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3125042-0408chungtaechoon5정태춘 – 아, 대한민국… – 삶의 문화/한국음반, 1991/1996

 

 

‘불법적’ 메시지의 ‘불법적’ 소통

정태춘의 음악에서 현실에 대한 고민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건 전작 [무진(戊辰) 새 노래]부터였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표면화된 건 이 음반 [아, 대한민국…]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간 기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1988년에서부터 가진 ‘누렁송아지’ 공연을 들 수 있다. 노래극과 사설, 슬라이드 필름 등의 양식을 도입했던 이 공연에서 그는 이전보다 더 현실 문제에 천착하며 좀더 직설적인 어법으로 이를 표현했는데, 이 때부터 그는 일정 정도 ‘선동적’이기 시작했다. 또한 비제도권의 민중가요 운동을 하는 이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리고 1991년 이른바 불법음반이라는 형식으로 [아, 대한민국…]을 발표한다. 이 음반을 이전의 그의 음악들과 구별지을 수 있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로서, 우선은 앞서 말한 불법 배급방식인데, 당시에 이 음반에서 심의통과된 곡은 “황토강으로” 등 극소수였고, 실제로 1990년에 제작되었지만 공연윤리위원회(공륜)의 사전심의 결과와 수정 지시를 거부하고 대학가의 불법배급망(주로 사회과학서적을 전문적으로 팔던 서점들)에 배포한 것이다. 이는 데뷔 이래로 끊임없이 음반사와 공륜의 가위질과 씨름해 오던 그에게 일정 정도 예측된 심의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도권에서 활동하던(이 표현도 좀 우습지만) 가수가 ‘불온한’ 민중가요 음반을 ‘배포’했다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사건이었음에는 분명한데, 이러한 예는 과거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이후 처음의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공장의 불빛]이 공연 무대에 올려진 것을 녹취한, 의도된 발매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음반은 다소 차이가 있다. [아, 대한민국…]은 명백히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정규 음반으로 발매하려던 것이었고, 남한 사회 현실의 모순에 대한 언급의 차원을 넘어서 명백히 ‘운동’으로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명백한 음악들이었다(이것이 이전의 그의 음악과의 두 번째 구별지점이다).

이는 특히 가사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백골단과 함께 안전하게 살고 있는”(“아, 대한민국…”), “못난 부모들 막일 나가고 버려진 애들 아무데나 묽은 똥질을 할 적에 깡패들이 들이닥쳐 그 집을 부술 제”(“우리들 세상”), “주한 미군 기동 훈련과 핵무기에 고무받으시는 그대 거기에도 평화와 인도주의의 구호는 있지 그대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희생양이며 표적인지”(“그대 행복한가”) 등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억압적 현실을 폭로적으로 드러내며, 가진 자들에 대해서는 섬뜩한 경고를(“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못 가진 자들에게는 함께 일어서 싸울 것을(“여기 패배와 순종, 체념과 그 비굴 이 애비의 의식에 내리쳐라”) 선동한다.

한데 이 음반에는 당시의 민중가요 운동진영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구별되는 점도 존재한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판매되었던 불법 테이프들의 대다수는 제작여건 탓에 열악한 음질과 편곡상태로 녹음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고, 노래들 자체도 천편일률적인 경우가 많았다(상당수의 곡들은 코드진행도 거의 똑같았다). 그에 비해 상당히 ‘고급스럽게(?)’ 편곡된 이 음반은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어냈는데, 이와는 역설적으로 그의 노래는 시위현장에서는 거의 불리지 않았다. 좀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그의 노래들은 시위현장에서는 불리기 힘든 노래였다.

여기에서 잠시 당대의 민중가요의 흐름을 보면, 노찾사와 같이 제도권에 진입한 경우를 제외했을 때 가장 대표적인 것은 김호철로 대표되는 뽕짝풍의 노래들이다. 김호철의 노래들은 대부분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들과 유사한 멜로디(행진곡풍과 뽕짝 멜로디)가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었는데, 이는 다분히 ‘많은 사람들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쉬운 노래를 만들기 위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김호철의 곡들은 시위현장에서 끊임없이 불려졌고, 당대에는 이러한 노래들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 때였다(그렇다고 지금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오해는 마시길….). 반면 정태춘의 노래들은 시위 이전 혹은 이후에 정태춘 자신이 부르는 노래로 보는 쪽이 훨씬 어울렸다. 그는 좀더 ‘음악적’인 면에서 민중적으로 다가가기를 원했고(이는 그의 음악활동에서 지속적으로 추구된 부분으로 볼 수도 있다), “황토강으로”, “인사동” 등에서 그의 이러한 고민이 더 잘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양자택일적인 논의는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이 음반에 대해 한두 가지의 시비는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는 ‘민중적인 내용’과 ‘민중적인 형식’의 결합을 이루어낸 것일까? “우리들 세상” 같은 경우에는 거의 민중연희의 한 대목을 옮겨놓은 듯 생동감이 있고, “아, 대한민국…”, “그대, 행복한가”의 날이 선 비판은 섬뜩하다. “인사동”의 박제화된 전통에 대한 풍자 역시 힘이 있다. 하지만 종종 그의 가사들에서 나타나는 많은 요소들은 ‘문어체적’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전작 [무진 새 노래]의 “얘기 2″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현실에 대한 묘사는 때로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슬로건적인 느낌을 준다. “우리들의 죽음” 같은 곡이 주목받은 사례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소재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이를 묘사하고 음악으로 만드는 방식은 명백하게 덜 다듬어진 ‘르포르타주’ 같다. 이는 “버섯구름의 노래”, 혹은 위에 언급한 곡들 역시 이러한 비판에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드러난다. 슬로건적이라는 이야기와 연관되는 부분으로 걸고 넘어가고 싶은 건 객관적 화자의 설정이다. 이 객관적 화자는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동시에 우리 모두 일어설 것을 선동적으로 추동하는데, 강렬한 풍자나 비판적 시선에 비해 사람들에게 직접 움직일 것을 추동하는 가사들은 메시지에 다른 요소들이 종속되는 함정에 빠진다.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그 이후 그가 [노동해방문학]에 연재하던, 선전선동이라는 목적에 함몰된 시들을 비교하면 이는 명백해진다.

하지만 음악적인 면에서의 사후적인 재평가로 글을 맺기엔, 그가 이야기한 1990년대 한국 현실과 ‘사후적인’ 상황의 지금 현실이 얼마나 더 긍정적으로 변화했는가 하는 점이 걸린다. 물론 현실이 발전된다는 사고방식 역시 덧없는 것일 수 있으리라. 그저 이 음반 평점에서 별 하나 정도를 빼고 싶다면, 그 몫은 지금 우리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라고 생각하셨으면 한다. 20020414 | 김성균 niuuy@unitel.co.kr

8/10

수록곡
1. 아, 대한민국…
2. 떠나는 자들의 서울
3. 우리들의 죽음
4. 일어나라, 열사여
5. 황토강으로
6. 한여름 밤
7. 인사동
8. 버섯구름의 노래
9. 형제에게
10. 그대, 행복한가
11. 우리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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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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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인터뷰
http://www.personweb.com/cultuer&people/Chungtc51/ctc_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