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14105103-0410yeahsYeah Yeah Yeahs – Yeah Yeah Yeahs EP – Shifty, 2002

 

 

소진되지 않은 록의 가능성

유럽을 여행 중이던 어느날,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데이빗 번(David Byrne)은 루 리드(Lou Reed)를 ‘이상한 인물’로 묘사한 현지의 신문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이를 읽고 난 후 그가 보인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뉴욕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다. 뉴욕에 가본 사람이라면 절대 루 리드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세우지 못한다.” 뉴욕은 현대 예술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성공을 꿈꾸는 세계 각국의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미래를 설계하는 곳이다. 헐리웃에 가면 모두가 배우라고 하듯 뉴욕에서는 흔해 빠진 게 예술가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나르는 사람은 극작가고,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사람은 설치 미술가다. 이렇게 예술가들이 모여들다 보면 자연히 기인도 많고 괴팍한 사람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연주되는 음악도 평범할 리가 만무하다. 뉴욕이 현대 대중음악의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대담한 음악들의 고향이 된 것은 이 점에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뉴욕 출신의 신진 네오 거라지 록 밴드 예예예스(Yeah Yeah Yeahs)는 2002년 들어 등장한 신인 중 음악계 안팎의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유망주다. 이미 ‘띄워주기’ 태세에 돌입한 몇몇 음악지는 아직 데뷔 앨범도 발표하지 않은 이 풋내기들에게 작년 스트록스(The Strokes)나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에게 했던 것 이상의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2002년 3월에 있었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음악 회의(South By Southwest Music Conference)를 통해 일약 혜성과 같이 등장한 이들은 그 여세를 몰아 4월에 가진 세 차례의 런던 공연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부의 예상처럼 이들이 과연 2002년의 화이트 스트라이프스가 될 수 있을지는 정식 데뷔 앨범이 나와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다섯 곡이 수록된 데뷔 EP만으로도 이들이 결코 만만치 않은 신인이라는 점을 말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일 이들이 데뷔 앨범을 이 정도 수준의 작품집으로 꾸밀 수만 있다면, 2002년이 예예예스의 해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떼 놓은 당상이 아닐까 싶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를 통해 대중화된 네오 거라지 록은 블루스와 컨트리를 주된 소재로 삼아 펑크의 에너지와 하드 록의 진지함을 결합한 형태의 음악이었다. 이것은 매우 힘있고 신명나는 음악이기는 했지만 스타일의 측면에서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예예예스는 거라지 록의 음악적 기본 특성들을 공유하면서도 뉴욕 출신 특유의 예술적 터치가 물씬 풍기는 거라지 록을 들려준다. 여기서 ‘예술적 터치’란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에서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Jon Spencer Blues Explosion)으로 이어지는 뉴욕 특유의 ‘아트 거라지 록’ 전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거라지 록이 로큰롤 본연의 흥을 되살리는 데만 주력하는 전통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것에 반해 뉴욕의 거라지 록은 전통적 요소들을 완전히 분해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학구적 성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못해도 중간은 가는’ 다른 지역의 거라지 록에 비해 뉴욕의 거라지 록은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적인 결과로 양분되는 경향이 있다. 결과가 좋을 때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차마 들어줄 수 없는 과시적인 음악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예예예스의 음악은 최근 이 지역에서 등장한 네오 거라지 록 중에서도 단연 ‘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낯익음과 낯섦의 영역을 솜씨있게 넘나들며 자신들의 음악을 축조한다. 블루스(“Bang”), 로큰롤(“Mystery Girl”), 펑크(“Miles Away”), 싸이키델릭 (Our Time) 등의 친숙한 형식들을 채택함으로써 청취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지만, 곡의 1/3을 반복적인 후주로 채운다거나(“Bang”), 템포를 조금 늦춰 김을 뺀다거나(“Mystery Girl”), 2초간의 브레이크를 지속적으로 도입해 곡의 흐름을 차단한다거나(“Our Time”)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익숙함에 내포된 안락함을 완전히 제거한다.

낯익음과 낯섦을 교차시키는 이들의 음악 스타일은 정체불명의 괴물 트랙 “Art Star”에서 그 논리적 극단에 도달한다. 기타의 뒤뚱거리는 리듬에 이어 후렴구에서 느닷없이 분출하는 데쓰메탈적 포효와 그에 곧바로 연결되는 수잔 베가(Suzanne Vega)적 스캣은 그 이음새가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어이없어 감탄과 실소를 동시에 머금게 만든다. 이 음반에서 가장 정상적인(?) 작품 “Miles Away”가 이 곡에 이어 등장하는 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기타와 보컬의 힘겨루기가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들었던 이상한(?) 곡들에 비하면 이 곡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 곡마저도 한물 간 유행으로 여겨지는 페이드 아웃 엔딩을 채택함으로써 예사로움을 끝내 거부하는 면모를 보여준다(페이드 아웃은 이 음반의 첫 곡인 “Bang”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예예예스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처럼 베이스가 없이 기타와 드럼으로만 구성된 단촐한 편성의 그룹이다. 그러나 이들은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와 달리 보컬을 따로 둔 세 명의 멤버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리스트 닉 지너(Nick Zinner)는 전통적인 기타의 역할에 충실한 잭 화이트(Jack White)와 달리 둔중하고 탄력있는 톤을 만들어냄으로써 베이스의 부재를 효과적으로 보완하며, 드러머 브라이언 체이스(Brian Chase)는 단순한 백 비트를 공급하는데 만족하는 멕 화이트(Meg White)와 달리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리듬을 연주한다. 그러나 예예예스의 진면목은 뭐니뭐니해도 천방지축 보컬리스트 캐런 오(Karen O)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사실 예예예스가 현재 일으키고 있는 돌풍은 그녀의 명랑쾌활하면서도 뇌쇄적인 보컬과 이미지에 힘입은 바 크다. 거만함과 당당함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보컬은 나머지 두 멤버의 유연하고 세련된 백업과 어우러져 도회적이면서 활기에 찬 예예예스 사운드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예예예스의 등장으로 2002년의 록 씬은 갈수록 점입가경의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부의 예상처럼 이들을 필두로 한 네오 거라지 록 밴드들이 과연 록 음악의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여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난 수년간 침체를 면치 못하던 록 음악계가 다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 첨병의 역할을 네오 거라지 록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혹자는 네오 거라지 록이 본질적으로 전혀 새롭지 않은 음악이라는 점에서 그것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을 것 같다. “꼭 새로워야만 좋은 것인가?”. 우리는 입으로는 19세기적 발전사관의 종말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의식 깊은 곳에서는 그것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네오 거라지 록은 전혀 새로운 음악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주류 무대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소진하지 않았다. 아직도 원래의 신선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네오 거라지 록의 부상은 어쩌면 세속적 가치에 물들지 않은 음악의 본원적 순수함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020510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수록곡
1. Bang
2. Mystery Girl
3. Art Star
4. Miles Away
5. Ou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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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Yeah Yeah Yeahs 공식 사이트
http://www.yeahyeahyeahs.com/
Wichita-Recordings의 Yeah Yeah Yeahs사이트
http://www.wichita-recordings.com/yeahyeahyeahs/hom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