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틴 브라더스(Mountain Brothers)와 제임즈(Jamez)에 대한 미디어와 인디 씬의 주목은 이후 여타의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 특히 엠씨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새로운 뮤지션들도 있지만,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이 뒤늦게 강조되기 시작한 기존의 스타급 뮤지션들도 있다. 가령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애플 드 압(Apl de Ap)이 필리핀계 혼혈이고 래티릭스(Latyrx)의 절반인 리릭스 본(Lyrics Born)이 일본계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그들의 음악과 관련해 강조되었고, 앞서 언급한 키 쿨(Key Kool)과 레드매틱(Rhettmatic) 듀오의 코스모너츠(Kosmonautz)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 비져너리스(Visionaries)도 이런 맥락에서 유달리 조명을 받았다.

새로운 세대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도래

20020516075646-0410us-13LA의 아시아계 엠씨 트리오 Wisemen
기존의 뮤지션들을 제외하더라도, 이제 인디 씬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시안 아메리칸 엠씨들이미 대륙 도처에서 눈에 뜨일 정도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LA의 ‘잡종’ 트리오 와이즈먼(Wisemen)과 한국계 엠씨 아시아 콘티넨탈(ASIA Continental), 베이 에리어의 트리오 피놈 서클(Feenom Circle)은 캘리포니아 인디 힙합 씬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하는 뮤지션들로 꼽힌다. 미 대륙 서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애틀에는 엠씨와 디제이로 구성된 트리오 붐 뱁 프로젝트(Boom Bap Project)가 버티고 있다. 그리고 다시 내륙의 시카고로 들어가면 언더그라운드 패거리 갈라파고스포(Galapagos4) 출신 오프화이트(Offwhyte)가 기세를 떨치고 있고, 래퍼 마윈 타바(Marwin Taba)가 주축이 된 트리오 퍼시픽스(Pacifics)의 재능도 예사롭지 않다. 물론 동부 뉴욕의 퀸즈에서는 비타협적 가사와 단단한 비트로 무장한 엠씨 크노와 라자러스(Knowa Lazarus)의 활약상을 목격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경 넘어 캐나다의 괴짜 ‘원맨 힙합 밴드’ 애너니머스 트위스트(Anonymous Twist)도 빼놓을 수 없고, 최근에 솔로 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한 마운틴 브라더스의 멤버 스타일스도 놓치면 안 된다.

근년에 발매된 이들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뮤지션들의 음반에 대한 언론의 평가 역시 상당히 호의적이다. 실제 오프화이트의 [Squints](2000)를 필두로 붐 뱁 프로젝트의 [Circumstance Dictates](2001), 와이즈맨의 [History In The Making](2001), 피놈 서클의 [Souled Separately](2001) 등은 모두 단단한 비트와 영리한 라임, 유려한 래핑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수작들이었다. 이들을 제외하면 많은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뮤지션들이 여전히 온라인 상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할 가치가 있는 실력파들이다. 특히 마운틴 브라더스의 달콤한 축소 버전에 가까운 스타일스, LA의 한인타운을 묘사한 “K-Town”으로 주목받은 아시아 콘티넨탈,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애너니머스 트위스트 등의 음악은 상당히 흥미롭게 들린다.

Feenom Circle, “Masters Too” [Souled Separately] 중에서

비록 199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이 지금처럼 양적, 질적 팽창을 거듭한다면 더 이상 힙합 공동체로부터 이방인 취급만 받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아시아계 힙합 팬들을 필두로 보다 많은 힙하퍼들로부터 그들이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은 특히 젊은 세대 아시아계 힙합 비평 집단으로부터 이미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미국과 영국의 음악 잡지와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힙합 비평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평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강하다. 올리버 왕(Oliver Wang)을 비롯해 세레나 김(Serena Kim), 토드 이노우에(Todd Inoue), 제프 장(Jeff Chang), 셀린 웡(Celine Wong) 등이 바로 그들인데,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이 보다 빨리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를 원하며 진작부터 열렬한 성원을 보내고 있다.

엘레펀트 트랙스, 그리고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연대를 향해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이 하나의 결집된 세력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힙합 특히 랩이 그 어떤 음악 형태보다 표현 주체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문화적 표현물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이 기존 힙합 공동체의 엠씨들이 자신의 사회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왔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들 아시안 아메리칸 엠씨들이 ‘아시아계’ 혹은 ‘이민’ 집단의 일원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의지를 표현하는데 랩의 많은 부분을 할애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그 가능성이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상당수의 아시아계 턴테이블리스트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인종과 민족 정체성을 감추면서 성공적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시아계 엠씨들도 대부분 굳이 자신들의 음악에서 개인적 배경을 스스로 노출하고 의도적으로 정치성을 띠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임즈와 같은 극소수의 ‘전투적’ 래퍼를 제외한다면, 이들 대부분은 마운틴 브라더스의 성공담을 따른다. “우리(마운틴 브라더스)는 처음부터 에쓰니시티(ethnicity)에 대한 명백한 언급을 피해왔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음악과 스타일의 장점에 대해 편견 없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흑인들과 힙합 공동체로부터 쉽게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은 필연적으로 또 하나의 상반된 프로모션 전략을 함께 취해야 한다. 즉,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감추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에쓰니시티를 명백히 드러내면서 아시안 아메리칸 수용자와 청중을 끌어들이는 전략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턴테이블리스트들의 지속적인 유기적 연대 활동과 흡사하게, 아시안 아메리칸 엠씨들도 점진적으로 합동 공연이나 공동 앨범 작업 등의 방식을 통해 아시안 아메리칸 힙하퍼들을 흡수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시아계 턴테이블리스트들과 엠씨들을 모두 규합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작업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020516075646-0410us-14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결집된 힘, [Elephant Tracks].
1999년에 있었던 ‘엘레펀트 트랙스(Elephant Tracks)’ 프로젝트와 그 결과물인 동명의 앨범은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연대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캘리포니아 중심의 아시아계 대학생 연합인 APISA(Asian Pacific Islander Student Alliances)의 활동을 지지하기 위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간의 단순한 음악적 단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APISA는 미국 내에서 마이너리티 집단이라는 이유로 고등교육을 성취하는데 여러 불이익을 받는 아시아계 고등학생들을 돕고 자극하기 위한 회의와 대규모 집회를 1999년에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 크루즈 분교(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에서 주최한 바 있다. 바로 이 행사를 지원하고 장차 아시안 아메리칸 청소년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은 [Elephant Tracks]를 발매한 것이다. 마운틴 브라더스를 중심으로 래티릭스, 비져너리스, 피프쓰 플라툰(5th Platoon)의 빈록(Vinroc)과 롤리 로(Roli Rho) 등 아시아계 간판 엠씨와 디제이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친한 동료인 미스타 시니스타(Mista Sinista)나 자이언 아이(Zion I) 등도 이 앨범에 트랙을 제공했다.

