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You Will Know Us By The Trail Of Dead – Source Tags & Codes – Interscope, 2002 미국 인디 록의 위풍당당한 저력 야심작과 걸작의 차이는 하나뿐이다. 야심이 성공하면 걸작이 되는 것이다. 앤드 유 윌 노우 어스 바이 더 트레일 오브 데드(…And You Will Know Us By The Trail Of Dead: 이하 트레일 오브 데드)의 메이저 데뷔 음반은 성공한 야심작이다(그런데 사실은, ‘걸작’이라고 하긴 조금 망설여진다). 사려 깊으면서도 격렬하고, 유연하면서도 폭발적이다. 소방용 호스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정면으로 맞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면 제대로 말한 건지 모르겠다. 앳 더 드라이브 인(At The Drive-In)이 소닉 유쓰(Sonic Youth)를 ‘시다바리’ 삼아 머큐리 레브(Mercury Rev)를 꼬셔서 나온 음악 같다고 해도 제대로 말한 건지 자신 없기는 마찬가지다. 위 세 밴드를 들먹인 것으로 음악적인 면에 대한 설명을 끝내려는 꼼수를 쓰면 조금 태만해 보일까? 그러니까, 하드코어 펑크(어떤 곳에서 이모코어(emocore)라는 말을 쓴 걸 보았는데, ‘예술적이고 섬세한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와 노이즈 록을 근간으로 하여 (오케스트레이션을 중심으로 한) 드림 팝적인 서정성을 가미했다는 것이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데뷔 앨범인 […And You Will Know Us By The Trail Of Dead](1998)나 2집 [Madonna](1999)도 비슷한 평을 들었(을 것 같)다. 메이저 데뷔작인 이 음반에서도 노선의 수정(이나 타협)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보란 듯이 더 노골적으로 나온다. 그루브 감이 넘치면서도 호전적인 속도감에 덧씌워진 노이즈는 짱짱하며, 이 두 요소들과 긴장 관계를 이루는 서정성은 포탄이 떨어지는 광장 한가운데서 우아하게 춤추는 발레리나를 보는 것처럼 ‘맛이 간’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가사는 ‘분노와 좌절’에 차 있다. 음반은 이 세 요소가 각자의 ‘분수’를 지키는 선에서 뒤얽히며 진행된다. 하드코어 펑크라고는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는 쪽보다는 강약과 완급을 확실히 매듭짓는 편이고, 섬세한 훅(hook) 또한 있어서 재미없다거나 단조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Baudelaire”, “Homage”). 노이즈 록의 요소는 ‘실험을 위한 실험’보다는 공격성과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에 가까우며, 드림 팝적인 서정성과 몽롱함은 곡 사이사이에 나오는 묘한 효과음과 아코디언 소리, 샘플링, 현악 세션(“It Was There That I Saw You”와 “Another Morning Stoner”, 마지막 곡이 끝난 뒤 나오는 암울한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음반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모호한 기운을 통해 지지된다. 그래서인지 곡의 구성은 단순한 편인데도 음악은 복잡하게 들리며, ‘소리(혹은 소음)의 벽’에 둘러싸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가장 ‘쌔끈하게’ 들릴 곡인 “Baudelaire”에 삽입된 혼 섹션이 조금 뜻밖이긴 해도 전반적인 흐름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이쯤에서 “흠잡을 데 없는 우수한 음반이며 최근 평단의 지지를 얻고 있는 원초적 성향의 록에 풍성함과 견고함, 복잡함이라는 예술적인 성취를 더한 음악”이라고 폼 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지만(실제로 웹진 [피치포크미디어]에서는 10점 만점을 주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종종 야심이 지나쳐서 ‘날 좀 봐달란 말야’ 식으로 청자를 버겁게 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Madonna]에 수록되었던) “Claire de Lune”처럼 ‘적당히 쉬어 가는’ 곡을 배치하기엔 메이저 데뷔라는 부담감이 은연중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는데, 외교적인 표현을 걷어내고 말하면 이 음반을 끝까지 들을 스테미너를 가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소리다. 소방용 호스에서 나오는 물을 50분 내내 줄창 맞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가진 걸 이번에 다 쏟아 부은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 음반에서 이것이 말많은 인간의 기우였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서로에게 낯선 밴드니만큼 이들의 이력을 잠깐 소개해야 할 것 같다. 트레일 오브 데드는 제이슨 리스(Jason Reece: drum)와 콘라드 킬리(Conrad Keely: vocal, guitar)를 주축으로 1994년에 결성되었으며, 이듬해에 또 다른 기타리스트 케빈 앨런(Kevin Allen)과 닐 부쉬(Neil Busch: bass guitar, sampling)를 영입하여 진용을 갖추었고, 텍사스 인디 씬에서 무정부주의적인 ‘화끈한’ 라이브로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1998년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음반을, 그리고 1999년에 [Madonna]를 인디 레이블인 머지(Merge)에서 발표한 뒤 인터스코프와 계약했다. ‘착실한 성공 경로를 밟아온, 노력하는 인디 밴드’의 전형인 셈인데, 구리다느니 맛이 갔다느니 해도 이 정도의 수준급 밴드를 발굴해내는 걸 보면 미국 록 음악 시장의 ‘저력’도 아직은 살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트레일 오브 데드의 저력만큼이야 하겠느냐마는. 2002051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9/10 수록곡 1. It Was There That I Saw You 2. Another Morning Stoner 3. Baudelaire 4. Homage 5. How Near, How Far 6. Heart In The Hand Of The Matter 7. Monsoon 8. Days Of Being Wild 9. Relative Ways 10. After The Laughter 11. Source Tags And Codes 관련 사이트 …And You Will Know Us By The Trail Of Dead 공식 사이트 http://www.trailofdead.com Merge 레이블 사이트의 …And You Will Know Us By The Trail Of Dead 페이지 http://www.mrg2000.com/bands/trailofded/bi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