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414111230-040801McLusky – McLusky Do Dallas – Too Pure, 2002

 

 

2002년 봄, 록은 소생을 시작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대중음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점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예견의 핵심에는 언제나 지난 50 여년 간 대중음악의 황제로 군림하던 록의 급격한 쇠퇴가 자리잡고 있었다. 1990년대 초를 들끓게 했던 얼터너티브 록의 열기가 완전히 식어버린 이후 록은 오랜 기간동안 답보와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의 록은 닳고 닳은 공식만을 반복하며 허장성세를 과시할 뿐이었고 영국의 록은 안전하고 몰개성적인 팝 발라드에 밀려 급격하게 주변화의 길을 걸었다. 이 와중에 급성장한 힙합과 하우스는 가뜩이나 기운 빠진 록을 더욱 더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음악에 뜻을 둔 젊은이들은 갈수록 기타리스트보다는 디제이가 되기를 열망했고 점점 더 많은 대중음악의 걸작들이 록 이외의 장르에서 쏟아져 나왔다.

록 음악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록이 빈사상태에 놓여있음을 통감하면서도 쉽사리 그 문제의 소재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 동안 록의 난국을 돌파하려는 무수한 시도가 있었으나 그 모두는 잠시 반짝하다 사라져갔을 뿐이다. 칠흑 같던 록의 암흑시대를 타개할 수 있는 실마리는 200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그것은 스트록스(The Strokes)와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의 등장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그 동안 록에서 잊혀졌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록 음악의 고유한 ‘신명’이었다. 알맹이 없는 분노로 소리만 크게 내는 음악이나 달콤한 멜로디로 귀에 아부하는 음악이 공통적으로 결여했던 것이 이것이며, 록의 문제를 형태와 방법상의 독창성으로 해결하려던 시도들이 간과했던 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록의 신명에 대한 사람들의 재발견은 2002년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록이 다시금 ‘재미있는 음악’으로 부상함에 따라 그것의 주가가 적잖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물론 록이 대중음악의 제왕 자리에 다시 등극하리라고 예견하는 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동안 방향을 잃고 헤매던 록이 오늘날과 같은 혼돈의 시대에 적어도 위엄을 지키며 살아남는 법을 발견한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카디프 출신의 삼인조 펑크 밴드 매클러스키(McLusky)의 새 앨범 [McLusky Do Dallas]는 이런 맥락에서 록의 소생을 알리는 하나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매클러스키는 이 앨범에서 그린데이(Green Day)와 오프스프링(Offspring) 이후 ‘지능에 문제있는 사람들의 음악’으로 전락한 펑크를 ‘생각하는 자를 위한 음악’으로 되살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펑크가 이론적이고 무미건조한 음악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음악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터질 듯이 충만한 감성적 에너지다.

매클러스키가 자신들의 음악을 형성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주된 자원은 1980년대의 아메리칸 인디 록/포스트 펑크의 전통이다. 그 중에서도 마이너 쓰렛(Minor Threat), 빅 블랙(Big Black) 그리고 픽시스(Pixies)의 영향은 이들의 음악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요소들로 발견된다.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앤디 포커스(Andy Falkous)는 블랙 프란시스(Black Francis)와 조이 산티아고(Joey Santiago)의 일인이역을 연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베이스 연주자 존 채플(Jon Chapple)은 밴드의 하드코어한 면을 강화함으로써 앤디 포커스에 대한 균형추를 제공한다.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지는 사운드는 하드코어 펑크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선율적이고 노이즈 팝으로 보기에는 당분을 많이 뺀 매우 독특한 것이다. 비록 앞서 언급된 그룹들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이들의 폭발적이면서도 섬세한 사운드는 거장의 탄생이 머지 않았음을 예고해준다.

2000년에 발표된 데뷔 앨범 [My Pain And Sadness Is More Sad And Painful Than Yours]가 단지 이들의 가능성만을 보여주는데 그쳤다면 2년 만에 등장한 후속작 [McLusky Do Dallas]는 이들의 역작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물론 이는 그 동안 이들의 기량과 음악성이 일취월장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거장 프로듀서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의 기여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데뷔 앨범의 사운드가 가내 수공업적인 조야함으로 이들의 섬세한 면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던 것을 상기할 때 이 앨범의 정교하고 분석적인 사운드는 이들을 전혀 새로운 그룹으로 거듭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의 요소 요소를 날카롭게 고정시키는 드럼비트와 사운드의 힘찬 진행을 주도하는 베이스, 그리고 격렬한 소음에서 친근한 선율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타는 스티브 알비니의 지휘 하에 선명하면서도 견고한 사운드의 경관을 형성한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은 이들의 넘치는 힘이 유감없이 과시된 하드코어 펑크 성향의 “Lightsabre Cocksucking Blues”다. 이 곡은 그 자체로도 수준작이지만 그보다는 앨범 전체가 쌓아 올려지는 개념적 토대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중요성을 지닌다. 이들은 하드코어 펑크의 일차원적이고 단선적인 음악 스타일에서 출발하여 거기에 하나씩 층위를 더해가는 방식으로 이 앨범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No New Wave No Fun”에서는 하드코어 펑크의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픽시스 스타일의 선율적 기타 리프가 도입되고, 그 다음 트랙인 “Collagen Rock”에서는 하드코어 펑크의 테두리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픽시스의 영역에 진입하는 것이다. 앨범의 이러한 구성방식은 전반부를 마무리짓는 “Dethink To Survive”에서 너바나(Nirvana)적 음악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으로 절정에 오름과 동시에 그 논리적 귀결에 도달한다. 첫 트랙부터 서서히 고조되어 온 긴장이 이 곡에서 극한점에 오른 이후, 이들은 이 앨범에 유일하게 수록된 느린 템포의 곡 “Fuck This Band”로 페이스를 조절하고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노련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스터피스 “To Hell With Good Intentions”로 앨범의 후반부를 시작한 이들은 전반부에 이어 또 다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질주를 이어나간다. 후반부는 전반부의 에너지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더욱 선율적이고 개성적인 음악이 이어지기 때문에 듣는 이의 집중력은 전혀 흐트러지거나 느슨해질 새가 없다. 곡 하나 하나의 매력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후반부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앨범의 마무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The World Loves Us (And Is Our Bitch)”나 “Alan Is A Cowboy Killer” 같은 강력하고 격정적인 트랙들로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다가 느닷없이 칩 트릭(Cheap Trick)적인 로큰롤 넘버 “Whoyouknow”로 앨범을 끝맺는 이들의 마무리 터치는 모든 긴장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듯한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한다(물론 히든 트랙 “Evil Frankie”가 남아있기는 하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음반이 종료되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다른 행동을 취하기가 어렵다. 플레이 버튼을 눌러 앨범을 처음부터 다시 듣는 행위가 거의 반사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중독성은 그만큼 강하다. 20020410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수록곡
1. Lightsabre Cocksucking Blues
2. No New Wave No Fun
3. Collagen Rock
4. What We’ve Learned
5. Day Of The Deadringers
6. Dethink To Survive
7. Fuck This Band
8. To Hell With Good Intentions
9. Clique Application Form
10. The World Loves Us (And Is Our Bitch)
11. Alan Is A Cowboy Killer
12. Gareth Brown Says
13. Chases
14. Whoyouknow

관련 사이트
McLusky 공식 사이트
http://www.myspecialpain.co.uk/
Too Pure Record의 McLusky 사이트
http://www.toopure.com/artists/mclusky/
McLusky 비공식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kieran14sq/mcluskym.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