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416120937-040806정태춘 – 정태춘의 새 노래들 – 서라벌, 1978

 

 

정태춘의 ‘젊은 서정시인’ 시기의 기록

정태춘의 데뷔 앨범으로 1978년 가을 비닐 LP로 발매되었다. 음반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MBC(문화방송)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신인가수상을, TBC(동양방송) 방송가요대상에서는 작사부문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을 누리기도 했다. 나의 기억으로는 당시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정태춘은 ‘무희들’에 둘러싸여 “촛불”을 불렀다. 본인은 이를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경험으로 간주할지는 몰라도 당시 그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 앨범에서 선곡은 ‘음반사’가, 가사는 ‘공연윤리위원회(공륜)’가 개입했고, 그 결과 ‘아티스트로서의 자율성’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시인의 마을”은 ‘대중가요 가사로는 방황, 불건전한 요소가 짙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반려되어 여러 번 ‘개작’을 강요당한 작품이다. 이런 사실이 1980년대 이후 정태춘이 ‘투사’가 되어 ‘사전검열제도’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를 개혁하는 계기를 이루게 된다는 점은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본래의 가사로 다시 녹음된 버전이 1984년 정태춘, 박은옥의 앨범 [떠나가는 배]에 수록되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 이야기다.

하지만 음악인 스스로가 이 앨범에 만족스러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음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매우 아름답다. 뭐니뭐니해도 백미는 “시인의 마을”이다. 풀링(pulling)을 이용한 아름다운 전주에 이어 나오는 네 마디에서 쓰리 핑거 주법의 독특한 리듬감 위에, (계명으로) 솔 – 솔# – 라 – 시b으로 반음씩 상향 진행하는 화성 진행은 어쿠스틱 기타를 그럴 듯하게 연주해 보려던 사람들에게는 ‘교본’같은 것이다. 그 뒤에도 기본 3화음을 넘어서는 ‘화려한’ 화성 진행이 가사와 멜로디의 ‘소박한’ 분위기와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음악 전체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바이브레이션을 가진 저음의 목소리인데, 이는 마치 앨범 커버에 나오는 수묵화와 비슷하다. 검열 탓에 주인공의 이미지는 ‘방랑자’에서 ‘수도승’으로 바뀌었지만, 이 점조차도 그 특유의 초탈한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는다. 히트곡인 “촛불”은 다른 몇몇 곡들과 더불어 ‘유행가’같은 인상을 주지만 슬라이드 주법의 묘미와 더불어 어쿠스틱 기타의 섬세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앨범의 또하나의 색깔은 “사랑하고 싶소”, “여드레 팔십리”, “그네” 등에서 시도한 ‘우리 가락(이런 표현은 가급적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과의 결합에서 드러난다. 1970년대 이후 서유석, 김민기, 양병집, 이규대, 김태곤 등이 시도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못하던 때에 군에서 갓 제대한 무명의 싱어송라이터의 시도는 ‘겁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야심적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풋풋한 총각의 진솔한 욕망을 담은 “사랑하고 싶소”, 뮤지컬 [춘향전]의 수록곡이기도 한 “그네”, ‘우리 가락’이 현대적 흥겨움과도 어울림을 보여준 “여드레 팔십리” 등은 우리 것과의 결합이 반드시 무겁고 진지해야 할 필요는 없음을 보여 준다. 형식적으로는 우리 가락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정서적으로는 충분히 ‘토속적’인 단조의 발라드(?) “서해에서”는 “시인의 마을”에서의 정형화된 핑거링과는 또다른 유형의 핑거링의 묘미를 보여준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이 음반의 사운드가 말끔하게 나온 데는 대부분의 곡의 편곡을 담당한 유지연의 공이 크다. 그게 정태춘 음악의 특유의 질박한 느낌을 잘 살린 것인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음반을 대중에게 친밀하도록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참고로 유지연은 그 자신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 연주인이며, ‘가요계’를 떠난 1990년대 이후에는 CCM 음악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견이지만 나는 이 음반을 ‘한국 포크 록의 주요 음반’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단, 이 때 포크라는 단어가 ‘통기타 음악’이고, 록이라는 단어가 ‘엘레키 사운드(당시 용어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포크’란 한국적 뿌리를 가진 음악문화를 지칭하고, ‘록’이란 — ‘악기’나 ‘악단’ 개념이 아니라 — 서양의 현대적 대중음악의 어법을 말한다. 이런 견해에 동의할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이런 업적이 제대로 계승되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20416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수록곡
1. 시인의 마을
2. 사랑하고 싶소
3. 촛불
4. 서해에서
5. 그네(뮤지컬 춘향전 중에서)
6. 목포의 노래 (여드레 팔십리)
7. 아하! 날개여
8. 겨울 나무
9. 사랑의 보슬비
10. 산너머 두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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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정태춘 팬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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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인터뷰
http://www.personweb.com/cultuer&people/Chungtc51/ctc_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