Mountain Brothers, “Community” [Elephant Tracks] 중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한 힙합 공동체, 나아가 미국 사회의 정형화된 이미지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었다. 주류 사회 편입을 위해 가장 애쓰는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 혹은 ‘미들맨(middleman)’의 이미지는 남성적 매력이 부족하다는 편견과 결합되면서, 결국 힙합과 아시안 아메리칸은 일종의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상당수의 아시아계 청소년들은, 특히 캘리포니아를 염두에 둔다면, 하층 계급 자녀들이며 인종적 편견 속에 거친 성장기를 겪고 있다. 이들에게 힙합 음악이 생활과 문화의 중요한 일부분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엘레펀트 트랙스’ 프로젝트는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이 장차 그들의 가장 큰 청중이 될 아시아계 청소년들과 직접적인 연계를 맺고 나아가 이들 청소년들의 선도자 혹은 후원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이 아시아계 청년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연대활동을 벌이는 빈도와 규모는 지금 확대 일로에 있다. 당장 올해 4월에 LA에서 진행되었던 ‘아시안 힙합 서미트(Asian Hip Hop Summit)’ 이벤트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 행사는 특히 쿠블라이 권(Kublai Kwon) 등 한국계 힙합 뮤지션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LA 폭동 10주년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북한 기아 돕기 자선행사를 표방한 이 이벤트는 한국계 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특히 LA를 중심으로 인디 씬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아시아계 힙합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그 중에서도 에프터라이프 크루(Afterlife Crew), 카머시(Karmacy), 아시아 콘티넨탈, 신비(Shin-B)와 쿠블라이 권 등은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또 다른 면모를 과시하여 청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아직은 태동기에 있는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혹은 어느 정도 성장을 거듭할지 당장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마운틴 브라더스 같은 이들이 이미 인디 힙합 씬의 스타급 뮤지션으로 성장했고 실력 있는 신인급 뮤지션들이 도처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미래를 낙관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이 이중 전략을 취하면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현실은 앞으로 그들의 진로에 수많은 난관 또한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때론 아시안 아메리칸 정체성을 드러내는 활동이 필요하지만, 보다 큰 성공을 위해서는 이를 감추어야 한다는 대부분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의 주장은, 그들이 여전히 힙합 공동체로부터 아직은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힙합 공동체에 만연한 인종적 편견들은 미국 사회 전반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인종 관계의 축소판이다. 흑백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인종적 편견들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은 필연적으로 가시밭길을 행보하게 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시아계 뮤지션들 대부분이 그 힘든 길 진입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힙합을 정말 좋아하고 제대로 된 힙합 음악을 열심히 한다면 어디서나 인정받을 수 있다”는 챱스(마운틴 브라더스)의 주장은 바로 모든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의 꿈과 의지를 대변한다. 물론 그 꿈과 의지는 자신들 부모 세대가 간직했던 ‘아메리칸 드림’의 새로운 버전이기도 하다.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의 최신 아메리칸 드림이 조만간 진정으로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20020412 | 양재영 cocto@hotmail.com

관련 글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현황과 전망 (1) – vol.4/no.10 [20020516]
Mountain Brothers [Self, Volume 1] 리뷰 – vol.4/no.10 [20020516]
Visionaries [Sophomore Jinx] 리뷰 – vol.4/no.10 [20020516]
Offwhyte [Squints] 리뷰 – vol.4/no.10 [20020516]

관련 사이트
Elephant Tracks 공식 사이트
http://www.elepahnttracks.com
Asian Hip Hop Summit 이벤트 공식 사이트
http://www.asianhiphopsummit.com
Feenom Circle 공식 사이트
http://www.feenom.com
Wisemen 공식 사이트
http://www.profitrecords.com
Boom Bap Project 공식 사이트
http://www.boombapproject.com
Offwhyte 공식 사이트
http://www.galapagos4.com
Pacifics 공식 사이트
http://propagandamovement.com
Knowa Lazarus 공식 사이트
http://www.knowalazarus.com
mp3.com의 Anonymous Twist 사이트
http://artists.mp3s.com/artists/24/anonymous_twist.html
mp3.com의 ASIA Continental 사이트
http://artists.mp3s.com/artists/220/asia_continental_aka_the_g.html
mp3.com의 Styles 사이트
http://artists.mp3s.com/artists/123/styles_infinit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