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co – Yankee Hotel Foxtrot – Nonesuch, 2002 윌코식 ‘소닉 어드벤처(Sonic Adventure)’ 1990년대 초반 얼트 컨트리(alt. country)라는 장르가 주목받을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엉클 튜펠로(Uncle Tupelo)의 공이었다. 엉클 튜펠로의 두 핵심멤버였던 제이 파라(Jay Farrar)와 제트 트위디(Jeff Tweedy)가 선 볼트(Son Volt)와 월코(Wilco)로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비평가들은 일제히 제이 파라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선 볼트가 자기 복제만을 거듭하며 서서히 비평적 지지를 잃어갔던 것에 비해 윌코는 앨범을 낼 때마다 장르의 영역을 넓혀 가며 비평적 지지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상업적인 성공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윌코는 두 번째 앨범 [Being There]에서 컨트리적인 자신들만의 스타일에 인디 록을 성공적으로 접목시켰고 세 번째 [Summer Teeth]에선 전통적 스타일은 뿌리에 묻어둔 채 표면적으로 밝고 듣기 좋은 인디 팝을 들려준 바 있다. 이번에 내놓은 네 번째 앨범 [Yankee Hotel Foxtrot]에서 그들은 다시 한번 도약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속사였던 리프라이즈(Reprise) 레이블로부터 곡들이 라디오 친화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앨범 발매를 거부당했고 음악의 한 축을 담당했던 멤버 제이 베넷(Jay Bennett)은 음악적 취향 차이를 이유로 밴드를 탈퇴하게 된다. 새로운 레이블인 논서치(Nonesuch)에 둥지를 틀고 원래의 발매 예정일로부터 거의 6개월이나 지난 4월 23일에 정식 발매되기까지 월코는 홍보할 음반도 없이 게다가 어떤 레이블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 투어를 강행했고 이미 발매됐어야 했던 새 앨범은 공식 홈페이지인 wilcoworld.net을 통해 음원들을 스트리밍(Streaming)했다. 인터넷에 앨범 전체의 음원을 공식적으로 공개한 것은 윌코서도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P2P 서비스를 통해 몇몇 감상자들은 앨범을 들을 수 있었고 새 앨범의 발매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팬들을 위한 그들의 선택은 되도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원을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레이블로부터의 앨범 발매 거부와 뒤따른 결별 소식과 맞물려 오히려 새 앨범의 광고효과로 작용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음원이 공개된 사이트는 2001년 9월 한 달간 거의 20만 명의 방문객이 몰려들었다. 이것은 메이저 레이블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선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앨범의 제목인 ‘Yankee Hotel Foxtrot’은 알파벳 ‘Y’, ‘H’, ‘F’를 단파방송에서 쓰이는 음성기호(Phonetic Alphabet)로 읽어낸 것이다. 초기 군사적으로 쓰였던 무전기에서 ‘B’ 와 ‘D’ 같은 알파벳은 그 본래의 발음만으로는 구별해내기가 힘이 들었고 그러한 통신상의 오역을 피하기 위해 각 알파벳은 그에 대응하는 단어들이 주어졌다. 즉 ‘A’ 는 알파(Alpha), ‘B’ 는 브라보(Bravo), ‘C’ 는 찰리(Charlie), ‘D’ 는 델타(Delta)…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실 제프 트위디가 전작 [Summer Teeth]를 홍보하며 가졌던 인터뷰에서 보여 주었던 단파방송에 관한 흥미어린 발언들을 떠올린다면 새 앨범의 제목이 그리 생소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Yankee Hotel Foxtrot]은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멤버)의 영향을 느낄 수 있었던 [Summer Teeth]와는 또 다른 의미의 팝 음반이다. 이번에도 잘 만들어진 팝송들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지만 앨범의 믹싱(Mixing)을 맡은 시카고 씬의 실험적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짐 오루크(Jim O’Rourke)에 의해 세심하게 의도되어진 사운드의 층(피드백(Feedback), 일렉트로닉한 효과음들)이 전작과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앨범의 첫 곡 “I Am Trying To Break Your Heart”는 여러모로 2집 [Being There]의 오프닝 트랙이었던 “Misunderstood”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Misunderstood”의 도입부가 에너지 넘치는 노이즈들로 이루어졌던 것에 비해 이 곡은 잘 만들어진 설계도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같이 느껴진다. 