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31105920-0407buttholeButthole Surfers – Weird Revolution – Hollywood/Surfdog, 2001

 

 

그 많던 괴상함은 다 어디로 갔을까

198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주목받았던 포스트펑크 밴드들의 1990년대의 행보는 대부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허스커 두(Husker Du)나 리플레이스먼츠(The Replacements)는 90년대를 전후해서 이미 해체되었고,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와 같이 솔로 프로젝트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살아남은 몇몇 밴드들은 당시 ‘주류’로 부상한 얼터너티브 록에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았고 이를 메이저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그 결과물 역시 실망스러운 것이 대다수였다 – 이미 80년대 말 허스커 두가 예언이라도 하듯 메이저 데뷔와 이후의 지리멸렬한 행보 그리고 해체라는 수순을 보여준 바 있다. 다만 후발주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좀더 큰 대중적 성공이 뒤따랐는데, 이는 반대로 80년대에 이들이 보여주었던 뛰어난 창작력이 고갈되었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이기도 했다. 다이노서 주니어의 “Feel The Pain”의 대중적 성공에 대해서 그 곡의 뛰어난 팝적 훅에 대해 비판한다는 건 지나친 일이겠지만, 이 곡이 수록된 [Without A Sound]에서는 스타일의 고착과 반복이라는 실망스러운 평이 앞설 수밖에 없다.

텍사스 출신의 광란적 노이즈와 저속 유머의 대가 버트홀 서퍼스(Butthole Surfers)에게도 그런 일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 적어도 80년대에는 —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92년에 얼터너티브 붐과 함께 메이저에 탑승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에 대해서 곤혹스러워했던 주류 네트워크에는 ‘B***H*** Surfers’로 종종 표기되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상업적인 성공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고, 그나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계기는 보컬리스트 기비 헤인즈(Gibby Haynes)가 참여한 미니스트리(Ministry)의 “Jesus Built My Hotrod”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96년의 히트 싱글 “Pepper”는 이들의 좀더 적극적인 상업적 접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이러한 변신을 통해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점이다. 이 곡이 수록된 [Electriclarryland](96)에서 폴 리어리(Paul Leary)의 악명높은 피드백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건 “The Lord Is A Monkey” 정도이고, 그나마도 상당히 순화된 것이었다.

이후 5년간 이들은 몇 편의 영화 O.S.T.에 한두 곡을 내놓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98년에 발매하기로 했던 [After The Astronaut]이라는 신작이 캐피틀(Capitol)과의 결별 이후 무산된 까닭도 있는데, 2001년에 발매된 신작 [Weird Revolution]의 다수의 트랙은 98년의 앨범 수록곡들을 리믹스한 곡들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간의 사운드트랙 작업들에서 이들이 전자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는 점으로, 특히 미니스트리나 화이트 좀비(White Zombie)의 작업과 같은 헤비한 사운드와 인더스트얼 음악의 문법의 수용이라는 양상으로 드러난 것들이 대다수였다는 점은 이 앨범의 음악적 방향성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그룹명만큼이나 특이한 제목의 신작은 그러나 결코 괴상하지도, 혁명적이지도 않은 음반이다. 인더스트리얼이 고착화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노장밴드가 선택한 전자음악과 록 사운드의 결합은 다소 구태의연하게 보이는 느낌이 없지 않다. 과거 ‘진짜 드럼연주’를 하던 시기에 굉장히 흥미로운 비트와 다양한 음악적 재료들의 충돌을 시도했던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타이틀곡이나 “Shit Like That”같은 곡에서 나타나는 리듬이나 사운드 샘플링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들 특유의 기괴하고 약물중독적인 싸이키델릭 노이즈는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기비 헤인즈와 키드록(Kid Rock)이 함께 곡을 쓴 “The Shame Of Life”는 차라리 키드록의 곡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게 느껴지는데, 이어지는 “Dracular From Houston”과 함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라디오 친화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이들이 “American Woman”을 그토록 기괴하게 리메이크했던 밴드였던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9·11 이후의 미국의 상황에 대한 조소가 되어버린 듯한(비록 98년작에 이미 수록된 것이지만) “Jet Fighter” 역시 과거에 그들이 했던 수많은 기행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가깝다.

앨범 리뷰를 쓰면서 이들의 과거작들을 근작부터 역순으로 다시 들어보게 되었는데, 새삼 느끼는 것은 이들의 80년대의 작업들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공격적인 혼돈과 분노로 가득찬 것이었다는 점이다. [Rembrandt Pussyhorse](86), [Locust Abortion Technician](87) 등에서 하드코어 펑크의 일차원적인 절규를 극복했다기보다 더욱 저차원으로 떨어뜨린 듯했고(“Eye of the Chicken”이나 “Human Cannonball”, 혹은 [Independent ‘Worm’ Salon](93) 같은 제목을 끌어들여 ‘벌레 같은’ 차원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까?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앨범은 이들의 메이저 데뷔작이다), 그럼으로서 오히려 전위적이었다. 이는 스투지스(The Stooges)나 버스데이 파티(The Birthday Party)와 같은 맥락에서 “철저히 망가짐으로서 독창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더 이상 기괴하지 못하다 — 아니, 이미 그렇게 변화한 지 오래다. 더 큰 근심은 대중적 영합보다는 음악적인 아이디어의 고갈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이들은 이제 공연시에 본격적으로 DJ를 대동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자음의 도입이 이들에게 진정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지금까지의 결과물에서는 좋은 대답이 나오기 힘들다. 20020322 | 김성균 niuuy@unitel.co.kr

5/10

여담 1 : 이들의 이미지를 지금까지도 규정짓는 밴드명은 어이없게도 라디오 아나운서가 이들의 곡명을 밴드명으로 착각해서 부른 것을 멤버들이 그냥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유사한 사례로 리플레이스먼츠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어느 공연에서 다른 밴드의 대타로 나왔다가 말 그대로 ‘대타’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한다.

여담 2 : 이들이 참여한 영화 O.S.T.의 목록 중에는 [Beavis & Butt-Head Do America]가 포함되어 있는데, “The Lord Is A Monkey”는 두 주인공들이 사막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환각상태(?)를 경험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이 또한 지극히 어울리는 선택이다.

수록곡
1. The Weird Revolution
2. The Shame of Life
3. Dracula From Houston
4. Venus
5. Shit Like That
6. Mexico
7. Intelligent Guy
8. Get Down
9. Jet Fighter
10. The Last Astronaut
11. Yentel
12. They Came In

관련 사이트
Butthole Surfers 공식 사이트
http://www.buttholesurfers.com/