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16080415-0410witchwill위치 윌(Witch Will) – Trip On Havana – 카바레/드림비트, 2002

 

 

반역이냐 모방이냐?

위치 윌(Witch Will)은 박상준과 이재희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포크 듀오다. ‘포크 듀오’라 해서 이들이 예전에 명성을 떨쳤던 트윈 폴리오나 해바라기 같은 팀의 후예라 보면 상당히 곤란하다. 왜냐하면 위치 윌의 음악은 포크라 불리는 범주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한국형’ 포크 음악과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은 다름 아닌 브리티쉬 포크.

위치 윌의 첫 음반 [Trip On Havana](2002)는 이들이 추구하는 ‘브리티쉬 포크’가 전면으로 부상된 음반이다. 이들이 과연 한국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영국의 포크를 ‘판박이’했다. 음반 전체를 보면 어쿠스틱 포크가 주종이라 할 수 있지만, 게스트로 참여한 성기완의 운치있는 일렉트릭 기타가 돋보이는 “Picnic”과 “Trip On Havana”, 그리고 “Tune From The Air”처럼 포크 록에 근접하는 노래들도 있다. 수록곡 제목이나 사운드를 찬찬히 보고 듣노라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 맹활약했던 이들, 즉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 패밀리(샌디 데니(Sandy Denny), 리처드 톰슨(Richard Thompson), 애쉴리 허칭스(Ashley Hutchings), 사이먼 니콜(Simon Nichol), 주디 다이블(Judy Dyble) 등)과 닉 드레이크(Nick Drake), 스파이로자이라(Spirogyra), 스트롭스(The Strawbs) 등, 영국의 ‘국보급’ 뮤지션들이 위치 윌에게 끼친 강력한 영향을 별로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Trip On Havana]는 음악적 구성력에 있어 나무랄 데 없는 빼어난 음반임엔 틀림이 없으나, 방향을 조금 달리해 생각하면 듣는 이에게 중요한 문제 제기를 던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음반이다. 이 음반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논란거리란, 과연 이 음반으로부터 ‘한국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음반을 들어보고 레이블 홈페이지나 보도자료 등을 보면, 위치 윌은 노골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배제했던 것 같다. 카바레 레이블 홈페이지에 오른 ‘밴드 소개’에 따르면, 이들은 “이정렬이나 고 김광석 류의 한국적 정서 가득한 ‘비어홀 포크’나 ‘미사리 포크’가 아닌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정점을 달렸던 영국의 모던 포크 뮤지션들의 것과 다름 아닌 결과물”을 추구한 것이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토양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판박이’의 세계를 지향하는 위치 윌의 태도는 일면 비판받을 여지가 크다. 아무리 브리티쉬 포크의 정수를 체화하려 발버둥쳐도, 그것은 결국엔 ‘흉내’의 몸부림으로 낙착지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브리티쉬 포크의 본바닥에서 이들의 음악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 ‘진귀한 것’ 아니면 ‘기특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이들의 시도는 충분히 ‘언더그라운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포크를 추구하는 뮤지션들 중, 어느 누가 이런 영국 포크의 세계를 구사하려 한 이 있을까? 한국 포크 뮤지션의 계보란 김민기와 한대수라는 ‘시조’들로부터 시작하여, 김광석이라는 ‘명인’을 거쳐야함이 정석일 것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포크’라는 서양의 음악 양식을 어떻게 한국인의 정서가 어려있는 토착화된 어법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왕성하게 진행 중인 한국 포크의 이러한 통념을, 위치 윌은 과감히 거부하고 있다. 위치 윌의 거부 행위엔, 기존의 포크 씬을 ‘주류’로 보고 이에 반하는 ‘인디’ 정신이 그 밑바탕임을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다. 왜 아니겠는가? 오늘날 포크 씬을 과연 ‘언더그라운드’라 볼 수 있겠는가? ‘소극장’과 ‘미사리’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의 포크는 더 이상 몸과 마음이 가난한 자의 처절한 음악혼을 승화시키는 음악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먹고 살 만한 이들의 낭만적인 퇴행을 위한 소도구에 불과한 것이다(물론 김두수처럼 극히 예외의 경우는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 위치 윌의 ‘정통 브리티쉬 포크’가 ‘반역’의 기운을 충분히 품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이들의 한계는 ‘반항’의 방법론으로 ‘모방’을 선택했다는 것. 너무나도 충실하고 착실하게 이루어진 모사의 세계로부터, 그 안에 내재된 전복의 기운을 끄집어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Trip On Havana]에 담긴 영롱한 브리티쉬 포크의 세계의 그 종착지는 사실 ‘유미주의’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위치 윌이 오늘날 안온한 주류로 떠오른 한국 포크에 회심의 일격을 가하려면, 다음 음반엔 보다 독창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한 고민이 절실할 것이다. ‘한국’ 포크와 ‘영국’ 포크라는 도식적인 틀을 뛰어넘는, 진정으로 혁신적인 그 무엇인가를. 20020512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6/10

수록곡
1. Golden Boy
2. Seaweed # 1
3. See
4. Picnic
5. Strangler’s Shovel
6. Bluedale Way
7. Girl On The Fairland
8. Dog Racing
9. Trip On Havana
10. Lullaby
11. Seaweed # 2
12. Tune From The Air

관련 사이트
카바레 레이블의 위치 윌 공식 사이트
http://www.cavare.co.kr/witch_wil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