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박은옥 – 떠나가는 배 – 지구, 1984 듀엣으로 재출발하는 이야기꾼의 노래들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정태춘의 솔로 음반’과 ‘정태춘·박은옥의 듀엣 음반’의 구분이 명확한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음악산업계이든, 소비자든 대충 뭉뚱그려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서태지의 솔로 2집 음반을 ‘서태지 6집’이라고 부르는 관행이나 비슷하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서태지’가 상이한 아티스트이듯, ‘정태춘’과 ‘정태춘·박은옥’이라는 아티스트는 충분히 구분할 필요도, 가치도 충분하다. 비유가 그리 적절치는 않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1985년에 발표된 [북한강에서]와 1988년에 발표된 [무진 새 노래]와 더불어 ‘듀엣으로서의 정태춘·박은옥’의 초기 작품을 이룬다. 정태춘으로서는 솔로 음반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1980)와 [우네](1982)가 일부 팬들로부터는 여전한 지지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불운한 결과를 맞은 상황에서 권토중래 끝에 발표한 작품이라는 의미가 있고, 박은옥으로서는 ‘결혼한 여가수’라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관행에서 약점을 극복하는 작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즘 말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충분하다. 앨범의 구성은 ‘재출발’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아직 ‘공동창작 및 공동연주’이라는 듀엣의 미덕은 완전히 발휘되고 있지 않다. 비닐 LP로 앞면의 전체인 여섯 곡과 뒷면의 네곡은 정태춘이 만들고 부른 곡이라는 점이 이를 말해 준다. 이 중에서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 “촛불”, “탁발승의 새벽노래”, “나는 누구인고”, “얘기” 등은 이전에 이미 발표한 곡들이다. ‘다시 팔기’라는 혐의를 둘 수 있는, 그리고 지구 레코드라는 한 시기를 풍미한 ‘메이저’의 입김이 작용한 흔적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시인의 마을”은 공연예술위원회의 검열에 따른 수정을 벗어나 본래의 가사를 들을 수 있는 기쁨을 주고, 세 박자의 민요 가락에 ‘한국적 풍자’의 백미를 보여주는 가사를 가진 “얘기”는 이 앨범에 수록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도 타이틀곡 “떠나가는 배(이어도)”의 단조의 비장미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이 곡은 “시인의 마을”과 “촛불” 이후 정태춘에게 대중적 멜로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곡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떠나가는 배”에 대해 ‘작곡력은 인정할 수 있지만 편곡은 관습적 가요’라는 생각이 든다면, 드디어 이 앨범의 진정한 가치인 ‘두 아티스트의 공작’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정태춘이 만들었지만 박은옥이 부른 “우리는”은,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정태춘이 불렀으면 밋밋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고, 또한 세상에 대해 보다 넓고 깊게 보겠다는 ‘조짐’을 암시하는 곡이다. 그리고 박은옥이 작사를 맡은 “사랑하는 이에게”는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듀엣 발라드이자, ‘결혼식 축가용’이자, “사랑하고 싶소”(‘총각 버전’)의 ‘성인 버전’이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박은옥이 작곡을 담당한 “하늘 위에 눈으로”에서 경쾌한 리듬 위의 스토리텔링은 박은옥이 단지 정태춘의 ‘조수’ 이상임을 보여준다. 앨범은 마지막 부분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후미에 위치한 “나그네”는 “시인의 마을”에 이어, ‘양악(洋樂)’인 어쿠스틱 포크만으로도 한국의 전원적 서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주는 아름다운 소품이다. 이 곡에 이어 앞서 언급한 “얘기”로 마무리되면 ‘구수한 이야기 참 잘 들었습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음악의 주인공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니 총평은 ‘믹싱이나 편곡이 귀에 거슬린다’는 청자를 배려하면서 끝내야 할 것 같다. 신통한 생각이 없으니, 그저 ‘음악의 의미란 소리의 물리적 효과와 스토리텔링 사이의 틈새에서 만들어진다’는 우회적 답변을 전하고자 한다. 20020415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수록곡 1. 떠나가는 배 (이어도) 2. 손님 3. 시인의 마을 4. 님은 어디 가고 5. 사랑하고 싶소 6. 시장에 가면(건전가요) (이상 Side A) (이하 Side B) 7. 우리는 8. 사랑하는 이에게 9. 하늘위에 눈으로 10. 촛불 11. 나는 누구인고 12. 나그네 13. 얘기 관련 글 돌아온 그들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 vol.4/no.8 [20020416] 한국 포크, 그 아름다움의 세계 – vol.4/no.8 [20020416] 한국 포크 음악 발전에 있어서 정태춘의 업적 – vol.4/no.9 [20020501] 정태춘 [정태춘의 새 노래들] 리뷰 – vol.4/no.8 [20020416] 정태춘·박은옥 [북한강에서] 리뷰 – vol.4/no.8 [20020416] 정태춘·박은옥 [무진 새 노래] 리뷰 – vol.4/no.8 [20020416] 정태춘 [아, 대한민국…] 리뷰 – vol.4/no.8 [20020416] 정태춘·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 리뷰 – vol.4/no.8 [20020416] 정태춘·박은옥 [정동진 / 건너간다] 리뷰 – vol.4/no.8 [20020416] 정태춘·박은옥 [20년 골든 앨범(1978-1998)] 리뷰 – vol.4/no.8 [20020416] 정태춘·박은옥 “봄바람 꽃노래” 공연 리뷰 – vol.4/no.8 [20020416] 자전거 탄 풍경 [너희가 통기타를 믿느냐] 리뷰 – vol.4/no.8 [20020416] 관련 사이트 정태춘 팬 사이트 http://cafe.daum.net/antispring http://www.oldlp.com/taechoon http://my.netian.com/~heosuabi 정태춘 인터뷰 http://www.personweb.com/cultuer&people/Chungtc51/ctc_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