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21032650-T티(T) – Gemini / Hip Hop Album – 월드뮤직, 2002

 

 

양동작전으로 일궈가는 나머지 반쪽의 재능

티(T)의 지난 앨범 [As Time Goes By] (2001)는 티(윤미래)가 업타운과 타샤니를 거치면서 겪었던 불운을 말끔히 씻어낸 음반이었다. R&B적인 색채가 강한 발라드라는 적절한 아이템과 무엇보다 그러한 아이템을 극대화 시킬 수 있었던 보컬리스트로서의 그녀의 능력, 그리고 박근태라는 프로듀서와의 만남이 불운을 넘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요소들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R&B, 소울, 힙합 등 다양한 흑인 음악에 대한 그녀의 재능이 온전히 발휘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재능 중에서 어떠한 부분이 좀 더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인지 티가(혹은 그녀의 조력자들이) 찾아냈다는 점이 그녀에게는 더 큰 성과가 아닌가 싶다. 대중적인 인기나 인지도가 뮤지션에게 얼마나 많은 힘을 실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녀 자신에게 있어서 지난 앨범으로부터 거둔 성과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나 그녀가 그동안 ‘뮤지션’으로 걸어온 길을 생각한다면.

어찌됐든 그녀는 지난 앨범으로 성공적인 솔로 전향과 더불어 대중적 인지도, 거기에다 어느 정도 음악적인 성숙까지 모두 세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냈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중요한 부분은 그 ‘다음’의 행로이다. 한번 먹혀들어간 요소들을 계속해서 우려먹을 것인가 아니면 성공으로 인해 실린 힘을 토대로 자신의 또 다른 재능의 발전과 음악적인 발전을 노릴 것인가 하는, 뻔하지만 쉽지 않은 딜레마를 가지고 말이다.

실제로 그녀가 그러한 딜레마를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음반을 가지고 나왔다. 음악을 들어보기도 전에 먼저 앨범 타이틀부터 눈에 들어온다. 쌍둥이 자리라는 뜻의 ‘Gemini’라는 타이틀에, ‘Hip Hop Album’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게다가 정식 음반이 아니고 스페셜 앨범이라고 한다. 이런 의문 아닌 의문은 소속사 홈페이지에 티 자신이 직접 올린 글을 보고나서 풀리게 되었다. ‘Gemini’라는 말뜻처럼, 이번 앨범은 그녀의 또 다른 한쪽의 모습(혹은 재능)인 힙합에 대한 열정을 풀어보고자 하는 뜻을 담은 스페셜 앨범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를 알고 나니 또 다른 의문이 하나 더 생긴다. 그렇다면 꼭 이 음반을 스페셜 앨범으로 내야했는가 싶은 것이다. 여하튼 각설하고 일단 그 내용부터 살펴보자.

‘젊은이들 놀자~ 앗싸!’라고 하는 할머니의 재미있는 코멘트로 시작되는 “G 火 자”는 티가 직접 작곡한 곡으로, 앨범 부제에 걸맞게 시원스럽고 힘찬 랩으로 음반의 문을 연다. 비교적 간단한 비트와 샘플 위에 랩만으로도 흥겨운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지난 앨범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그녀의 래핑 실력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어지는 “Meditation”에서는 시비 메스(CB Mass)의 개코가 참여해주고 있는데, 살랑살랑 거리는 미디엄 템포의 비트로 고개를 까딱거리게 한다. 세번째 곡 “Me We”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래핑을 쏟아내는데, 래핑뿐 만이 아니라 노래에 참여하고 있는 시비 메스 멤버들의 작곡 능력도 한결 돋보이는 것 같다.

라디오를 통해 ‘홍보 곡(?)’이 될 거라는, 앨범의 타이틀 격인 “Memories”는 지난 앨범의 1등 공신이었던 박근태가 ‘참여’한 곡으로, 블루 칸트렐(Blu Cantrell)의 [So Blu]에 수록된 “The One”를 그대로 가져와 래핑 만을 얹은 곡이다. 원곡의 보컬 부분은 일본 뮤지션 사쿠라(Sakura)가 불러주고 있다. ‘홍보 곡’으로 내세우는 곡이니만큼 처음부터 귀에 착착 감기는데, 특히 보컬로 참여하고 있는 사쿠라의 목소리는 끈적거리지 않으면서도 가볍지도 않고 게다가 약간 허스키한 것이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원곡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티의 중성적인 랩과 사쿠라의 독특한 매력을 지닌 보컬의 조합은 나름대로 새로운 맛을 전해준다. 두 사람의 능력도 능력이겠지만 아무래도 이 곡이 단번에 귀에 감길 수 있는 것은 원곡을 선정하고, 그 곡을 적절하게 재조정하며, 그에 맞게 두 사람의 색깔을 조율한 박근태라는 프로듀서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이번 앨범에서는 그의 손길이 미친 곡은 이 곡뿐이며, 음반 전체로는 드렁큰 타이거, 시비 메스, 바비 김(Bobby Kim), 애니(전 타샤니 맴버)등 국내 힙합 뮤지션과 DJ 하세베(DJ Hasebe), 사쿠라 등의 일본 뮤지션들이 참가하여 곡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타이거 J.K.(Tiger J.K.)가 작곡한 “Wonder Woman”은 이 음반에서 가장 하드한 곡이 아닐까 싶은데, 둥둥거리는 베이스 음으로 비트를 만들어내어 상승하는 듯한 분위기에 티의 공격적이라 할 만큼 강한 래핑을 싣고 있다. 이후로 바비 김이 참여한 “끝없는 바다 저편에…”에서는 할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바비 김의 랩과 흥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 타샤니의 맴버였던 애니가 참여한 ‘남자 남자 남자’에서는 문득 타샤니 때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힙합이라는 토대 위에 다양한 흑인 음악의 요소들을 가미하고 있는데, 대중성과 음악성 사이의 적절한 선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어찌보면 어중간 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왕 ‘Hip Hop 앨범’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온 바에 좀 더 확실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난 앨범의 성공이 없었다면 이번 음반도 나오기 힘들었을 거란 것, 그리고 이렇게 스페셜 앨범으로라도 그녀의 또 다른 한쪽 재능이 묻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의문과 다소 간의 실망은 덮어둘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 자신이 작사와 작곡, 앨범 전체 조율에 참여한 부분이 점점 돋보여 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 희망적이다.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티가 조금씩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재능을 깨닫고 자기 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나오게 될 ‘정식’ 앨범에서 티는 다시 R&B 스타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R&B가 좋다’, ‘힙합이 좋다’라는 단순무식(?)하고 어리석은(?) 주장은 접어두고, 이제 남은 것은 그녀의 발전을 지켜보는 것이다. 음악 색깔의 양동작전이든대중성과 음악성의 양동작전이든, 둘 다 놓치지 않을 재능과 발전을 해낼 수 있는 티와 같은 뮤지션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 더구나 그녀는 아직 스물 두 살이 아니던가. 20020515 | 신지근 seenyeom@orgio.net

8/10

수록곡
1. G 火 자
2. Meditation
3. Me We
4. Memories…(Smiling Tears)
5. Wonder Woman
6. 끝없는 바다 저편에…
7. Concrete Jungle
8. Combination Platter
9. Double Trouble
10. 남자 남자 남자
11. Memories…(Smiling Tears) : E.Vers
12. Mt(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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