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더 이상 흑백의 이분법 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다. ‘힙합은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의 전유물’이라는 식의 가정은 이미 전설이 되었고, 심지어 ‘백인이 드디어 힙합 씬의 또 다른 주체가 되었다’는 주장도 구닥다리가 되었다는 얘기다. 북미 대륙을 넘어선 당대 힙합의 지구화를 거론할 필요 없이, 미국 내에서 라틴 계열 래퍼들의 득세, 아프리카나 유럽 출신 뮤지션들의 힙합에 대한 진득한 애정은 힙합의 주체를 더 이상 특정 정체성의 인종, 계급 집단에 한정시킬 수 없음을 입증한다.

이 와중에도 힙합을 둘러싼 담론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즉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근년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거세되었던 게 사실이다. 아시아계 이민 2세대, 3세대 청년 중 상당수가 힙합 음악과 문화의 중요한 수용자 집단임을 감안하면,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음악에 대한 미디어와 힙합 씬의 오랜 침묵은 몇 가지 의혹을 자아낸다. 과연 실제 존재감을 못 느낄 정도로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들의 활약은 미미한 것일까? 혹은, 그렇지 않다면, 주류 힙합 씬과 미디어에서 애써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성장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일까?

디제잉 vs 엠씨잉

20020510043150-0410us11아시아계 슈퍼 턴테이블리스트 트리오 Triple Threat DJs
우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턴테이블리즘’을 중심으로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비약적 성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 아니 턴테이블리즘의 양적, 질적 팽창은 아시안 아메리칸 디제이들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과격한 비약을 해도 좋다. 인비지블 스크래치 피클즈(Invisibl Scratch Piklz), 비트 졍키스(Beat Junkies)부터 최근의 트리플 쓰레트 디제이스(Triple Threat DJs)에 이르는 캘리포니아의 필리핀계 슈퍼 디제이 팀들이 때론 집단으로 때론 각개격파 식으로 디제이 세계를 평정한 뒤 턴테이블 연주를 하나의 음악 장르로 승화시켰다는 영웅담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물론 뉴욕의 아시아계 턴테이블리스트 패거리인 피프쓰 플래툰(5th Platoon)의 10여 년에 걸친 노고도 빼놓을 순 없고, 국경 너머 밴쿠버의 중국계 신동 키드 코알라(Kid Koala)도 놓쳐선 안된다. 이들 아시아계 턴테이블리즘 거물들이 연대 활동을 펼치는 빈도가 높아지고, 더욱이 트리플 쓰레트 디제이 같은 팀을 중심으로 일종의 ‘범아시아 디제이 운동(pan-Asian DJ movement)’까지 활기차게 전개되고 있음을 상기하면,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은 이제 힙합의 본 고장에서 독자적인 목소리와 막강한 집단 파워를 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하나의 준거 세력으로서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씬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힙합 음악이 디제잉(DJing)과 엠씨잉(MCing)이 조합된 음악 양식임을 떠올린다면,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의 기형적 불균형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화려한 면면의 아시아계 디제이들과 대조적으로, 정작 무대 전면에서 그리고 방송을 통해 목소리를 뽐내야 할 아시아계 엠씨들은 지금껏 부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류 힙합 시장에서 써드 베이스(3rd Bass), 에미넴(Eminem), 빅 펀(Big Pun),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 같은 백인과 라티노 엠씨들이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을 생각하면, 주류 시장은 커녕, 인디 씬에서도 아시아계 엠씨들의 활약상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 중 상당수가 엠씨의 뒤를 받치는 디제이거나 일반 대중과는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턴테이블리즘에 경도되어 있고 더욱이 턴테이블리즘 음악이 여전히 힙합이냐 아니냐는 논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는 상황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을 공식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엠씨들의 부재는 치명적 상처가 된다.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에 대한 미디어와 주류 힙합 씬, 심지어 인디 씬의 무관심, 무지, 외면에 대해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 항변을 할 수 있겠는가?

jRoli Rho of 5th Platoon, “Beat Juggling” [Turntablist Revolution] ITF/1997 중에서

현재의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을 특징짓는 디제잉과 엠씨잉의 기형적 불균형에 대해 나름의 해명이 가능할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분교(University of California, Urvine)에서 종족음악학(ethnomusicology)을 가르치는 데보라 웡(Deborah Wong)은 역사적으로 아시안 아메리칸 뮤지션들이 유독 턴테이블 연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그들이 무수한 디제이 콘테스트를 석권해온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디제잉 혹은 턴테이블을 연주할 때 인종 문제는 상대적으로 축소된다. 입을 통한 래핑과 달리 손을 통한 디제잉은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들로 하여금 아시아인들에게 보다 많은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

