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1년 7월 25일
장소: 서교동 Cafe The Sol
질문: 신현준, 이수연
정리: 이수연

 

“그냥 그게 아름답게 보이는 거”

이수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를 생각하면 한강, 콘크리트, 아버지 옷장에서 꺼낸 옷, 마구 자란 풀, 등 뒤에 꽂은 소나무 가지, 장발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스타일이 중요한 밴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선 키치라든가 70~ 80년대에 대한 향수라는 등 여러 해석이 있지만, 어쨌든 그런 요소들을 통해서 무언가 얘기를 건넨다는 느낌이다. 상징성이 강한 스타일 하나를 툭 던지고 거기서 나오는 느낌을 통해 소통하는 것 같다. 뭐라고 설명을 늘어놓기 보다는.
조웅: 아버지 옷장에서 꺼낸 옷을 입는 건 맞다. 마구 자란 것도 사실이고. 장발도 뭐…. 그렇지만 잘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되게 객관적인 편이다. 모호한 가사를 노래하지도 않고. 뭔가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엔 일관성이 있나 보다. 여러 가지 요소들 사이에서 상통하는 일관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게 어떤 사람들은 어떤 성격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일관성 자체는 원하는 바다. 성격적인 문제기도 한데, 어렸을 때 늘 엄마한테 “아빠가 일관적이지 않아서 힘들어.”라고 얘기했었다. 밴드 활동을 하고 이 무대 저 무대에 서고 다양한 모습이 비춰지지만, 스스로 일관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바가 있다. 그건 억지로 뭘 만든다기보다는 스스로 알고 있는 나의 자연스러움에 가까운 거다.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촌스러울지는 몰라도 우리라는 인간이 밴드 자체와 같기를 바라는 맘도 있고. 뭘 만들어서 하는 게 멋지다는 건 안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냥 우리 같은 음악을 하고 싶은 거다.

이수연: 아, 그러니까 내가 던진 질문은 이미지를 꾸민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인위적은 느낌은 아니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이 층층이 쌓여서 만들어진 거라면, 그 지난 시간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는 게 어떤 일관된 스타일로 느껴진다. 어떤 인터뷰에서 각국의 민요들을 좋아한다고 언급한 걸 봤다. “그 지역의 오랜 시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로부터 전승된 노래들. 그러한 감정들이 어느 한 지점으로 축적된 감성, 이를테면 ‘Origin(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성향이 스타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새 앨범에 수록된 곡 중 하나도, 제목이 ‘장단’이다. 국악에도 관심이 있는 건가?
조웅: 관심이 있다. 민요나 집시 음악을 듣는다고 했을 때, 역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게 당장 테이블 위에서 재료들을 모아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전해지는 것 같다. 그건 케케묵은, 점층적으로 쌓이고 쌓인 시간이나 스토리가 담겨서 만들어진 걸 거다. 그런 것들이 갖는 큰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그건 당장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요를 좋아한다는 건, 취향이라든가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해,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아름다운 게 보이는 거다. 뭐 천재가 뚝딱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의 것을 담기에는 그냥 그만큼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던 걸 테고. 그런 것들이 되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국악의 리듬을 이용하긴 했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른다. 사실 그건 스스로를 보는 건데. 우리는 이제 30년 조금 넘게 살았을 뿐이고 그만한 사이즈를 갖고 있질 못하다. 그렇지만 그 리듬이라는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구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밌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고,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게 재밌을까에 대해 궁리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국악이나 장단 같은 엉뚱한 요소를 들이대기도 하는 거다. 근데 그걸 또 막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자연스럽기를 바란다. 그냥 어떤 노래구나, 어떤 리듬을 가진 재밌는 노래구나, 이렇게.

