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2014033-0409versusVersus – Two Cents Plus Tax – Caroline, 1998

 

 

극단적인 것들의 평형과 짜깁기로 만든 기타 팝

아무리 ‘영미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잰 체하는 사람(anglophil indie snob)’를 자처한다고 하더라도, 버서스(Versus)의 주축인 리처드 발루유트(Richard Baluyut)와 에드 발루유트(Ed Baluyut)의 이미지를 본 다음 이들을 좋아할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인상이 마치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 같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 둘은 필리핀계 미국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이미지를 보기 전에 음악을 듣는 게 행운일 것이다(참고로 미국에서 필리핀계의 비중은 아시아계 가운데 중국계, 인도계 다음이다. 한국은 4위, 일본은 5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런 한국인의 이상한 인종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한 자리는 아니므로 여기서 그만 두기로 하자. 어쨌거나 버서스(Versus)는 ‘펑크로부터 영향받은 미국 동부의 인디 록 밴드’ 가운데 몇 손가락에 꼽히는 존재다. 이는 펑크의 공격성을 견지하면서도 멜로디와 팝적 센스를 잃지 않고 나아가 과시적이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밴드의 이름을 미션 오브 버마의 앨범 제목으로부터 차용했다는 사실도 이들의 음악적 영향력의 원천이 어디인가를 추측하게 해주는 하나의 요인이다. 물론 아시아계라서 ‘버마’라는 이름이 들어간 밴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오버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음악에 ‘분류’를 행한다면, 정통 록이라고 하기에는 경쾌한 팝의 센스가 있고, 그렇다고 관습적 팝이라고 하기에는 대안적이다. ‘인디 팝’이니 ‘기타 팝’이니 하는 한때는 신기했지만 지금은 철지난 것처럼 보이는 스타일(장르?)의 이름을 들이댈 수도 있겠다. 업템포의 발랄한 드럼 비트 위에서 기타가 징징거리고 베이스가 둥둥거리는 “Atomic Kid”, “Dumb Fun”, “Underground” 같은 곡이 이들의 스타일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보컬을 맡은 리처드 발루유트는 입을 크게 벌려 모음을 적확하게 발음하고 그와 더불어 폰테인 툽스(Fontaine Toops)는 때로는 각각 혼자서, 때로는 서로 교대해 가면서, 때로는 대위법을 구사하면서 ‘프랜시스 블랙과 킴 디일’ 혹은 ‘써스턴 무어와 킴 고든’ 같은 트윈 보컬(twin vocal)을 맡는다.

그래서 가사의 내용이 그럭저럭 들려 오므로 메시지의 전달을 무시하는 1990년대 중후반 영미 인디 씬의 특정 경향과는 거리를 두는 것 같다. 보컬과 인스트루멘털 모두를 중시한다든가, 사운드는 밝고 명랑한 반면 멜로디나 가사는 어둡고 침울하다는 점도 이들을 표현할 수 있는 문구일 것이다.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평형’을 이룬다는 점이 이들의 매력이자 장점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특징은 곡별로 차이가 있다. “Morning Glory”와 “Crazy-Maker(I’m Still In Love With Your Eyes)” 등은 앞서 ‘전형’이라고 말한 스타일과는 다르게 느리고 어둡고 단조롭다. 특히 “Morning Glory”의 곡조나 화성이나 리듬 등이 예측을 번번이 깨면서 진행되어 신선한 느낌을 안겨 준다. 이는 버서스의 음악의 강점이 ‘다양성’이라는 하나의 증거인데, 이런 다양성은 컨트리 스타일의 기타 사운드를 도입한 “Spastic Reaction”, 일렉트로닉 음향을 도입한 “Jack And Jill”, 리버브(잔향)와 딜레이(지연)의 효과를 사용한 복잡한 구성을 가진 “Mouth Of Heaven”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런 점들은 발루유트가 왜 ‘짜깁기의 명수’라고 불리는지를 말해 준다.

혹시나 이들의 다른 앨범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앨범이 ‘팝적’이라고 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듣기 좋은 사운드는 억지로 싫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 속할 확률이 높다. 문제는 그것보다는 이 앨범이 나올 무렵부터 인디 록 씬 전체가 답보에 빠져 있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일 것이다. 20020416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수록곡
1. Atomic Kid
2. Dumb Fun
3. Never Be Ok
4. Morning Glory
5. Radar Follows You
6. Underground
7. Spastic Reaction
8. Crazy-Maker (I’m Still In Love With Your Eyes)
9. Jack And Jill
10. Mouth Of Heaven

관련 글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록의 활로 찾기: ‘Directions in Sound’ 공연 후기 – vol.4/no.9 [20020501]
Various Artists [Ear Of The Dragon] 리뷰 – vol.4/no.9 [20020501]
aMiniature [Murk Time Cruiser] 리뷰 – vol.4/no.9 [20020501]
Aerial M [Aerial M] 리뷰 – vol.4/no.9 [20020501]
Mia Doi Todd [Zeroone] 리뷰 – vol.4/no.9 [20020501]
Venus Cures All, [Paradise By The Highway] 리뷰 – vol.4/no.9 [20020501]
eE, [Ramadan] 리뷰 – vol.4/no.9 [20020501]
Korea Girl, [Korea Girl] 리뷰 – vol.4/no.9 [20020501]
아시아계 미국인 인디 록 씬에 관하여 – vol.2/no.10 [20000516]
한 ‘코리안 아메리칸’ 경계인의 예술과 삶: 심(Seam)의 박수영 – vol.1/no.6 [19991101]

관련 사이트
Versus 사이트
http://www.versus-ny.co.uk
레이블 Merge 사이트의 Versus 바이오그래피
http://www.mergerecords.com/bands/versus/bio.html
[Ear Of The Dragon] 음반에 관한 비공식 리뷰
http://www.nyu.edu/pages/pubs/realizasian/1296music.html
[Ear Of The Dragon] 투어에 관한 비공식 리뷰
http://www.tweekitten.com/tk/articles/ear.of.the.drag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