틱틱거리는 드럼과 피드백으로 시작되는 초반부는 자명종 시계의 알람소리와 함께 정제된 기타소리로 서서히 대체되어진 간다. 제프 트위디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깊이 있는 울림을 주고 피아노, 알람소리, 여러 효과음들은 곡 사이사이 쉴새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반복한다. 이 곡은 그들이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리는 첫 표현이자 이 앨범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징표이다. 하지만 윌코는 그것이 결코 팝송과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음을, 이어지는 “Kamera”, “War On War”, “Heavy Metal Drummer” 같은 곡들에서 보여준다. 이 곡들은 심플한 멜로디의 팝송들이지만 일렉트로닉한 요소들이 이질적이지 않게 효과적으로 곡들을 감싸주고 있으며, 이런 점은 이 앨범의 훌륭함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앨범전체를 유기적으로 묶어주고 있는 탁월한 곡들의 순서배치인데, 이는 앨범의 완급을 조절하고 또한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 이렇게 응축된 에너지는 “Poor Places”의 후반부에서 격렬하게 폭발한다. 무덤덤하게 “Yankee Hotel Foxtrot”을 반복하는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와 서서히 증폭되는 노이즈와 함께. 귓가에서 노이즈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 전에 시작되는 앨범의 마지막 곡 “Reservations”는 앨범 내에서 가장 감성적인 트랙이며 동시에 청자의 감정을 추스려주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마지막 곡이 끝난 후 몇 분간 지속되는 노이즈는 ‘윌코식 소닉 어드벤쳐(Sonic Adventure)’의 종점을 알리는 신호이며 또한 앨범 도입부에 대한 의도된 화답일 것이다. 이제 다시 앨범의 제목으로 돌아와 보자. 앨범의 커버 이미지는 고층 빌딩이 여기저기 들어선 현대 사회에서 의사소통의 힘듦을 표현한 듯하다. 그런 점에서 윌코는 자신들의 새로운 음악적 방향이 잘못 받아들여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통신상의 오역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파방송의 음성기호를 빌어 자신들의 생각을, 또 음악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 또박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앨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단지 ‘Yankee’, ‘Hotel’, ‘Foxtrot’ 바로 그것이라고 말이다. 20020422 | 오유승 seam@nownuri.net 9/10 * 덧붙이는 글 두 가지 1. 2002년 4월 23일은 아마도 윌코의 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이 날은 윌코의 새 앨범이 발매되는 날이자 제프 트위디가 담당한 [Chelsea Walls] 사운드트랙의 발매일이며 또한 윌코를 탈퇴한 제이 베넷의 앨범이 발매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2. 타임워너(Time Warner)의 자회사인 ‘리프라이즈’와 결별한 뒤 계약한 새 레이블이 타임워너의 또 다른 자회사인 ‘논서치’라는 것은 꽤 아이러니해 보인다. 결국 타임워너는 한 앨범에 두 번의 투자를 한 셈이니 말이다. 수록곡 1. I Am Trying To Break Your Heart 2. Kamera 3. Radio Cure 4. War On War 5. Jesus, etc. 6. Ashes Of American Flags 7. Heavy Metal Drummer 8. I’m The Man Who Loves You 9. Pot Kettle Black 10. Poor Places 11. Reservations 관련 사이트 Wilco 공식 사이트 http://www.wilcoworld.net (또는 http://www.wilcoweb.com) 다큐멘터리 영화 [I’m Trying to Break Your Heart] 사이트 : 앨범 [Yankee Hotel Foxtrot]의 제작과정이 담겨 있다. http://www.wilcofil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