이수연: 특별히 이 노래를 만들 때 영감을 준 게 있나? 아니면 그냥 리듬을 만들다보니까 나온 건가?
조웅: 멜로디를 먼저 만들었다. 원래는 평이한 노래였다. 리듬을 붙어야 했는데, 밴드에 기타가 하나 있다 보니까 백킹을 해야 된다. 그냥 쭉 끌고 가는 리듬의 스트로크를 만들어야 됐는데, 그게 대개는 매우 한정적이다. 고고라든가 셔플이라든가 몇 가지가 있는데, 답답한 바가 있었다. 스트로크라도 좀 다르게 해볼까 하다가 된 거다. 그러고는 비트를 거기에 맞게 만들고. 그게 초반에 좀 국악 같이 들렸는데, 이걸 잘 살려서 보통의 팝음악처럼 만들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다음에 가사가 나왔다. 아마 그때가 전전 여자친구랑 헤어질 때였는데…. 연인이라는 게 참, 처음엔 좋아서 만나지만 지내다 보면 뭔가 휑하고. 그 사람이 날 쓸쓸하게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우리 둘이 이 사회에서 쓸쓸하구나 싶은 거다. 누군가랑 딱 손을 잡아도,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경우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쓸쓸함으로 끝나고.

이수연: 그러고 보면 음악에서 그런 정서가 자주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 있을 때, 갑자기 탁 제3자의 입장에서 자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한국말’도 그렇고, ‘안타까운 로맨스’도 그렇고, ‘장단’ 역시 마찬가지고.
조웅: 형이상학을 배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웃음) 농담이다. 도망친 거지 뭐. 자기한테도 몰입을 못하고 자기를 쳐다보고 자꾸. 그건 사실 어릴 때부터 있던 정서다. 현실에서 자꾸 도망치니까 자기를 쳐다보게 되는 그런 게 습관이다. 자기 자신으로 잘살고 역경도 이겨내고 그러는 드라마 주인공 타입은 아닌 거지. 근데 노래를 만들 때 그런 게 편리할 때도 있다. 난 이래, 이런 얘기를 하려면 이거 저거 잴 것도 많고 한데, 밖에서 봤을 때 내가 이렇더라고 하면 덜 부담스럽고.

 

“트로트가 정말 멋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수연: 트로트에 대한 관심도 있나? ‘남쪽으로 간다’라는 곡은 트로트의 클리셰가 그대로 담겨 있는데.
조웅: 트로트의 역사, 이런 건 잘 모른다. 엔카에서 파생된 거냐, 한국에 원래 있었던 거냐, 아니면 이게 엔카로 간 거냐 말도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해선 개념이 없지만, 트로트 스케일(음계)이나 그 스케일에서 나오는 정서가 있지 않나. 어렸을 때 드라마 같은 걸 보면, 탄광촌이나 공단 같은 어려운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 술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면서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그런 것에 대한 아련함이 있다. 내가 직접 겪은 건 아니지만 어린 나이였는데도 뭔가 기억에 남는 정서가 있었다. 아마 그 곡 같은 경우는 비슷한 정서를 트로트로 표현한 것 같다. 이게 뭐 음악적으로 트로트를 도입해봤다, 이런 건 아니고. 그 정서,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포맷을 재밌게 써 본거다.

이수연: 태진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던데?
조웅: 뭐 사실이다. 트로트가 정말 멋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선 이건 아니다 싶은 곡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뭐 영향력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이런 곡들이 되게 예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곡을 만들 때 더 신경을 썼다. 가사도 좀 더 풍미 있게 써 보고.

이수연: ‘남쪽으로 간다’라는 제목에서 남쪽이 뜻하는 건 뭔가?
조웅: 통영에 여행 갔다가 만든 노래다. 배를 타고 매물도라는 섬에 갔는데, 섬 꼭대기에 올라갔더니 바람이 불고, 새로운 연애를 하고 있지만 그 전 애인이 잊히지 않고 그랬다. 통기타 아르페지오를 퉁기거나, 바에서 싱글 몰트 마시는 그런 느낌으로 갈 수도 있지만 내 자연스러운 정서에는 트로트가 더 맞았다. 병학이 불러내서 파전집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힘들다 뭐다 하던 시절의 얘기들이고. 실제로 젓가락 두들기고 노래를 하다가 가게 아주머니가 ‘여기 그런 데 아니야!’라고 말을 하시기도 했다. (웃음) 안 그럴게요, 하고 다시 술을 먹는데 또 우리도 모르게 노래를 하고 있고. (웃음) 그런 에피소드도 있다.

