데뷔 음반이다. 전작 [Nia](2000)는 만방의 절대적 호평 속에 인디 힙합 앨범으로는 드물게 미국 내에서만 1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는데, 치프 엑셀(Chief Xcel)과 기프트 오브 갑(The Gift Of Gab) 듀오는 결국 지난해에 몇몇 메이저 레이블의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속에 동료 디제이 섀도에 이어 MCA에 안착했다.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 전사의 위치에 머물기엔 너무 비대해진 자신들의 몸집이 버거웠을 것이고, 더욱이 디제이 섀도의 끈질긴 회유도 그들의 뒤늦은 메이저 행에 한몫 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치프 엑셀과 기프트 오브 갑은 [Blazing Arrow]에서 아찔하면서도 멋진 줄타기를 하고 있다. 메이저 레이블 뮤지션으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특혜를 누리되, 한편으로 애초에 자신들의 음악을 규정해온 고유의 색채도 잃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MCA의 후광 하에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초호화 게스트가 거의 모든 트랙에 포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랙칼리셔스는 어느 한 순간도 사운드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다. 장르를 초월한 무수한 까메오들의 개성이 각 트랙에서 분명 드러나지만 [Blazing Arrow]가 결코 잡동사니 음악 전시회로 빠지지 않는 것은, 앨범 전체 사운드를 일관되게 조율하고 통제하는 치프 엑셀의 뚝심 때문이리라. 인디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는 거의 전곡의 프로듀스를 담당하면서 힙합, 소울, 재즈, 훵크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재조합한다. 특히 생동감 있는 라이브 연주를 바탕으로 재치 있는 샘플링과 절제된 디제잉을 적절히 섞어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사운드를 뽑아내는 솜씨는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블랙칼리셔스 음악의 또 다른 미덕은 사운드 프로덕션과 엠씨의 라임, 래핑, 메시지가 유기적으로 엮인다는 데 있다. 이는 미리 만들어진 치프 엑셀의 비트를 바탕으로 전곡을 작사하고 메인 보컬을 담당하는 기프트 오브 갑의 역할이다. 그는 라이머이자 래퍼로서 자신의 역량을 앨범 곳곳에서 은근슬쩍 과시한다. 사실 [Nia]에서 기프트 오브 갑은 아프리카 중심주의 세계관에 기댄 유심론적이고 관념적인 사유에 천착했었다. 하지만 [Blazing Arrow]의 메시지는 전반적으로 훨씬 역동적이고 현실적이다.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고민은 벗어버리고 과거와 현재의 삶을 관조하면서 긍정적 미래를 희망하는 가사가 대부분이다. 기프트 오브 갑은 지적인 단어들을 선택하고 정교한 라임을 구성하여 예의 재빠르고 부드러운 랩으로 뿜어낸다. 물론 라이밍과 가사의 메시지 어느 한 쪽도 포기하지 않는 균형 감각은 여전하다.

한참 밀고 있는 “Make You Feel That Way”는 감칠맛 나는 재지(jazzy)한 선율과 어울리는 기프트 오브 갑의 유려한 래핑이 단연 돋보인다. 각운을 따르는 라임과 치밀하게 선택된 단어들이 수려한 문장을 구성하는데, 각각의 소절은 마치 한편의 낭만 시가를 연상케 한다. 열혈 힙하퍼들이라면 마니 마크(Money Mark)의 피아노와 중독적인 비트 위로 쥬래식 화이브(Jurassic 5)의 챨리 투나(Chali 2Na)와 래티릭스의 라티프(Lateef)가 기프트 오브 갑과 더불어 중량감 있는 랩을 들려주는 “400 Miles”, 혹은 다일레이티드 피플스(Dilated Peoples)의 바부(Babu)와 라카(Rakaa)가 블랙칼리셔스 듀오와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Passion” 같은 트랙이 더욱 귀를 당길 것이다. 물론 초기 블랙칼리셔스의 향수에 젖어있는 이들에겐 “Paragraph President”가 제격이지만. 한편 “Aural Pleasure”, “It’s Going Down”, “First In Flight” 같은 트랙은 케케 와이어트(Keke Wyatt), 재규어 롸이트(Jaguar Wright), 그리고 백전노장 질 스콧 헤론(Gill Scott-Herron)이 각기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미래지향적 힙합 소울 곡들이다. 반면 다소 예외적인 게스트 벤 하퍼(Ben Harper)가 치프 엑셀과 함께 만든 “Brain Washers”는 복고적이면서 부드러운 소울의 아우라를 제공한다.

