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2112035-0409venuscuresallVenus Cures All – Paradise By The Highway – Whiskey Sour, 1996

 

 

‘아시아계 여성’이 캐나다에서 인디 록과 만날 때…

비너스 큐어스 올(Venus Cures All)은 베이스와 보컬을 맡은 샐리 리(Sally Lee: 한국명 이선주)가 멤버로 있던 토론토 출신의 인디 록 밴드다. 이 밴드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Ear Of The Dragon]에 수록된 “Tossing Pearls”를 연주한 밴드의 이름을 유심히 본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 수는 [Ear Of The Dragon] 앨범이 아시아계 인디 록 밴드들의 곡을 모은 컴필레이션이라는 정보를 아는 사람보다도 적을 것이다. 19개나 되는 밴드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는 분명 쉽지 않을 것이므로. 게다가 이 곡은 ‘소음 가득하면서도 부드럽고 멜로딕한’ 스타일에 속한다. 혹시나 캐나다나 미국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컬 모던 록 라디오’에서 한번쯤 들어본 곡일지도 모르겠다. 깊은 인상을 받고 ‘도대체 누구 노래일까’라고 궁금해하든, 아니면 한번 듣고 지나쳐 버리든 그것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점은 이들이 발매한 유일한 CD인 이 음반 전체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단, 이 음반의 사운드는 “Shipwrecks+The Underwater Room”나 “Paradise By The Highway”같은 곡에서 쉽게 느낄 수 있듯이 매우 ‘노이지’하고 ‘그런지’하고 ‘극단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들의 이전 레코딩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에 있는 것이지 특별히 단절감 같은 정서와 연관되지 않는다. 밴드의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페미니즘’적인 인상 역시 노이즈 가득한 사운드에서 느낄 수 있는 섹슈얼리티에 관한 일반적 뉘앙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물론 “Francheska’s Sexual Whirlpool”이라는 인스트루멘털 넘버에서 조금 명시적인 표현을 발견할 수는 있다.

미확인 정보에 의하면 이 앨범의 수록곡들 대부분은 펑크 커버곡이라고 한다. 문제는 원곡이 무엇인지를 내가 알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펑크 히트곡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핑계로 자세한 설명은 나중으로 넘기고자 한다. 굳이 이런 정보를 모르더라도 음반에 수록된 음악의 전체적인 인상은 1990년대 중반 북아메리카산(産) 인디 록 중에서도 ‘애티튜드 강한’ 유형에 속하는 것 같다. 보컬의 선명한 훅(hook), 귀에 쏙 들어오는 리프(riff), 완급의 능란한 조절, 기교 넘치는 드러밍 등 록 음악에 남아있는 모든 ‘대중적’ 요소들을 가급적 절제하는 음악이라는 부연이 지금도 필요할지는 모르겠다. 당시 시점을 고려해서 말한다면 펑크 록이 갈 수 있는 길들 중 그린 데이(Green Day)나 오프스프링(The Offspring)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거창하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죽어 가는 록의 악취를 표현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말도 ‘록은 죽었다’는 말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만 흥미로운 표현이겠지만.

하지만 이번 호의 주제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우리의 ‘호기심’은 이런 음악을 ‘아시아계 여성’이 연주했다는 점일 것이다. 왜? 어떻게? 여기에 대해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북아메리카 대륙의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어느 도시의 허름한 클럽에서 연주하는 인디 밴드들 중에 아시아계를 발견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설명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아무리 ‘인디’라고 하더라도 아시아계의 정체성이 아메리카에 동화되어 간다는 아쉬움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은 과연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과의 동화를 ‘부러워하면서 사는 주제’인 ‘우리(한국에 사는 한국인)’가 할 자격이 있을까. 어쨌든, 북아메리카에서 ‘소수민족’으로 성장한 20대 여성이 자기표현 수단을 ‘자국’의 인디 록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은 한국이라는 변방에서 성장한 사람이 ‘외국’의 인디 록에서 찾는 것보다는 덜 신기한 일이긴 하다. 20020416 | 신현준 homey@orgio.net

7/10

p.s
혹시나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위해 말하면 샐리 리는 독립영화감독 헬렌 리(Helen Lee)와 자매지간이다(대표작으로는 [먹이(Prey)], [우양의 간계(The Art Of Woo)]등이 있다). 몇 년 간 한국에 체류하다가 캐나다로 돌아간 샐리 리는 최근 비너스 큐어스 올에서 함께 연주했던 새러 몽고메리(Sara Montgomery: 기타, 보컬)와 함께 매그네스타스(the Magnetars)라는 밴드에 합류했다. 새로운 밴드의 음악은 과거처럼 ‘버거운’ 스타일은 아니라고 한다. 새러 몽고메리는 비너스 큐어스 올 외에도 치킨 밀크(Chicken Milk), 코오퍼레이터스(Cooperators) 등의 밴드를 거친, 토론토 인디 씬에서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수록곡
1. Heaven & Earth
2. This World Then The Fireworks
3. Neil’s Tongue
4. Shipwrecks+The Underwater Room
5. Universal Head
6. 10.9.72
7. Out And About
8. Watching Big Bird Fly
9. Slept Thru A Crash Landing
10. Francheska’s Sexual Whirlpool
11. Paradise By The High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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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ar Of The Dragon] 음반에 관한 비공식 리뷰
http://www.nyu.edu/pages/pubs/realizasian/1296music.html
[Ear Of The Dragon] 투어에 관한 비공식 리뷰
http://www.tweekitten.com/tk/articles/ear.of.the.drag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