 

“숨, 숨, 숨, 리듬”

이수연: 1집이 발매되고 나서 4년이 지났다. 그 동안이 앨범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던 걸 텐데. 그 이외에는 4년이 어떤 의미였다고 생각하나?
임병학: 음반이 곧 나온다고 얘기했던 게 거의 2년 전이다. 그때부터 계속 내보려고는 했지만, 준비가 덜 된 느낌이 있어서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드러머를 만나게 됐고, 또 같이 3인조로 공연도 다녔다. 자연스런 형태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 완성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데다, 그 이후에도 뭔가 좀 자연스럽지가 못했다. 그 즈음 레코딩을 들어갔다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시간이 좀 더 흘렀고, 근 4년 만에 이제 곧 앨범이 나오는 상황이 된 거다. 꽤 긴 시간이긴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되게 아주 알차게 보냈다고 할 수는 없어도 헛되게 보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공연을 꾸준히 했다.

이수연: 최상백 씨가 계속 드러머로 같이 하는 건가? ‘아침’ 공연에 게스트로 설 때 다른 드러머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조웅: 다른 친구가 올해 초부터 공연을 도와주고 있다. 장윤주 닮은 친구다. 녹음은 다 컴퓨터로 했다. 이번엔 1집과 다르게 신디사이저를 많이 넣었다. 사실 남들은 잘 모른다. 1집에는 정말, 멜로디 악기는 기타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전자 비트가 나오니까 뭐가 막 들어간 줄 아는데. 그냥 뚝딱이 비트랑 기타 베이스 보컬 그것밖엔 없다. 이번에는 신디사이저를 많이 넣긴 했는데, 우리가 피아노를 못 친다. 막판 작업에서 한 3주를 신디사이저 하느라 보냈다. 성격상 남한테 맡기지를 못하겠더라. 스스로 해야지, 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잘 못하는 데도 그걸 하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6월쯤에는 나오나 그랬는데. 안 되는 건 밤새 하기도 하고. 공연이 아니라 레코딩이다 보니까 밤을 좀 새더라도 좋은 게 녹음이 되면 그걸 넣으면 되는 거니까.

이수연: 한때는 자신들의 음악을 ‘퍼스널 컴퓨터록’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랩탑을 가지고 공연을 했고, 이후에는 신디사이저나 드럼을 다루는 다른 멤버들과 같이 공연하면서 공연의 포맷이 계속 바뀌었는데. 데모로 먼저 들어본 2집은 1집과는 많이 달라서 ‘퍼스널 컴퓨터록’과는 많이 멀어졌고, 드럼∙기타∙베이스가 중심이 되는 곡들이 많다. 세 명이서 라이브를 할 때 나오는 사운드다. 이런 포맷을 선택한 건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나?
조웅: 4년 동안의 변화일 텐데, 공연을 다니는 게 너무 재밌는 거다. 레코딩에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은 사실 몰리고 몰려서 앨범을 내는 측면도 있다. 곡도 많이 쌓였고. 어쨌든 직업으로 이 일을 할 때, 우리는 공연하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더 크다. 늘 일상이 공연이다 보니까. 거기에 집중을 했다. 그런데 공연을 잘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도 잘 한다는 건 아니지만. ‘연예인’이 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난 춤추는 걸 되게 좋아하고 그래서 음악도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다면 듣는 사람들이 춤을 췄으면 좋겠다. 그건 어떤 스킬로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무대에서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게 있는데, 성격적으로 그게 쉽지가 않았다. 마음껏 좀 까불 수도 있어야 되고, 거침없이 기분이랑 몸이 자연스럽게 엮이는 무대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노력을 많이 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기분으로 무대에 올라갈 수 있고, 내가 기분이 이렇다고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게 됐다. 그게 오래 걸렸는데, 그걸 하고 앨범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4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컴퓨터로 작업을 했다. 그렇게 작업을 했으니까 공연도 그렇게 하고. 근데 사실 무대에서 기계랑 호흡을 맞춘다는 건 재미가 없다. 사람이랑 하는 게 재밌지. 사운드야 사실 소스를 입력하고 패드를 놓고 치기만 하면 사람도 기계적인 소리를 낼 수 있다. 사운드보다는 액션의 문제다. 호흡, 리듬 같은 거. 기계랑 할 땐 계속 기계에 얹혀가서 하는 거고. 지금은 좀 더 우리가 이렇게 호흡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고. 숨, 숨, 숨, 리듬.

