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 Yorn – Musicforthemorningafter – Columbia, 2001 출중한 송라이터의 결함 있는 마스터피스 피트 욘(Pete Yorn)은 지난 1-2년 사이에 LA 뮤직 씬의 화제 거리로 급격히 부상한 싱어송라이터다. 헐리웃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음악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영화 [미 마이셀프 & 아이린(Me Myself & Irene)]의 음악을 담당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인기 TV 시리즈 [도슨의 청춘일기(Dawson’s Creek)] 사운드트랙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승승장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맷 딜런(Matt Dillon)이나 카메론 디아즈(Cameron Diaz) 같은 최고의 스타들을 팬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와 ‘심상치 않은’ 소문을 뿌리고 있기도 하다.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굴지의 컬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했고 여기서 발표한 자신의 데뷔 앨범을 [CMJ] 선정 ‘올해의 앨범’ 중 하나로 등극시키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남들은 평생을 기다려도 한 번 올까 말까 한 이런 행운들을 한꺼번에 누리고 있는 그를 보면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참으로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비록 본인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할리우드의 거물 에이전트로 활약중인 친형 릭 욘(Rick Yorn)의 존재가 그의 이런 성공가도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가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뮤지션도 아니고 이곳에 이주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외지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오래 활동한 음악인들 사이에서 “그 정도의 배경을 갖고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냉소가 팽배해있다는 소문이고 보면 그를 음악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다소의 주저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저를 일단 접어두고 그의 앨범 [Musicforthemorningafter]를 들어보면 그에 대한 애초의 선입견은 봄볕에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세상만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조물주도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는 배경만 잘 타고난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잘 타고난 것이다. 피트 욘은 천부적인 멜로디메이커다. 그가 써 내려가는 선율은 하나하나가 주옥같이 아름답고 비할 바 없이 유려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탁월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서 대부분의 악기 연주를 혼자 도맡아 한 그는 칼 같은 정확성과 기계적인 정교함을 통해 만능 연주자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그는 또한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지닌 좋은 가수이기도 하다. 아무리 곡이 좋고 연주가 훌륭하다 해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전달하는 그의 섬세한 보컬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이만큼의 우수성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그는 최근에야 그를 발견한 영국의 언론이 ‘2002년의 가장 쿨한 남자’로 앞 다퉈 지목할 만큼 수려한 용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싱어송라이터로서 피트 욘은 내향적이기보다는 표출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성찰적이기보다는 본능적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감정의 편린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감정적 변화를 즉각적이고 전면적으로 내보이는 스타일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감정의 동요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배들리 드론 보이(Badly Drawn Boy) 류와는 정반대의 유형에 속하는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피트 욘의 음악적 특성은 인간적 따스함과 감정적 콘트라스트를 표현하는데는 더 없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값싼 감상에 빠지거나 부담스러운 감정과잉으로 흐를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이 앨범의 공식적인 마지막 곡(히든 트랙 “A Girl Like You”가 실질적인 마지막 곡이다) “Simonize”는 그의 스타일에 내재한 이런 위험이 현실화된 사례의 하나로 꼽힐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이 앨범의 다른 곡들에서 이런 위험을 성공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앨범에서 피트 욘이 들려주는 음악은 매우 규범적이다. 그는 짐 크로체(Jim Croce)와 폴 사이먼(Paul Simon)에서 매튜 스위트(Matthew Sweet)와 이반 단도(Evan Dando)에 이르는 멜로디메이커들의 유산을 별다른 파격 없이 충실하게 계승한다. 