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gon Christ – Musipal – Ninja Tune, 2001 ‘장르’의 모호한 대상 왜건 크라이스트(Wagon Christ)는 루크 비버트(Luke Vibert)의 일인 프로젝트다. 왜건 크라이스트에서 루크 비버트는 IDM의 질료(質料)들로 친힙합적인 비트와 리듬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인 힙합의 상궤(常軌)에서 벗어나는 스타일적 면모를 가진 일련의 무리는 추상 힙합이라는 범주로 묶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범주 하에서도 왜건 크라이스트의 위치는 장르적으로는 불안정하다. 루크 비버트의 다른 프로젝트인 플러그(Plug)가 IDM적인 태도과 드릴 앤 베이스의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장르화에 성공한 케이스라면, 왜건 크라이스트는 사운드에서 힙합을 표제로 삼고 IDM이란 스타일을 절충시키려 했지만 아직은 모호한 경계에 머물렀던 것이다. 물론 모든 음악을 장르로 나눌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왜건 크라이스트(Wagon Christ)의 음악은 장르적으론 모호하다. 그렇지만 음악은 모호하지 않다. 그의 디제잉은 두터운 앰비언트와 다양한 음원들을 끌어오지만, 이를 적절히 배치시켜 충분히 즐길만한 음악으로 바꾸어 놓았다. 1994년 발매된 [Throbbing Pouch]는 이를 적절히 증명했으며 이런 스타일의 정점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평가는 이 앨범이 레이버와 라운지 키드 둘 다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얘기가 되겠지만, 정작 이 앨범에서 중요했던 것은 바로 힙합이 사운드의 ‘표제’로 제시된다는 사실이다. 비록 음원과 형태는 기존의 힙합과 거리를 두고 있더라도 근원적인 비트와 리듬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그 후 루크 비버트는 플러그에 주력한다. 흑인음악적 색채를 배제한 순수한 IDM의 스타일을 보여준 플러그의 영향은 왜건 크라이스트의 음악에 반영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낳게 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1998년 발표된 [Tally Ho!]에서는 드릴 앤 베이스가 도입되고, 앰비언트적인 방향성 잃은 음원의 항연은 줄어들고 더 세심한 조율이 이뤄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음원의 재현에 있어서는 기존의 IDM을 하는 동료들과는 상이한 방향을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기존의 흐름 안에 위치하면서도 상이한 지점을 개척하려는 루크 비버트의 시도는 당연히 그의 근원인 흑인음악과 깊은 관련이 있고 실제로 R&B적인 비트를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와 맞물리는 복고적인 뉘앙스 연출을 위해 신시사이저를 대폭 쓰거나 피아노 연주를 샘플링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이는 루크 비버트가 본격적으로 흑인음악과 전자음악의 ‘스타일적 접목’을 지향할 것이라는 추측을 난무하게 했고, 이에 발맞춰 색다른 행보라도 보여줄 만하련만, 그는 조용히 칩거하며 지낼 뿐이었다. 그 후 3년, 닌자 튠(Ninja Tune) 레이블에서 [Musipal]이 발매되었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발매된 곳이 닌자 튠이라는 사실이다. 부연하자면 추상 힙합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발매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왜건 크라이스트의 정체성 정립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루크 비버트가 [Tally Ho!]의 연장선상에서 흑인음악과 전자음악의 ‘스타일적 접목’을 꾀할 것인지, 아니면 [Throbbing Pouch]같이 근원적인 비트와 리듬의 변용에 그치면서 힙합보다는 IDM에 주력할 것인지 하는 궁금함이었다. 그런데 전자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후자 쪽이었다. 이 결과는 닌자 튠에서 발매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억측을 했다는 생각도 들게 했지만, 결과적으론 왜건 크라이스트란 프로젝트의 태도 정립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록 호기심은 좀 떨어지겠지만. [Musipal]을 본격적으로 살펴보자면, 먼저 부각되는 점은 전작들에 비교했을 때 곡들 간의 유기적인 조직을 활성화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앨범’의 컨셉에 맞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Throbbing Pouch]에서 보여준 앰비언트는 적절히 장르화된 음악으로 안착하고 있으며, 갖가지 음원들은 소울풀(soulful)하거나 펑키하게 응용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비록 전작인 [Tally Ho!]가 성공적인 시도였지만 상이한 메커니즘의 융합이 미흡한 부분이 있었고, ‘앨범’의 통일적인 완성도에서도 실패작이라고 보았을 때 그의 선택이 현명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장선상에서 곡들을 살펴보면, 왜건 크라이스트의 전형적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Thick Stew”같은 트랙부터 펑키한 업템포의 “Receiver”와 마치 스퀘어푸셔(Squarepusher)를 연상케 하는 드릴 앤 베이스를 보여주는 “Natural Suction”이 있다. 물론 그 절정엔 파티 음악 같은 분위기의 “Boney L”이 존재한다. 총체적으로 왜건 크라이스트를 직시하자면, 그의 음악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장르’가 혼돈에 빠진 것이다. 그는 본작에서 어느 정도 ‘장르’의 모호함으로부터 탈주에 성공했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의 진실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형태에 있다. 그 핵심은 음악을 감상하는 틀로써 ‘장르’가 소비되는 실태라고 할 수 있는데, 어쩌면 왜건 크라이스트는 본말전도(本末顚倒) 되어버린 우리의 현재를 [욕망의 모호한 대상]의 콘치타처럼 농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20414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7/10 수록곡 1. The Premise 2. Bend Over 3. Tomach 4. Thick Stew 5. Natural Suction 6. Musipal 7. It Is Always Now, All of It Is Now 8. Receiver 9. Boney L 10. Cris Chana 11. Tomorrow Acid 12. Step to the Music 13. Perkission 관련 사이트 brainwashed에서 제공하는 Luke Vibert page http://brainwashed.com/vibert/ astralwerks 레이블에서 제공하는 Wagon Christ page http://www.caroline.com/astralwerks/wagonchrist/ 닌자 튠(Ninja Tune) 레이블에서 제공하는 Wagon Christ page http://www.ninjatune.com/artist.php?id=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