가정은 이렇다. 일단 시장의 법칙을 논외로 한고 음악적, 문화적 요소들만 고려한다면 힙합은 여전히 아프로 아메리칸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문화적 표현물이다. 첫째 흑인 음악의 전통에서 비롯한 비트들이 그렇고, 둘째 아프로 아메리칸의 구술 전통과 언어 문법, 발음에서 진화한 라임과 래핑 기술이 그렇고, 마지막으로 힙합 뮤지션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마치스모(machismo)’적인 네그리튜드의 태도가 그러하다. 다시 한번 힙합이 디제잉과 엠씨잉이 결합된 음악 양식임을 전제할 경우, 디제잉은 이 중 첫 번째인 비트와 연관된 것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엠씨잉과 직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아프로 아메리칸이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면 결국 이러한 아프로 아메리칸 청년 음악과 문화에 내재한 기본 코드들을 제대로 학습하고 따라해야 한다. 그렇다면 비트를 만들어내는 디제잉은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기술적 측면이 강조될 경우 비트를 만들어 내는 창의적 능력만 갖춘다면 누구나 힙합 디제이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엠씨잉은 다른 문제라고 데보라 웡은 주장한다. 특히, 라임과 래핑 기술은 습득할 수 있다 해도, 마치스모적 네그리튜드를 제대로 드러내기에는 아시안 아메리칸 청년들이 한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물론 엠씨잉이 더 이상 아프로 아메리칸만의 배타적 영역은 아니다. 가령 에미넴, 빅 펀, 팻 조(Fat Joe) 등 제대로 에보닉스(ebonnics)를 구사하고 창의적 라임 스킬을 지닌 백인이나 라티노 래퍼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성장과정에서 힙합 음악과 문화에 익숙할 수만 있다면, 아시아계 2세대, 3세대 청년들도 아프로 아메리칸과 흡사한 래핑을 못할 리는 없다. 하지만 힙합 공동체의 어느 누구도 아시아계 남성들이 제대로 마치스모적 네그리튜드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향적이기보다 내성적이고 유약하며, 남성적 매력이 떨어지고, 거리를 활보하며 놀기보다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근면한 생활에 집착하는 아시아계 남성들에 대한 이미지는 아시안 아메리칸 청년들의 힙합 공동체 편입을 방해하는 치명적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양 무술(martial art)이 힙합 문화와 음악의 중요한 요소로 적극 수용되는 것을 떠올린다면 아시안 아메리칸 청년들에 대한 이러한 배타적 태도는 참으로 역설적이다. 어느덧 4반세기에 이른 미국 힙합의 역사와 무관한 듯한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음악 특히 엠씨잉의 부재 혹은 무시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어느 정도 설명 가능하다.

마운틴 브라더스, 그리고 제임즈

다행히도, 힙합 공동체가 가장 꺼리는 두 집단이 동성애자와 아시아계 남성들이라는 오래된 정설 아닌 정설에 대한 소리 없는 도전이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고 있다. 실력을 갖춘 아시안 아메리칸 엠씨들이 미 전역에서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은 인디 씬을 중심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시안 아메리칸 랩 그룹들이 미 대학가를 중심으로 수면에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베이 에리어와 LA를 중심으로 필리핀계 디제이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던 1990년 초반에 이미 뉴저지의 옐로우 펄(Yellow Pearl), 시애틀의 서울 브라더스(the Seoul Brothers), 캘리포니아 데이비스의 아시아틱 어파슬스(Asiatic Apostles) 같은 그룹들이 대학가와 각종 공동체 이벤트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5년 LA 출신 코스모너츠(Kosmonautz)가 발매한 동명의 정규 앨범은 인디 씬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코스모너츠는 일본계 래퍼 키 쿨(Key Kool)과 비트 졍키스의 핵심 멤버이기도 한 필리핀계 턴테이블리스트 레드매틱(Rhettmatic)의 듀오였다.