 

“풀을 뜯어 먹어도 거기서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신현준: 구남과여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나. 또 비슷한 나이의 회사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한다면?
조웅: 간단하게 말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그런 건 있었다. 한참 공연을 잘해보고 싶어서 연습 피치를 올릴 때, 해도 해도 잘 안되니까 다투게 되더라. 그때 지금 열심히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때까지 일하는데, 우리가 하루 3시간 4시간 모여서 하는 게 열심히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우리가 시간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신현준: 요즘 홍대앞에서 일어나는 변화 중 하나가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경우가 꽤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나름대로 정해진 스케줄도 있고. 몇 달은 녹음을 하고, 몇 달은 방송, 행사, 공연 등을 하면서 비즈니스의 형태를 갖춰가는 경우가 있는데. 구남과여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또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조웅: 물론 활동이 다양하고 많으면 수익이 더 있을 수 있고, 활동이 많지 않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쨌든 우리가 원하는 활동을 해왔다. 나름의 수익이 있었고 그걸 아껴서 살았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1년 반 전쯤에 음악 외의 일은 그만뒀는데, 내가 시간을 더 들여서 집중하면 아르바이트 해서 버는 것 말고 이쪽에서 소득이 발생하겠구나 생각이 드는 그런 시점이었다. 그 뒤로는 작업실에 출근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사실 아직까진 넉넉하지 않고, 충분하지 않다. 어쨌든 그건 새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고, 이번에 새 앨범이 나오는 건 마치 개업 혹은 리모델링하는 기분 같기도 하다. 작업을 잘 해서 호응을 얻어보자는 생각이 기본이지만, 별도로 생각하고 있는 건 스스로 뭘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거다. 기획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스스로 뭔가 기획하고 그걸 키워나가면 어떨까. 그런 게 나름 구상하고 있는 경제 생활에 대한 개념이다. 경제 활동을 스스로 해야하니까. 아껴 쓰고 유지되면 됐지, 그런 건 아니고 더 키워보려고 하고 있다.

신현준: 옛날에는 자유롭게 놀면서 하는 게 인디의 정신이었다면, 요즘은 회사원처럼 일로 음악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옛날엔 밴드나 아이돌이나 6개월 활동하고 6개월 쉬고 해도 유지가 됐는데, 요즘엔 음반이 안 팔리면서 그게 힘들어졌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인디 아티스트로서의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건가?
조웅: 우리 얘기만 하자면, 일단 서울에 살지 않아야 된다고 본다. 뮤지션이든 회사든, 주체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그게 호응을 얻고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기반이 충주일 수도 있고 부산일 수도 있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 만약 서울에 공연이 다음 달 말에 잡힌다고 하면, 준비해서 가면 되는 거고. 한국은 나라도 작은데 굳이 서울에 박혀 있을 이유가 없다. 지방으로 간다는 건 스스로 풍요로워지는 게 아닐까. 서울은 다 너무 비싸다. 인디 뮤지션이 버는 수입으로 여기서 살 수가 없다. 서울에서 살기 위해서 많이 빚을 지면서 유지한다는 건 부자연스럽다.

신현준: 요새 음악의 주류와 구남이 다른 점이 그거다. 홍대앞 생활을 찬양하면서 조그만 골목 모퉁이 카페 같은 얘기를 하는 게 주류가 된 것 같다. 수요도 있고. 그런데 구남은 1집 타이틀 곡에서 떠나자고 얘기를 한다. 2집에서도 남쪽으로 가자고 하고. 제주도로 이주한 하나음악의 조동진 같은 경우가 그런 케이스일 텐데.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무력해지는 면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지 않을 방법이 뭐가 있을까.
조웅: 그러니까 포인트를 거기다 두면 안 된다. 지긋지긋해서 내가 여길 벗어나겠다는 게 아니라, 좋은 데서 살고 싶은 거다. 내가 여기 일이 있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얽혀있지만, 다 떠나서 좋은 조건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훨씬 더 좋은 조건. 큰 물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있고.

