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2013929-0409earofthedragonVarious Artists – Ear Of The Dragon – Fortune Four, 1996

 

 

‘아시아계 미국인 인디 록’의 영광스러웠던 시기의 기록

이 음반에 대한 평가는 청자의 태도, 혹은 듣기 전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천차만별일 것이다. 특히나 듣는 이가 한국인이거나 한국계인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우선 음악의 국적을 가리지 않는 ‘매니아’의 태도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어미니어처(aMiniature)의 직선적이고 파워 넘치는 펑크 록 “Signer’s Strut”, 얀티 아리핀(Yanti Arifin)의 예쁘장한 걸 펑크(girl punk), 버서스(Versus)의 솜씨 좋은 인디 기타 팝, 비너스 큐어스 올(Venus Cures All)의 시끄럽지만 훅이 있는 노이즈 록, 씨임(Seam)의 우울하면서도 강인한 인디 록, 돌로마이트(Dolomite)의 나른하고 ‘드리미(dreamy)’한 슈게이징, 키킹 자이언트(Kicking Giant)의 삐걱거리는 로파이 인디 록…(이 정도만 해 두자) 식으로 각 트랙의 스타일을 분류하고 감별하면서 들어나갈 것이다. 그 때의 결론은 ‘아시아계 밴드들도 이젠 제법이군’이거나 ‘너무 다양한 스타일이 중구난방으로 들어가 있군’일 것이다. 음반을 구입할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음반은 이미 구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문화 연구’의 관점에서 이 음반을 ‘연구’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은 부클릿에 나온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면면을 샅샅이 훑어보고 아시아 가운데 어느 나라인지도 유심히 보고 혹시나 출신국 사이에도 어떤 차이가 있는지 따져보려고 할 것이다. 그런 작업에 실패한다면 미국에서 아시아계들이 왜 ‘인디 록’이라는 ‘백인들’의 문화형식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지 파헤치려고 애쓸 것이다. 이것이 아시아계 이주민들 커뮤니티 내부에서 ‘세대 갈등’의 표현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이민의 역사가 꽤 되다 보니 미국 주류 사회로의 편입 양상 중 하나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어떤 쪽이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음반은 두 가지로 대별한 태도를 모두 가진 사람이 가장 좋아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한국인들 가운데는 소수 중의 소수일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인디 록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소수이거니와 한국계 미국인의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도 소수이고 따라서 양자의 공집합에 해당하는 청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가운데 앨범은 중반부를 넘어간다. 민트 온드리(Mint Aundry)의 슬로코어 크롤링(crawling), 댐빌더스(Dambuilders)의 삐걱거리는 현악기, 스캥킹 피클(Skankin’ Pickle)의 스카코어, 미스터 오니언 넘버 투(Mr. Onion #2)의 전원적 어쿠스틱 기타 소품, 제이 처치(J Church)의 후려댐 등, 앨범은 마치 1990년대 중반 컬리지 라디오를 틀어놓은 듯한 분위기를 안겨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파조(David Pajo)는 천재 음악인답게 특유의 무드를 가진 텍스처로 모든 것을 감싸주면서 앨범을 마무리한다.

‘청년 반항’이라는 록 음악 신화 뒤에는, 청년이든 반항이든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렇게 따지면 아시아계는 여성에 이어 록 음악에 대해 ‘우리도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 두 번째 세력으로 보인다. 그건 일종의 동화(assimilation)나 적응(accommodation)의 전략이다. 그렇지만 이들 중 여성은 주류 진입에 성공했지만 아시아계는 여전히 마이너, 인디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다른 인종이나 민족도 그렇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계에게는 ‘흑인 음악’이라고 불렸던 음악이, 그리고 갈색 피부의 히스패닉계에게는 ‘라틴 음악’이라는 자신들의 고유한 음악 문화가 있고 이 음악들은 모두 ‘미국 대중음악’의 큰 갈래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계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백인의 헤게모니에 동화되고 있고 이 음반 역시 아무리 ‘인디’임을 강조한다고 해도 동화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동화야말로 아프리카계의 분리(secession)나 히스패닉계의 잡종화(hybridization)와 다른 또 하나의 전략적 옵션으로, 계란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스며들어서 카운터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것일까. 만약 후자라면 이 앨범은 한 20년 뒤 [Nuggets] 시리즈 같은 가치를 가지고 다시 빛을 발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20020416 | 신현준 homey@orgio.net

7/10

P.S.
[Ear of the Dragon]이라는 앨범 제목은 마이클 치미노 감독, 올리버 스톤 각본의 1985년도 영화 [Year Of The Dragon]에서 살짝 따온 것 같다. 이 영화는 특히 중국계 미국인을 상당히 비하한 내용이었는데, 이 음반은 그런 사실을 비꼬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오공훈)

수록곡
1. Signer’s Strut – aMiniature
2. Losing My Cool – Yanti Arifin
3. Reveille – Versus
4. Tossing Pearls – Venus Cures All
5. Hey Latasha – Seam
6. Day into Night – Dolomite
7. Live for Yourself – Kicking Giant
8. Your King – Team Xiaoping
9. Secret Nothing – Cub
10. The Naked City – Cartographers
11. Smooth Control – Dambuilders
12. Heavens to Betsy – Chumley
13. Perfect World – Mint Aundry
14. I Would for You – J Church
15. It’s About Time – Azure
16. Mr. Onion #2 – Slowpoke
17. Pabu Boy – Skankin’ Pickle
18. She – Squash Blossom
19. Undiu – David Pajo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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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ar Of The Dragon] 음반에 관한 비공식 리뷰
http://www.nyu.edu/pages/pubs/realizasian/1296music.html
[Ear Of The Dragon] 투어에 관한 비공식 리뷰
http://www.tweekitten.com/tk/articles/ear.of.the.drag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