하지만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에 대해 언론과 인디 씬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더 지난 1998년부터다. 그 해 하반기에 세 장의 중요한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앨범이 동시다발적으로 발매되었는데 큐버트(QBert)의 [Wave Twisters], 마운틴 브라더스(Mountain Brothers)의 [Self, Volume 1], 제임즈(Jamez)의 [Z-Bonics]가 바로 그 음반들이다. 인비지블 스크래치 피클즈 출신의 디제이 큐버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얘기가 되었으니 일단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아시안 아메리칸 엠씨로서 처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마운틴 브라더스와 제임즈의 이력과 음악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필라델피아 출신 중국계 미국인 트리오 마운틴 브라더스는 정규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까지 실로 험난한 길을 거쳐야 했다. 이들의 체험은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미국 땅에서 랩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우 적절하게 보여준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출신의 이들 트리오는 1996년에 스프라이트(Sprite)에서 해마다 주최하던 전국 랩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물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중국계 이름 대신 챱스(Chops), 페릴 엘(Peril-L), 스타일스(Styles) 같은 예명으로 대회 참가를 신청했고 결국 우승까지 하게 된다. 그들의 60초 짜리 스프라이트 광고 랩이 전국에 울려 퍼진지 얼마 되지 않아 마운틴 브라더스는 당시 푸지스(the Fugees), 사이프레스 힐 등을 거느린 거물 레이블 러프하우스(Ruffhouse)와 마침내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최초의 아시안 아메리칸 힙합 뮤지션이라는 명예는 얼마가지 않았다. 앨범 녹음은 거의 끝났지만 발매도 되기 전에 그들은 러프하우스 사장 조 니콜로(Joe Nicolo)로부터 방출(?) 명령을 받았다. 원인은 앨범 제작 과정에서 양자간에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샘플링 등 음악적 문제에 대한 간섭 뿐 아니라, 가령 이들 중국계 트리오를 마케팅하기 위한 방법으로 러프하우스 간부들은 무대 위에서 무술 도복을 입고 곤봉을 휘두르며 연주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한 마운틴 브라더스는 러프하우스를 뛰쳐나와 결국 자신들의 레이블을 차리고 철저한 인디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정규 데뷔 앨범인 [Self, Volume 1]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샘플링을 배제한, 재즈에 영향 받은 비트와 지적이면서 유머 넘치는 부드러운 랩의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 인터넷과 인디 라디오 채널 중심으로 진행된 앨범 홍보 작업은 예상외로 큰 성과를 올렸는데, 특히 가장 대중적인 트랙 “Galaxies: The Next Level”의 독특한 뮤직비디오는 MTV에서 자주 방영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그룹 멤버인 챱스는 필라델피아를 넘어서는 인디 씬의 실력파 프로듀서로 성장해 다양한 뮤지션들의 음반 제작에 참여하고 있고, 스타일스는 많은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최고의 게스트 엠씨가 되었다.

20020510043150-0410us12제임즈는 뉴욕시의 퀸즈(Queens)에서도 특히 아시아 이민들의 밀집 지역인 플러싱(Flushing)을 본거지로 활동하는 한국계 래퍼다. 사실 대부분의 아시아계 힙합 뮤지션들은 자신의 민족 혹은 국가 정체성을 음악과 직접적으로 결부시키는 것에 무관심한 편이다. 하지만 제임즈의 힙합에 대한 생각은 남다르다. 그는 10대 후반에 한국을 잠시 동안 방문했을 때 서울의 한 레코드 가게에 들린 적이 있다고 한다. 아마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앨범이 나왔을 때쯤 인 것 같은데, 열혈 힙하퍼였던 제임즈에게 서태지의 음악은 미국 흑인 힙합의 어설픈 모방 정도로 간주되었다. 오히려 그의 귀를 잡아당긴 건 한쪽 구석의 사물놀이 음반이었고 이때부터 제임즈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Jamez의 싱글 음반 [F.O.B.]

Jamez, “F.O.B. (radio)” [F.O.B.] 중에서

자신의 레이블 F.O.B.를 통해 발매된 제임즈의 싱글 앨범 [F.O.B.]와 정규 데뷔 앨범 [Z-Bonics]는 힙합과 전통 한국 음악의 독특한 퓨전을 보여준다. 즉, 힙합의 비트와 국악의 요소, 가령 풍물패 연주나 가야금, 단소 등의 소리가 의도적으로 결합된 사운드 위로 랩과 창이 자유롭게 오간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아시안 아메리칸, 특히 코리안 아메리칸 젊은이들에게 한국 고유의 음악 유산들을 알리고 싶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랩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다른 아시안 아메리칸 엠씨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제임즈는 힙합을 마이너리티 집단의 사회적, 정치적 권력화를 위한 도구로 간주한다. 자신의 음악을 소위 ‘아지안/퍼시픽 르네상스(Azian/Pacific Renaissance) 운동’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면서, 소수민족 집단이 대도시 뉴욕에서 겪는 계급적, 인종적 현실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비판하는데 가사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Day In The Life”나 “7-Train” 같은 트랙이 특히 그러하다. [Z-Bonics]를 발매한 후 제임즈는 미 동부 대학가와 아시아 공동체의 문화행사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힙합 뮤지션 중의 한 명이 되었다. 뉴욕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이민들의 힘든 삶을 묘사한 다큐멘터리 [The #7 Train: An Immigrant Journey]의 음악을 맡았던 것도 바로 그러한 면모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계속) 20020412 | 양재영 coct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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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Mountain Brothers 공식 사이트
http://www.mountainbrothers.com
Jamez를 소개하는 사이트
http://artists1.iuma.com/IUMA/Bands/Jam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