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 – Libertine – Contra/Universal, 2001 세상은 듣지 않는다 1994년 데뷔 당시부터 진(Gene)에게 붙었던 ‘스미스(The Smiths)의 아류’라는 평가는 지금까지 이들을 따라다니고 있고, 결국 주류로부터 진을 완전히 고립시킨 최고의 악재로 작용했다. 정규 2집 [Drawn to Deep End](1997)는 데뷔작 [Olympian](1995)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줬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장됐고, 1998년 발매된 3집 앨범 [Revelations]는 ‘이제 이들도 지쳐가는구나’하는 씁쓸한 감정만을 불러일으키는 졸작으로 완성되었다. [Revelations]는 자신들에게 쏟아졌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밴드의 처절한 몸부림이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단순한 브릿팝 사운드로 표출된 앨범이었다. 여전히 매력적인 훅(hook)을 담아낸 “As Good as It Gets” 같은 곡이 있었지만 대세에는 별 변화를 줄 수 없었다. 그만큼 스미스와의 비교는 진의 존재 이유 자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소위 브릿팝이라는) 트렌드 자체가 ‘리트로'(retro), 혹은 ‘재활용’의 흐름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아류’라는 비난이 유독 진에게 그토록 혹독히 지워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위에서 말한 비난 운운한 말을 생각해 보더라도) 진은 확실히 ‘정체성’이라는 문제에 있어 항상 의문을 받아온 그룹이었고, 이 점에 있어서는 이들의 팬조차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넘어가는 부분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3집의 (예상된) 실패 이후 2001년, 미국 소규모 클럽의 라이브 음원을 담은 [Rising for Sunset]과 베스트 앨범 [As Good as It Gets]의 발매 소식은, 정말로 진이 해체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며,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과연 이들이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외로 들려오는 [Libertine]의 사운드는 예상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심지어 훌륭하기까지 하다. 비감 어린 현악 선율을 배경으로 마틴 로시터(Martin Rossiter)의 한껏 고조된 보컬이 인상적인 첫 곡 “Does He Have a Name?”부터 심상치 않은데, 더욱 기쁜 점은 앨범이 플레이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밀도있는 팝송들이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Does He Have a Name?”의 베이스를 고스란히 가져와 청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A Simple Request”, (발표 된 줄도 몰랐던) 첫 싱글 “Is It Over?”의 고전적이고 우수에 찬 팝송 질감과 “O Lover”의 쟁글 팝 사운드까지, 이런 감동은 그리 파급력이 크진 않지만 결코 쉽게 만날 수 있는 종류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밴드에게나 팬들에게나 이제는 지긋지긋할 스미스와의 비교를 [Libertine] 역시 피해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위에서 언급했던 “O Lover” 외에도 “Walking in the Shallows”, “You”와 같은 곡들은 특히 이러한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듯한데, 그래도 “Let Me Rest”나 “Yours for the Taking”, “Spy in the Clubs”에서 보여지는 지독히 과거지향적이고(이는 여타 브릿팝 밴드들의 그것과는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마치 60년대 헐리우드 첩보영화 주제가 같다고 해야 할까?) 드라마틱한 사운드에 진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상업적인 성공여부는 뒤로 미루더라도). 분명 [Libertine]을 관통하는 정서는 ‘서정성’과 ‘비장미’이다. 이게 뭐 그리 새로운 것이냐는 생각이 울컥 치밀어 오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충실한 팝송의 구조 위에 훌륭하게 담아낸 서정적인 정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작들과 같은 노선 상에 있지만, 마침내 ‘누군가의 아류’ 내지는 ‘답보’라는 평가를 벗어나서 ‘진만의 독창성’으로 자리잡을 만한 요소들을 발견해 냈다는 점에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Libertine]의 진정한 가치는 ‘완성’된 스타일로서가 아닌, ‘과도기’적인 변화/발전에의 가능성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진은 자신들에게 씌워졌던 모든 비난과 의혹으로부터 초연해서, 드디어 제대로 평가받을 만한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앨범 발매 5개월이 지나버린 시점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이 소용 있겠는가. 결국 따져보면 사서 매를 번 경우지만(‘진작 좀 제대로 하지’하는 의미 없는 푸념과 함께), 그래도 [Libertine]의 사운드는 도저히 그냥 이들을 묻어두기에는 한 가닥 떨칠 수 없는 미련이 남게 한다. 정말로 ‘세상은 듣지 않는’ 것일까? 20020412 | 김태서 uralalah@paran.com 7/10 수록곡 1. Does He Have a Name? 2. A Simple Request 3. Is It Over? 4. O Lover 5. Let Me Rest 6. We’ll Get What We Deserve 7. Walking in the Shallows 8. Yours for the Taking 9. You 10. Spy in the Clubs 11. Somewhere in the World 관련 사이트 Gene 공식 사이트 http://www.genenet.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