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R*D – In Search Of… – Virgin, 2001 일급 프로듀서들의 일급 블랙 록 N*E*R*D는 넵튠스(Neptunes)다. 버지니아 출신 패럴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 채드 휴고(Chad Hugo) 듀오로 구성된 프로덕션 팀 넵튠스의 지난 3년여에 걸친 성공담은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동향의 ‘비트 마스터’ 팀발랜드(Timbaland)와 밴드를 했었고 1990년대 중반에는 뉴 잭 소울의 제왕 테드 라일리(Ted Riley)의 비호 하에 사운드 작법을 배웠다는 과거 이력은, 그들의 성공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입증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를 염두에 두더라도, 올더티 바스타드(Ol’Dirty Bastard)부터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 심지어 비니 맨(Beenie Man)에 이르는 그들이 지금껏 프로듀스해준 뮤지션들의 광범위한 리스트는 여전히 입을 벌어지게 한다. 더욱이 그들이 건드리는 곡은 모두 상업 라디오와 MTV를 누리는 히트곡이 된다는 법칙 아닌 법칙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들 프로덕션의 비범함은 장르 파괴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사운드를 상업적 팝 음악의 코드 안에 철저히 맴돌게 하는 재주에 있다. 가령 그들이 프로듀스했던 제이 지(Jay-Z)의 “I Just Wanna Love U”나 미스티칼(Mystical)의 “Shake Ya Ass”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아우라를 미래주의적 비트로 덧칠한 것이라면, 루다크리스(Ludacris)의 “Southern Hospitality”는 테크노와 힙합을 결합한 뒤 아예 뭉개고 파괴해버린 곡이다. 물론 듣고 나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강력한 훅(hook)을 어느 곡에나 교묘하게 내장한다. 이 곡 저 곡 찾아 듣기 귀찮다면, 그들의 모든 프로듀스 방법론이 농축된 켈리스의 [Kaleidoscope](1999)를 들어 보라. 겨우 2년 사이에 넵튠스가 닥터 드레(Dr. Dre), 팀발랜드, 스위즈 비트(Swizz Beatz)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의 흑인 음악 프로듀서가 된 사정에 대해 최소한의 수긍은 할 수 있으리라. 패럴 윌리엄스와 채드 휴고가 샤이(Shay)를 끌어들여 N*E*R*D(“No One Ever Really Dies”의 두문자어)라는 그룹명으로 제작한 앨범 [In Search Of…]는 얼핏 팀발랜드와 마구의 첫 공동 작품인 [Welcome To Our World](1997)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당대 최고 프로듀서의 데뷔라는 점을 제외하면 두 앨범간에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싱코페이션 비트 위로 “f**k all”만 외쳐대다가 자신의 탁월한 작곡 능력을 스스로 사장시킨 팀발랜드와 달리, N*E*R*D는 가사 속에 거리 문화와 정치를 자유롭게 교차시키고 이를 허무주의로 증발시키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사회 의식과 개인주의 사이에 방황하다 결국 천상을 떠돌았던 1970년대 초반의 마빈 게이(Marvin Gaye)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N*E*R*D 사이에 30년을 극복하는 묘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과격하지만 결코 전망은 찾을 수 없는 그들의 메시지는 장르 파괴적인 사운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단단한 힙합 비트부터 사이키델릭 팝과 클래식 록, 뉴 웨이브에 이르는 모든 것이 [In Search Of…]의 주재료들인데, 그 결과물은 한마디로 21세기를 위한 ‘블랙 록(black rock)’ 혹은 ‘훵크 록(funk rock)’이다(록 음악에 대한 그들의 남다른 애정은 패럴 윌리엄스가 앨범 뒤 표지에서 AC/DC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사실 그들이 이 앨범을 지난 여름에 유럽에 먼저 내놓을 때만 해도 사정은 자못 달랐다. 물론 유럽반이 정교한 드럼 프로그래밍과 거친 신쓰-베이스 리프를 통해 록 음악의 감성을 드러내긴 했지만, N*E*R*D는 스스로 이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스튜디오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무려 반 년 후에 미국 시장에 나온 [In Search Of…]는 트랙의 순서만 뒤바뀐 게 아니라, 거의 모든 곡에 라이브로 녹음된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의 소리가 더해져서, 보다 과격한 록 사운드로 거듭났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Lapdance”는 그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스트리퍼와 정치인의 이미지가 중복, 교차하는 독특한 메시지의 이 곡은 애초에 경쾌한 드럼 머신 비트와 찔러대는 신쓰 리프가 긴장을 고조하는 곡이었지만, 라이브 드럼이 가세하고 키보드의 멜로디가 전방에 포진한 뒤 메탈 기타가 신쓰 리프를 대체하면서, 중량감과 역동성을 겸비한 록 트랙으로 변신했다. 