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수 – 김두수 2집(약속의 땅) – 동아기획/서라벌, 1988 대지의 노래들, 그렇지만 선적이고 우주적인 모두 아홉 개의 트랙(‘건전가요’는 제외) 중에서 4분 이상의 곡이 일곱 개라면 한국에서 ‘음반 팔지 않겠다’는 말이나 똑같을 것이다. 이 음반은 실제로 팔리지 않았으니 이런 법칙에 예외는 없다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또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이런 음반은 싼 가격에 대량으로 팔리지는 않지만 소량으로 비싼 가격에는 잘 팔린다는 점이다. ‘잘 팔린다’기보다는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서울의 황학동이나 회현동의 ‘중고 LP상’에 가 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비닐 LP로만 발매된 앨범이므로 이를 전제해서 말하면 이 음반은 ‘2부 구성’이라는, 영미권 록 음악 황금기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앞면과 뒷면의 첫 곡은 어쿠스틱 기타의 쓰리 핑거 주법에 기초한 곡들이다. A면의 경우 타이틀곡 격인 “약속의 땅”이, B면의 경우 “철탑 위에 앉은 새”가 이에 해당한다. 그 뒤에 나오는 소리는 상이하다. A면의 경우 “나비야”, “새우등”, “꽃묘”처럼 차분하고 나른한 소품들이 나온다. 물론 네 번째 트랙인 “청개구리 수희”는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서 심상치 않더니 B면의 나머지 트랙들은 모두 몽환적이고 ‘프로그레시브’한 대곡들이다(“철탑 위에 앉은 새”와 “꽃묘”는 1집에 수록된 곡을 재녹음한 것임을 알려 둔다). 결론적으로 A면에서는 토속적 분위기의 노래 가락에 젖다가 B면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우주의 분위기’를 맛보게 된다. 이때 우주는 영국이나 유럽의 ‘스페이스 록’처럼 첨단적이고 과학적인 느낌이라기보다는 선적(禪的)이고 신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클래식 기타의 트레몰로가 장조와 단조를 번갈아 가는 “내 영혼은 그저 길에 핀 꽃이려니”, 세박자의 여성 코러스가 나오다가 오르갠 연주와 효과음에 이어 재즈풍으로 변하는 “환상”, 염불이라기에는 멜로딕하고 찬송라기에는 정적(靜的)인 낭송에 이어 불협화음 혹은 텐션이 가미된 기타 연주가 덧붙여지는 “신비주의자의 노래”에 이르면 묘한 영적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혹은 지루해서 졸음이 온다). 그러는 사이 언제 끝났는지 모르게 음반은 끝난다. 그래서 A면을 범상하게 듣고 지나갔다면 다시 듣게 된다. 4, 5번줄의 해머링과 감화음(diminish chord) 삽입이 인상적인 “약속의 땅”은 그의 구도자적 면모를 재확인해 준다. 피아노와 기타가 주고 받는 “나비”는 얼핏 들으면 토속적(土俗的)이지만 자세히 들으면 천상(天上)에서 부르는 소리로 들린다. “꽃묘”에서 잔향이 많은 코러스와 목탁 소리라든가 “새우등”에서 어쿠스틱 기타의 ‘메이저 세븐쓰 코드(maj 7)’가 만들어 내는 몽롱한 무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땅에 대해 노래하면서도 땅에서 붕 뜬 듯한 기분을 안겨 준다. 이는 전작에 비해 낮고 무거워진 베이스의 톤이 안정감을 더해주고 어쿠스틱 기타 소리도 ‘생 톤’을 벗어나도록 프로듀싱된 사운드의 덕택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의 설명이 아니라면 이런 묘한 느낌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고의로 아껴 둔 “청개구리 수희”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 본다. 말을 벗어나는 소리의 힘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이병우의 오베이션 기타를 빌려서 연주했다는 기타 소리는 ‘영롱하면서도 몽롱’하다(이게 가능한 건가?) 20020429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P.S. 1. ‘청개구리 수희’란 김두수가 대학교 시절 하숙을 하던 집의 딸에 대해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왜 있지 않은가. 부모 말을 듣지 않아서 머리카락을 싹둑 짤려서 혼자 집에 울고 있는 여자 아이의 스토리. 2. “나비야”는 젊은 시절 가야산의 한 암자에 머물면서 ’50년 된 피리’를 불 고 살았을 때 나비가 피리에 앉았을 때의 감정을 노래한 곡이다. 이 곡은 [자유혼](2002)에 “보헤미안”(3집 수록)과 함께 재녹음되어 수록된 두 곡들 중 하나다. 3. 이 음반은 1991년 CD로 재발매되었다. 그렇지만 이 음반 역시 쉽게 찾기는 곤란하다. 수록곡 1. 약속의 땅 2. 나비야 3. 새우등 4. 청개구리 수희 5. 꽃묘(시오리길 II) (이상 Side A) (이하 Side B) 6. 철탑 위에 앉은 새 7. 내 영혼은 그저 길에 핀 꽃이려니 8. 황혼 Part I, II 9. 신비주의자의 노래(원제: 한송이 꽃이 열릴 때면) 10. 우리의 소원(건전가요) 관련 글 김두수 [김두수 1집(작은 새의 꿈/귀촉도)] 리뷰 – vol.4/no.9 [20020501] 김두수 [김두수 3집(보헤미안)] 리뷰 – vol.4/no.9 [20020501] 김두수 [자유혼] 리뷰 – vol.4/no.9 [20020501] 김두수와의 인터뷰: 은둔자의 꿈과 희망 – vol.4/no.9 [20020501] 돌아온 그들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 vol.4/no.8 [20020416] 한국 포크, 그 아름다움의 세계 – vol.4/no.8 [20020416] 관련 사이트 김두수 팬사이트 http://cafe.daum.net/kimdoo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