신현준: 그런 생각을 하는 음악인들도 많이 있다. 그중 대다수가 느리고 자연친화적인 음악을 한다면, 구남은 그것과는 좀 다른 코드인데. 그게 아직도 좀 수수께끼다.
조웅: 일은 와서 해도 된다. 무대를 버리지 않겠다는 거다. 홍대가 음악 활동의 터전이 될 수는 있어도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배를 살려고 적금을 붓고 있다. 침실이 딸린 걸로.

신현준: 도시를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자극을 준 책이나 영화 같은 게 있나?
임병학: 책이나 영화에서 받은 영향은 생각나는 게 없다. 고향이 워낙에 시골이고.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10년간 사니까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조웅: 냄새나고 밀도도 너무 높고.
임병학: 가끔 제주도나 충주에 가면 숨 쉬는 게 되게 편하고, 마음도 가뿐해진다.
조웅: 풀을 뜯어 먹어도 거기서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수연: 부스뮤직 주최로 얼마 전 제주도에서 공연도 했는데.
조웅: 제주도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들끼리 다퉜다. 우리를 차로 데려다준다 그랬는데 산속에서 막 다투는 바람에 차에서 내렸다. 혼자 갈게, 하고 걷는데 주변에 아무런 전기 등이 없고. 정말 ‘지구’에 있는 느낌이 들더라.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막연한 게 아니라 구체적이다. 직접 경험해보고 느끼는 것들인데. 앞으로 살 시간이 몇 십 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삐대고 있는 게 정상인가 싶은 생각이 있다. 다른 곳이 이렇게 좋은데.

신현준: 그런 메시지가 이번 앨범에도 명시적이진 않지만,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
조웅: 애들이라 아직 명시한다는 건 좀 부담스럽다. 우리가 뭘 안다고.

 

구남과여 일대기

신현준: ‘도시 생활’이 그래서 인상적인 노래였다. 젊은 사람들이면 도시 생활이 좋다고 말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의 삶을 좀 물어보고 싶었다. 20대는 어떻게 보냈나. 98년도에 서울에 올라와서 대학에 들어가고, 99년에 독일에 갔다가 8개월 있다가 돌아온 게 맞나? 독일엔 왜 갔나?
조웅: 아는 형이 있었는데. 막연한 꿈이 있었다. 철학이 전공이기도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는 병학과 자주 만나고 같이 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병학은 부기피스톨즈라는 밴드를 했고, 나는 미사일맨이라는 밴드에 있었다. 부기피스톨즈가 범접할 수 없는 밴드였다. (웃음) 병학이 서울에 올라오면서 연남동에 집을 구해서 같이 살았는데, 그게 2000년이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는 홍대 라이브클럽에 가본 적이 딱 2번이었다. 그래도 춤추는 클럽에 계속 있느라 홍대 죽돌이였다. 황금투구, 마트마타 같은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기차 용접 배워서 KTX 선로 까는 일을 하러 내려갔던 게 2001년. 병학은 군대를 2002년에 갔다 왔고. 2003년부터 공익 근무를 했는데, 제대한 병학과 같이 경희대 앞에서 가게를 했다.

신현준: 카페 이름은?
조웅: 구남과여. (웃음) 유명했다. 왔다간 사람들이 많다. 공간이 생기니까 그 전에 우리가 만들었던 음악들을 가지고 공연을 했다. 사람들이 해달라 그러기도 하고, 교수님들이 학교 학생들 막 데려와서 보기도 하고. 그게 데뷔였다. 그게 2005년, 2006년.

신현준: 그러고 보니 아직 이 질문을 못했다. 음악적 영향은 어디에서 받았는지 마지막으로 얘기해 달라.
조웅: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지금 모니터링을 계속 하고 있는데, ‘귀여워’라는 곡을 듣다 보니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좀 알겠더라. 그 곡에 50년대 브라질 음악과 스매싱 펌킨스의 변주와 너바나 리프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들어보니까 되게 짬뽕이다. 에드린컬린이라는 브라질 음악가를 좋아했는데, 그 정서가 많이 있다. 늘어지고 하는 변주가 나오는 부분은 스매싱 펌킨스가 많이 썼던 스타일이다. 그 전에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송창식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는데, 영향을 받은 음악이 구체적으로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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