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양희은 1991 – 킹 레코드, 1991 잠시 뒤돌아 보고 다시 걷는 길 어른이 되다는 것에 강박관념을 가진 피터팬 증후군의 소년 소녀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진행되는 성인화에 공포심을 가끔 느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몇 살이 되는 생일날 죽겠다고 생각하거나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를 읽으며 흠모한 기억은 없어도 “내 나이 마흔 살”을 머리 속에 떠올린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상상만은 아니다. 40대가 되면 이제는 질주를 멈추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볼 법도 한데, 데뷔 20주년에 내놓은 이 앨범에 드러낸 양희은의 감성은 결코 회고에 머무르지 않는다. 1988년 앨범 [이별 이후 / 숲(양희은의 새 노래모음)]을 함께 작업했던 이병우는 이 앨범 [1991]에서 모든 수록곡을 작곡했으며, 모든 곡의 반주를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만 채워나간다. 아마도 이 앨범은 1973년 신중현과 함께 한 앨범 [당신의 꿈] 이후 가장 모험적인 앨범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양희은의 중/후반기의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될 만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작곡을 하지 않는 포크 가수’라는 흠을 잡고 보면, 앨범 전체가 이병우의 작품집처럼 보일 수도 있다. 즉 양희은이 이병우의 작품집에 목소리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희은이 20년 동안 쌓아올린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아우라는 이 앨범이 양희은의 앨범이라는 것을 다시 각인시키고,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양희은이 시 낭송을 하는 동안 감정을 고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이병우의 연주는 뒤로 물러서는 겸손을 보인다. 양희은은 이 앨범에서 모든 수록곡을 직접 작사하였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과 ’40대’라는 연령의 시간 축이 앨범을 관통하는 큰 주제이고, 수록곡들은 하나의 모노 드라마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이전에 양희은의 작사를 온전히 감상할 기회가 없었지만, 담백하고 소박한 가사들은 이 앨범을 통해 이루어낸 새로운 성취이다. 앨범의 대표곡인 “가을 아침” 의 가사 중 “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 둥기둥기 기타치는 그 아들의 한가함”에서 드러나는 대구와 효과적인 의성어의 사용, “심심하면 쳐대는 괘종시계 종소리”의 묘사는 입가에 미소가 새겨지는 부분이다. 앞서, ‘연주자로 겸손히 뒤로 물러난 이병우’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 앨범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는 기체 같이 잡히지 않는 멜로디가 채우고 있다. 양희은의 노랫말을 정밀 묘사 하듯이 ‘완벽하게’ 기타 선율로 표현하고 있다는 이외에 다른 찬사를 할 수 없음은 나의 부족한 표현력에 기인함을 양해 바란다. 수록곡 중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1990년대 후반 모 TV 드라마에 삽입, 히트하면서 이 앨범은 LG미디어에서 재발매되고(현재는 신나라 레코드에서 발매) 다시금 소폭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 앨범이 단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수록된 앨범이라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분이 씁쓸하기도 하다. 20020428 | 이정남 yaaah@dreamwiz.com 8/10 수록곡 1. 그 해 겨울 2. 그리운 친구에게 3. 가을 아침 4. 저 바람은 어디서? 5. 11월 그 저녁에 6. 나무와 아이 7.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8. 잠들기 바로 전 관련 글 어느 30년산 생물과 관련된 양희은의 음악들 – vol.4/no.9 [20020501] 양희은의 음악 인생 30주년에 부쳐 : 양희은 공연 리뷰 – vol.4/no.9 [20020501] 양희은 [아침이슬(양희은이 처음 부른 노래들)] 리뷰 – vol.4/no.9 [20020501] 돌아온 그들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 vol.4/no.8 [20020416] 한국 포크, 그 아름다움의 세계 – vol.4/no.8 [20020416] 한국 포크 음악 발전에 있어서 정태춘의 업적 – vol.4/no.9 [20020501] 관련 사이트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노래: 김민기, 밥딜런, 양희은, 존바에즈 등 포크 음악을 소개 http://bio.pknu.ac.kr/~kim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