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16080956-0410weezer_maladroitWeezer – Maladroit – Universal, 2002

 

 

새로운 시작?

전작 [Weezer](이하 [Green Album])(2001)가 발매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공개된 위저(Weezer)의 새 앨범 [Maladroit](2002)은 반가움보다는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앨범이다. 이미 앨범이 발매되기 몇 달 전부터 온라인에 ‘완전한’ 상태로 공개되었던 [Maladroit]의 음원을 들어본 팬들은 ‘위저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평과 함께, 다시금 [Pinkerton](1996)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Pinkerton]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앨범의 상업적인 참패 이후 밴드는 [Green Album]을 발표하기까지, 무려 5년이란 시간을 소요했단 사실은 쓸데없는 부연설명이겠지만 어쨌든…).

일단은 시작부터가 깜짝 놀랄 만하다. 제목부터 괴상한 “American Gigolo”(1980년에 발표된 영화제목과 동일)의 낯선 사운드, 마치 후(The Who)의 연주에 맞춘 그린 데이(Green Day)의 노래 같다는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 준다면, 이어지는 “Dope Nose”와 “Keep Fishin'”을 지나 “Take Control”에 이를 때쯤이면 ‘이게 정말로 위저 맞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Maladroit]는 이들의 디스코그래피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Green Album]이 비교적 일관된(전형적인) 작곡 안에서의 다양한 멜로디 변화에 주력했다면, [Maladroit]는 기존 위저의 사운드 형식 자체에 대한 변화모색이라고 할 만하다.

싫던 좋던 간에 [Maladroit]를 [Green Album]과 비교하는 것은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당사자들에게 별로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 까닭은, ‘누구보다도 두 앨범을 비교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바로 위저 자신들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30분이 조금 안됐던 [Green Album]과 40분이 많이 안되는 [Maladroit], 원래도 위저의 앨범은 러닝타임이 매우 짧았지만(데뷔작 [Weezer(Blue Album)](1994)가 41분 18초, 2집 [Pinkerton](1996)이 34분 39초), 두 앨범의 수록곡이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단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두 앨범을 합해봐도 기껏 60여분? 이 정도면 단일 앨범으로 따져봐도 그리 긴 축에 속하진 않는다). 조금 넘겨짚기를 해 보자면 [Green Album]이 5년간의 공백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최대한 기존의(혹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위저의 음악’과 가까운 형태로 완성된 반면, [Maladroit]는 앞으로 진정 ‘위저가 하고 싶은’ 음악들로 발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대평가 된 감이 없지 않은 [Green Album]과 비교하자면 [Maladroit]의 ‘생경함’은 시쳇말로 ‘밴드의 다양한 시도’라는 호의적인 평을 붙여줄 만하다. 확실히 예전의 명징한 멜로디 감은 전작에 비해 낯을 가리는 경향이 있지만, ‘떼어놓고 보면 하나 하나가 다 재미있어도, 앨범으로 들을 땐 무슨 곡이 무슨 곡인지 분간이 안 되던’ [Green Album]보다는 훨씬 수록곡간의 구성에 신경을 쓴 느낌이다. 게다가 ‘변하면 변한 대로’, ‘안 변하면 또 그런 대로’ 욕을 먹기 마련인(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떠버린’ 밴드의 운명을 생각해 보면 [Maladroit]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그리 생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여지껏 그래왔듯이, 위저의 음악은 왁자지껄 흥겨운 가운데서도 감성의 아련한 부분을 건드리는 재주를 잃지 않고 있다(이를 두고 ‘싸구려 감상’이라 해도 반박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이 점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하지만 결과적으론 항상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들 사운드의 특징과 함께 공히 밴드를 격상시키는 ‘위저만의 개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Death And Destruction”이나 “Burndt Jamb” 같은 소박한 감동을 만드는 재주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아무나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단박에 귀를 잡아채는 곡은 상대적으로 그 수가 줄었지만 지금까지 이들의 음악과는 달리, 한 번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도 일단은 [Maladroit]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아마도 다음 앨범에선 무언가 더욱 확실한 변화가 있진 않을까 하는 추측과 함께).

참고로 위저는 벌써 2003년 봄을 예정으로 5집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Pinkerton] 이후 가졌던 5년간의 공백기에 대한 반성 같은 것일까(이 정도 간격이라면 거의 한국 아이돌 그룹 수준이 아닌가)? 밴드가 이렇게 의욕적으로 일을 벌이는 마당이라면 정말 무언가 단단히 마음먹은 게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섣부른 기대도 가져보게 된다. 일단 그런 전제하에서라면, 앞으로 펼쳐질 흥미진진한 ‘2기 위저’로의 첫 발에 해당될 [Maladroit]에 우선 한 표를 던져주고 싶다(나중에 그런 게 아니었다고 판명된다면 “Burndt Jamb”이나 들으며 위안 받는 수밖에 없는 일이고). 20020510 | 김태서 uralalah@paran.com

7/10

사족: [Green Album] 때부터 든 생각인데 자신의 밴드 렌탈스(The Rentals)를 위해 베이시스트 맷 샤프(Matt Sharp)가 탈퇴한 이후로, 이들의 음악에서 (그간 큰 비중을 차지하던)가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건 알고 계시는지? 원래 위저의 가성 보컬은 맷 샤프의 전담이었다고 하는데, 그 가성이 그가 아니면 아무도 낼 수 없는 독창적인 목소리였는지 약간 궁금해지기도 한다. 사족의 사족으로, 맷 샤프는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옛 친정 밴드 위저에게 자신이 작곡에 참여했던 곡들의 지분을 나눠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갑자기 모리씨(Morrissey)의 “Sorrow Will Come In The End”가 떠오르는 까닭은?

수록곡
1. American Gigolo
2. Dope Nose
3. Keep Fishin’
4. Take Control
5. Death And Destruction
6. Slob
7. Burndt Jamb
8. Space Rock
9. Slave
10. Fall Together
11. Possibilities
12. Love Explosion
13.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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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zer [Weezer(Green)] 리뷰 – vol.3/no.14 [20010716]

관련 사이트
Weezer 공식 사이트
http://www.weezer.com
Weezer 팬 사이트
http://www.weezerfa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