이 때문에 그의 음악은 언뜻 듣기에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하는 음악에 흠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움이 없으면 쓰러지는’ 여타의 음악과 달리 팝은 어디까지나 예사롭고 친근한 영역에서 작동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익숙함은 팝에서는 결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적극 권장되어야 할 미덕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예사로움이 경박함으로 흐르거나 친근함이 진부함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 피트 욘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과 그램 파슨스(Gram Parsons)에게서 배운 감성적 깊이와 신실함을 자기 음악의 토대로 삼음으로써 기교적 송라이팅의 한계를 보완하고 이러한 함정을 솜씨 있게 빠져나간다. 그의 이러한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트랙은 [도슨의 청춘일기]에 삽입되었던 “Just Another”라고 할 수 있다. 기교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이 곡의 멜랑콜리한 멜로디와 낭만적인 통기타 반주 그리고 피트 욘의 비음 섞인 보컬은 1970년대 식 청춘영화 주제가의 전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피트 욘은 이러한 낡은 형식과 기교를 트렌디한 감각으로 새롭게 포장하기보다는 그 안에 존재하는 영원성의 요소들을 포착하여 전면화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새로움’이라는 것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새로움과 낡음의 개념 자체를 애초부터 배제한 그의 접근은 대단히 현명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접근은 [미 마이셀프 & 아이린]에 삽입되었던 “Strange Condition”이나 얼터너티브 컨트리 스타일의 오프닝 트랙 “Life On A Chain” 등의 곡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1970년대적 파워 팝이 시도된 “For Nancy (‘Cos It Already Is)”와 “Murray” 또는 브릿 팝의 영향이 감지되는 “June”과 “Sense” 등 다른 스타일로 분위기를 전환한 곡들에서도 그의 뛰어난 작곡솜씨는 여전한 예리함과 안정감을 유지한다. 적어도 송라이팅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앨범은 그 어떤 음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탁월함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앨범은 두말할 나위 없이 데뷔작으로서는 대단히 완성도가 높고 품질이 우수한 작품이다. 그러나 몇 가지 눈에 띄는 결함은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앨범에서 가장 귀에 거슬리는 대목은 바로 사운드다. 리버브가 많이 걸리고 두텁게 편곡된 이 앨범의 사운드는 음악의 성격에도 걸맞지 않을 뿐 더러 앨범을 금방 질리게 만든다. 애초부터 선율 위주의 팝을 시도하려 했다면 좀더 담백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또 하나의 결함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은 다른 팝 앨범들과의 차별화를 기하기 위해 시도된 갖가지 술수(?)다. 이러한 술수는 기껏해야 반타작의 성공을 거둔 듯한데, 예를 들어 여기서 도입된 피터 훅(Peter Hook) 스타일의 베이스워크는 “Life On A Chain”에서처럼 양념으로 쓰였을 경우에는 성공적이었지만 “Black”에서와 같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곡 전체에서 유리된 느낌을 준다. 드럼을 이용한 유사 브레이크 비트와 각종 효과음으로 디테일을 장식한 “Lose You”도 과시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거론되어야 할 문제는 앨범 자체의 산만함이다. 이 앨범은 크게 컨트리, 팝, 록이라는 세 가지 장르의 음악을 기본으로 해서 모두 15곡의 트랙을 담고 있다. 그런데 각 장르나 트랙들이 일관된 비전으로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제각기 논다는 인상이 짙다. 앨범의 분위기가 한 번씩 바뀔 때마다 마치 전혀 다른 음반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따라서 몇 곡을 선별해서 듣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다 보면 감정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피트 욘의 멜로디가 대단히 출중하고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에 ‘결함 있는 마스터피스’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앨범을 통해서도 그의 엄청난 재능을 감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가 앞으로 경험이라는 자산을 좀더 쌓으면 여기서 지적된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음반에 더 이상 ‘결함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될 날이 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20430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6/10 수록곡 1. Life On A Chain 2. Strange Condition 3. Just Another 4. Black 5. Lose You 6. For Nancy (‘Cos It Already Is) 7. Murray 8. June 9. Sense 10. Closet 11. On Your Side 12. Sleep Better 13. EZ 14. Simonize 관련 사이트 Pete Yorn 공식 사이트 http://www.peteyor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