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ls – Souljacker – Universal/Dreamworks, 2001 도태되지 않은 관조 일스(Eels)의 전작 [Daisies of the Galaxy](2000)는 보컬(이자 대부분의 연주, 그리고 작곡, 작사와 프로듀싱까지 도맡는 또 하나의 ‘유아독존’식 캐릭터) E의 ‘인생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앨범이었다. 2집 [Electro-Shock Blues](1998)가 어머니와 누이의 돌발적인 죽음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침울한 독백이었다면, [Daisies of the Galaxy]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자기위안 격인 앨범이었다. 하지만 E가 상기 두 앨범에서 보여준 ‘침체-부활’의 도식은, 두 앨범이 거의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어느 정도는 계획된 ‘2부 작 형식’의 앨범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두 장으로 발매된 더블 앨범 같다는 인상도 들고), 따라서 개인적인 비극 이후, E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첫 번째 앨범이 바로 [Souljacker]가 될 것이란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일스는 여태까지 발표한 앨범들을 통해, 단 한번도 사운드적으로 반복되는 형식을 취하지 않는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런 끊임없는 탐구정신은 음악의 표면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래서 ‘일스가 이런 사운드를 만들었다고?’ 식의 의아함은 불러일으키지 않는 ‘일관성’ 안에서의 다양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Souljacker]를 처음 들었을 때 생긴 이질적인 느낌은 앨범이 끝나는 순간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Souljacker]가 이전의 앨범들과 갖는 차별성은 사운드의 ‘헤비’함에 있다. 첫곡 “Dog Faced Boy”나, 싱글 커트 된 “Souljacker. part 1”, “What Is This Note?”에서 보여지는 짧게 휘몰아치는 사운드는 펑크의 영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는데, 이런 점은 추가된 멤버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존 패리쉬(John Parish, g)와 쿨 지 머더(Kool G. Murder, b)의 참여로 일스는 전통적인 로큰롤 밴드의 진용을 취하게 되었고, 특히 존 패리쉬의 포괄적인 앨범 참여는 여태까지 일스가 다른 멤버들의 의견은 완전히 배제된 E 혼자만의 밴드였음을 생각해 볼 때, 밴드 내부의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결국 [Souljacker]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다시금) E다. 앨범에 참여한 멤버들이 정식멤버인지도 확신 못하겠고, 또 굳이 이제 와서 록 밴드의 진용을 갖춘 사실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새로운 멤버들은 ‘새로운 음악’을 하려는 E의 필요에 의해 잠시 초빙된 것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또한 표면적인 사운드 상의 상당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곡을 관통하는 소외됨의 정서, 관계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 유아적인 욕망의 표출은 여전한 일스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새로운 멤버 구성, 새로운 음악으로 이루어진 일스의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것 없는 예전 그대로의 일스’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비단, 위에 언급된 세 곡(과 “That’s Not Really Funny” 정도)을 제외하곤 비교적 여전한 일스 노선의 곡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Fresh Feeling”이나 “Bus Stop Boxer”, “World of Shit” 같은). 그것은 사운드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가 — 비록 형식상으로는 변했지만 — 여전히 낯설고, 의도적으로 드라마틱한 전개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분명 E가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표출이며, 그의 시선은 이 급박한 세상에서 ‘느리고’, ‘관조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관조적’이란 말에 대해서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Souljaker]의 음악적 소스들은 분명 오늘날 상종가를 달리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시간의 흐름은 일스의 로파이(lo-fi)적 특징을 한물간 유행으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새롭게 도입된 펑크 사운드도 이미 주류의 흐름에서 도태된 지 오래이다. 그리고 이런 음악적 소스들은 매우 도식적인 형태로 일스의 음악 안에 잔재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들의 음악은 마치 비잔티움 시대의 성화를 보는 듯한 ‘경건함’을 선사한다(비잔티움 성화들의 도식화된 양식 속에 남아있던 고대 미술의 특질들은, 이후 등장할 르네상스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일스를 새로운 씬의 기폭제로서 생각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일스가 지금의 씬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있음을 보여주는 ‘관조’의 자세인 것이다. 앞으로도 일스가 메인스트림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듯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사운드’ 어쩌고 운운하기 전에 곡을 만드는 당사자가 이토록 철저한 ‘반골’ 자세를 취하는 다음에야, 찾아올 성공도 알아서 피해갈 일 아니겠는가(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팔릴 만한 음악을 만들 재주가 있는가, 없는가’는 그리 중요한 얘기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스, 아니 E의 음악은 가치가 있다. 오늘날의 급박하기 이를데 없는 씬의 상황을 생각해볼 때, 이토록 느리고 관조적이며 ‘장인’의 기운이 느껴지는 음악은, 사소하지만 절대로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Souljacker]는 이미 전시대의 것으로 분류된 음악적 유산들이 아직도 충분히 신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별다른 잔재주 없는 우직함만으로 증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들이 오늘날의 씬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고하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음반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대단한 ‘헛발 딛기’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이들의 사운드는 여전히 매혹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분명 일스는 아직 자신들의 모든 것을 세상에 꺼내놓진 않은 것 같다. 20020330 | 김태서 uralalah@paran.com 8/10 수록곡 1. Dog Faced Boy 2. That’s Not Really Funny 3. Fresh Feeling 4. Woman Driving Man Sleeping 5. Souljacker, part 1 6. Friendly Ghost 7. Teenage Witch 8. Bus Stop Boxer 9. Jungle Telegraph 10. World of Shit 11. Souljacker, part 2 12. What Is This Note? 관련 글 Eels [ElectroShock Blues] 리뷰 – vol.5/no.14 [20030716] Eels [Daisies of the Galaxy] 리뷰 – vol.2/no.10 [20000516] Eels [Souljacker] 리뷰 – vol.4/no.7 [20020401] Eels [Shootenanny!] 리뷰 – vol.5/no.14 [20030716] 관련 사이트 Eels 공식 사이트 http://eels.artistdir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