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16083356-0410tabu타부(Tabu) – 월식 EP – Blue Hotel/Ssamnet, 2001

 

 

불온한 상상력, 불안한 꿈

2001년 10월에 열렸던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 2001’에 참여하면서 적은 사람들에게나마 이름이 알려진 이후에 이 밴드는 그 공연의 두 장 짜리 라이브 앨범을 통해서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앨범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들의 음악은 아마추어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물론 여기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은 밴드의 연주력과 같은 단지 기초(기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이 구분되는 경계는 자신(들)의 감수성을 대중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와 흐트러지거나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보컬이 며칠 동안 귓가에 머물렀던 적도 있다. 그 곡의 제목은 “월식”, 밴드의 이름은 타부(Tabu)다.

타부는 부산에서 1999년에 결성된, 따지고 들면 풋내기는 아닌 밴드다(쌈지 사운드 페스티발에서 ‘숨은 고수’라고 소개되었듯이). 밴드 명 ‘tabu’는 금기라는 뜻의 ‘taboo’가 문화인류학 용어로 사용될 때의 표기라고 하는데, 멤버들은 ‘모든 모순된 의미들의 매개체적인 개념’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이들의 음악적 고민이 ‘인간의 잠재적이고 내재적인 욕구의 표출과 발산’이라는 뜻으로도 들릴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어쩌면 같은 부산 출신인 레이니 선(Rainy Sun)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베이스음이 무겁게 치고 나오다가 드럼과 기타가 뒤섞여 경보음 같은 사운드를 내는 “불로”를 시작으로 이들의 어둡고 습한 사운드는 시작되는데, 음악은 마치 무대에 쳐진 검은 장막을 걷어내는 듯한 느낌으로 어둡고 습한 변두리 지하실 창고에서 연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것이 부산이라는 ‘지역성’과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특하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이어지는 “월식”은 이미 한 번 들어보았던 곡이기 때문인지(혹은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인지) 새로운 맛은 없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곡이다. 버스-코러스의 연결이 군더더기 없이 꽉 짜여진 구성, 따라 부르기 쉬운 코러스, 슬라이드 기타 연주와 베이스 기타 연주가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되면서 만드는 흥겨운 멜로디, 그 너머로 첨가되는 변조된 보컬이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남다른 것이다. “피빛”은 낮은 곳에서 흐느끼는 보컬이 매력적인 곡인데, 디스토션 걸린 기타와 단조롭게 반복되는 베이스 리듬이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슬라이드 기타의 멜로딕한 연주가 이어지는 “고함”은 시종일관 흥겨운 비트가 귀에 감기는 동시에 보컬의 흐느낌이 가장 두드러지는 곡이다. 그밖에 “나… 유영하다”와 “통제불가” 같은 곡들 모두 거친 기타 연주가 시원스레 진행되며 흥을 돋구는 하드 록의 기본에 충실한 곡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단단하고 촘촘한 느낌을 준다. 잘 닦여진 기본기는 가사와 더불어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이것은 이들의 사운드에 대한 첫인상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물론 부산 출신 밴드가 서울에서 데뷔하는 것이니 만큼 갈고 닦은 실력이 누구보다 뒷받침되어야 했던 까닭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이런 생각 자체가 한편으로는 고민스러운 것이다. 한국에서는 음악이든 무엇이든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정서적으로도 그렇지만, 구조적으로도 지역문화가 자력갱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타부의 사운드를 만들어낸 자양분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그만큼 이들의 사운드가 참신하게 들린다는 것이고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는 얘기다. 20020512 | 차우진 djcat@orgio.net

8/10

ps. 최근 타부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이들은 이미 해산했다고 한다. 아직 ‘밴드’로서 이들의 불온한 상상력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이지도 못한 상태(이 앨범은 미니 앨범이다)여서 그런지 이들의 해산 소식은 안타깝게 들린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멤버들이 다른 곳에서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기대해본다.

수록곡
1. 불로
2. 월식
3. 피빛
4. 고함
5. 나… 유영하다
6. 통제불가
7. Hidden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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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스 아티스트 – [2001 Ssamzie Sound Festival] 리뷰

관련 사이트
타부 공식 사이트
http://www.tabu.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