경쾌한 드럼 프로그래밍으로 록의 느낌을 살렸던 두 번째 곡 “Things Are Getting Better”는 크리스천 트윅(Christian Twigg)과 에릭 파셋(Eric Fawcett)의 베이스와 드럼 연주가 가미되면서 오히려 올드 스쿨 힙합의 향취가 녹아드는 독특한 랩-록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라이브 느낌의 록 사운드를 바탕으로 랩을 내뱉는다는 큰 골격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N*E*R*D의 ‘블랙 록’과 백인 랩-메탈 밴드 사운드간의 차이는 여기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들 트랙 외에도, [In Search Of…]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곡들로 가득한 앨범이다. 끊어 치는 키보드와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반복적인 보컬의 “Brain”이 1960년대 사이키델리아의 세계로 청자들을 안내한다면, 곡 중간의 기습적 변조가 독특한 “Provider”는 에버래스트(Everlast)를 연상케 하는 일종의 ‘비보이 블루스’라 할 수 있다. 반복되는 비트 위로 역시 되풀이되는 켈리스의 보컬이 긴박함을 조성하는 “Truth Or Dare”를 정점으로 앨범의 후반부는 다소 힘을 뺀 다양한 메뉴의 트랙들이 이어진다. 요즘 한참 밀고 있는 랩-록 스타일의 “Rock Star”를 제외하면, 사납게 몰아치기를 가능한 자제하고 있다. 아이즐리 브라더스(Isley Brothers)를 연상케 하는 러브 송 “Run To The Sun”, 엇박의 키보드와 리듬 기타 위에 달콤한 보컬을 끼얹은 “Baby Doll”, 느리면서도 날렵한 훵크 “Am I High”, 팔세토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 현악이 강조되는 슬픈 발라드 “Bobby James”, 심지어 비틀즈를 떠올리게 하는 “Stay Together”까지, 패럴 윌리엄스와 채드 휴고는 블랙 록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실로 전방위적인 사운드 스케이프를 뽐낸다. N*E*R*D 혹은 넵튠스와 주류 시장의 다른 R&B/랩 프로듀서들 간의 차이는 분명하다. 덕분에,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싱코페이션 비트와 까메오들의 속사포 같은 랩 혹은 매끄러운 R&B 보컬을 잔뜩 기대한 청자들에겐 이 앨범이 실망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랩인지 노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패럴 윌리엄스의 어수룩한 보컬은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렇다고 [In Search Of…]를 기존의 랩-록 범주에 갈무리해 집어넣을 수도 없다. 메탈 기타의 리프 위에 단순히 래핑과 스크래칭을 주입하는 백인 랩-록 밴드들과 달리, 그들이 록과 힙합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은 훨씬 복잡하고 자유로우며 한편으로 흑인 음악 특유의 감성 또한 여전히 고수하기 때문이다. 장르 중심적 관점에서 본다면, N*E*R*D는 필연적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이단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절충주의 미학이 제공하는 즐거움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면, [In Search Of…]는 참으로 매력적인 음반임에 틀림없다. 단순히 ‘더티 사우쓰(Dirty South)’ 헤게모니 강화의 차원을 넘어, 이 앨범은 오히려 팀발랜드 아성에 대한 도전이자 나아가 기존 R&B/랩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는 일종의 도발에 가깝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넵튠스는 이 앨범을 발매한 후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가 버렸다. 산적해 있는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비록 본인들은 프로듀서 일이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In Search Of…]와 같은 외도는 언제든 환영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간절히 원한다. 물론 N*E*R*D가 일회성 프로젝트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도 활동을 이어갈 지는 아무래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20020412 | 양재영 cocto@hotmail.com 9/10 수록곡 1. Lapdance (feat. Lee Harvey & Vita) 2. Things Are Getting Better 3. Brain 4. Provider 5. Truth Or Dare (feat. Kelis & Pusha) 6. Tape You 7. Run To The Sun 8. Baby Doll 9. Am I High (feat. Malice) 10. Rock Star 11. Bobby James 12. Stay Together (미국반 기준) 관련 글 Kelis [Kaleidoscope] 리뷰 – vol.4/no.7 [20020401] 관련 사이트 N*E*R*D 공식 사이트 http://www.n-e-r-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