블랙칼리셔스 듀오의 음악적 역량은 보다 장르 파괴적이거나 실험적인 트랙에서 극대화된다. 쿠에스트러브(?estlove)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Nowhere Fast”는 재즈 훵크와 랩이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마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Philadelphia Experiment)의 연주를 듣는 듯하다. 그의 드럼과 제임스 포이서(James Poyser)의 건반, 여성 코러스가 긴박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동안 기프트 오브 갑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진지한 문제제기를 한다. 유일하게 치프 엑셀이 프로듀서 자리를 양보한 트랙 “Chemical Calisthenics”는 블랙칼리셔스의 예전 히트곡 “Alphabet Aerobics”를 컷 케미스트(Cut Chemist)가 실험적으로 재해석한 곡이다. 컷 케미스트는 “Lesson” 시리즈 이후 모처럼 턴테이블리스트로서 자신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실험적인 드럼 비트, 현란한 스크래치와 리듬을 타는 기프트 오브 갑의 신들린 래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물론 어느 곡 하나 놓칠 수 없겠지만, 9분 여의 대서사시 “Release”는 그 중에서도 백미로 꼽을 수 있다. 마니 마크의 탄력 있는 건반연주 위로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가 “release”를 맘껏 외쳐댄 후, 서정적인 현악 선율을 배경으로 사울 윌리암스(Saul Williams)의 처절하고 절박한 시 낭송이 이어지고, 훵키한 베이스 연주와 리릭스 본(Lyrics Born)을 비롯한 엠씨들의 전투적 래핑이 마무리를 짓는 3부작 구성인데, 1970년대 초반 실험적 훵크의 정치적 비전과 사운드를 재현하려는 이들 듀오의 강한 의지가 담긴 트랙이다.

주류 랩 음악의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가사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랩, 소울, 훵크 식의 자못 무의미해 보이는 장르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블랙칼리셔스식’ 흑인 음악은 메이저 데뷔 앨범에서도 여전한 것 같다. 사실 MCA는 자사 소속 흑인 음악 뮤지션들의 음반 프로모션을 게을리 하기로 악평이 나있다. 재밌는 것은, 그러한 평가와 무관하게, 실력 있는 언더그라운드 흑인 뮤지션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음악적 독립을 보장하고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쾌적의 음악 작업 여건을 보장해 준다는 점이다. 블랙칼리셔스가 막강한 게스트들을 초빙하되 결코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자신들의 음악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맥락이다 — 이는 최근 메이저 데뷔를 했던 턴테이블리스트 그룹 엑세큐서녀스(X-ecutioners)가 라우드(Loud) 레이블의 간섭과 스타 게스트들에 눌려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결국에는 내분에 이르렀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물론 기왕 주류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면 최소한의 상업적 성공에 대한 기대가 없을 리는 만무한데, 블랙칼리셔스가 시장의 법칙과 음악적 욕심간에 어떻게 균형추를 맞출 수 있을지는 아무래도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겠다. 20020520 | 양재영 cocto@hotmail.com

9/10

수록곡
1. Introduction: Bow And Fire
2. Blazing Arrow
3. Sky Is Falling
4. First In Flight (feat. Gil Scott-Heron)
5. Green Light: Now Begin
6. 4000 Miles (feat. Chali 2Na of Jurassic 5 & Lateef The Truth Speaker)
7. Nowhere Fast
8. Paragraph President
9. It’s Going Down (feat. Lateef The Truth Speaker & Keke Wyatt)
10. Make You Feel That Way
11. Brain Washers (feat. Ben Harper)
12. Chemical Calisthenics (feat. Cut Chemist of Jurassic 5)
13. Aural Pleasure (feat. Jaguar Wright)
14. Passion (feat. Rakaa & Babu of Dilated Peoples)
15. Purest Love
16. Release Part 1, 2, & 3 (feat. Saul Williams & Lyrics Born)
17. Da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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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Blackalicious 공식 사이트
http://www.blackalicious.com/
Blackalicious, DJ Shadow, Latyrx 등의 Quannum 패거리 공식 사이트
http://www.quannum.com/
MCA 레이블의 Blackalicious 페이지
http://www.mcarecords.com/ArtistMain.html?ArtistId=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